총 게시물 277건, 최근 0 건
   

양경님 그녀는 달리고 있다.

글쓴이 : 관리자 날짜 : 2005-03-07 (월) 16:14 조회 : 1799

“인생의 진정한 기쁨은 스스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목적을 위해 자신이 쓰는 것이다. 곧 꺼져버릴 촛불이 아니라 일종의 찬란한 횃불로”.

 

나는 남원시 주생면 정송리 47번지에서 아버지 양해득씨와 어머니 정봉심여사 사이에서 4남 2녀 중 장녀로 태어났다.

 

내가 태어났던 60년대는 가난으로 배고픔을 안 느껴본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 당시 무밥, 꽁보리밥은 필수였고 식사 대용으로 감자, 고구마도 많이 먹어 봤을 것이다.

나에게는 가난의 배고픔보다 더 싫었던 것은 가부장적인 사회 구조 속에 남존여비의 사상이었다.

 

아들들은 공부시키려고 전주 더 좋은 학교에 진학시키고 딸들은 일이나 하고 그 당시 내 친구들도 오빠나 남동생들의 뒷바라지를 위해 정든 고향을 등지고 서울로, 인천으로 일자리를 찾아 떠났었다.

 

나 역시 초등학교 졸업하고 전주에서 사촌 고모가 운영하는 편물공장에 돈 벌기 위해 갔다. 특히 엄마는 큰며느리도 아니면서 할머니, 할아버지를 모시고 살면서 뜻에 따를수 밖에 없었기에 나를 가슴이 메이는 심정으로 보내면서 가서 해보고 힘들면 오라는 것이다. 어른들의 말씀이 법이라고 생각한 나는 고향을 떠나 사촌 고모 집에서 편물을 배워보려 노력했지만 난 오로지 공부만 하고 싶고 엄마가 보고 싶고 집에 가고 싶어 맨날 울었다. 그때는 전화도 없었던 시절이라......

 

큰오빠가 삼흥서관에 근무화면서 공부하라며 수학첫걸음과 영어첫걸음 이란 책을 사다 주었는데 그 책만 가지고 엄마 곁으로 도망왔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잘 도망 온 것 같다.

 

언제나 배움에서의 꿈은 나를 바꿔놓았다. 그 당시 우리 동네 옆 7733부대에서 사병들이 야학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제3기생을 모집한다며 우리집을 방문했다. 그때 나는 땔감으로 사용하는 나무를 산에서 긁어 한 망태를 이고 왔었다.

 

나에게도 행운의 기회가 왔다. 나는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엄마의 지원을 받아 용기를 내어 입학을 했다. 동네에서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한 친구들도 있었는데 그들은 관심이 없었다.낮에는 엄마랑 농사일을 하고 밤에 공부하여 1년 6개월만에 고입입학자격 검정고시에 합격했다.

어둡고 무서운 밤길!

포장도 안 된 자갈길,

또래들과 함께 3Km를 걸어 다니며 나는 나라를 구하기 위해 옥고를 치른 유관순을 많이 생각했다.

드디어 남원여고 합격!

입학을 며칠 앞두고 나는 고심에 빠졌었다.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했던 나의 처지와 사회 분위기가 몇 년 사이에 나아질 일이 없다.

도저히 진학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나는 마산에 있는 산업체 학교를 가겠다고 했다. 그러나 우리 아버지는 여자는 밖으로 나가면 안 된다는 생각이었다. 지금은 이해가 안되지만 그럴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느 부모가 딸을 사랑하지 않겠는가? 그때 KBS남원방송국에서 12월 24일 저녁 9시35분 ~ 9시 45분까지 “오늘을 산다”, 프로그램을 통해 후원자를 찾아봤지만 후원자가 없어 7733부대 장교들이 장학회를 구성하여 3년간 학비를 지원해 주기로 약속해주셨다. 정말 잊을수 없이 고마우신 분들이다.

 

지금도 가끔 그분들과 찍은 사진을 보며 그분들의 뜻에 보답하기 위해 부지런히 살고 있다.

하지만 여고시절 나의 생활은 힘이 들었다. 5Km거리를 밤에 메모해 두었던 단어장을 들고 아침 6시 30분에 출발해야 8시 등교 시간을 맞출 수 있었다. 자습서, 참고서 한 권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여고 시절을 보냈다. 학업성적은 원하는 대로 향상되지 않아, 시험 결과가 나오면 통신표와 함께 감사의 편지를 써서 장학회에 보내는 심정은 자퇴를 해 버리고 싶을 정도로 부담스러웠다. 지금 생각하면 아무것도 아닌데.....

 

아무튼 꿈 많은 여고시절을 보내고 남자도 아닌 여자가 감히 대학이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또 대학을 가고 싶었지만 자력으로 다니고 싶어 여고를 졸업하고 한국새싹교육원에 보육교사 과정을 마치고

 

평일에는 새마을유아원, 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주말과 일요일엔 인근 한센병력자들의 정착촌에 가서 아이들을 지도하는 자원봉사를 하며 또 틈나는 대로 예식장에 가서 웨딩마치를 쳐주면서 알바를 했고 피아노 레슨을 하면서 처녀시절을 대부분 주변을 돌보는데 주력했다.

 

자원봉사를 하면서 또 어린이들을 돌보면서 야학시절 어려운 군 복무에 지치고 힘드셨을 텐데도 불구하고 사랑으로 몸소 실천하신 선생님들의 희생을 생각하며 작은 자원봉사지만 기쁘게 감당하며 살아온 세월이 값지다.

 

남원여고 졸업식 날일이다. 점심시간에 갑을식당에 가서 돈가스를 사주시는데 제가 말씀드렸다. 어떻게 해야 은혜를 갚을 수 있을까요? 지금도 내 귀에 생생하다. 너희들이 커서 돈이 있으면 돈으로, 시간이 있으면 시간으로, 기술이 있으면 기술로 사회에 환원하며 사는 것이 선생님들께 보답하는 길이라고 하신 말씀이.

 

 

그동안 남원지역사회에서 크고 작은 일에 열심히 참여하면서 일할 수 있는 것은 항상 그때 그 시절 저를 후원해 주신 장교분들과 공부를 가르쳐주신 선생님들의 목소리들이 귓가에 쟁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돈은 없지만 시간으로 받은 만큼 환원한다고 생각하고 활동을 하다보니 노후가 불안할 나이가 되었다. 노후에 청소년 시절처럼 도움을 받기 싫어서 난 채이은을 선택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7살 1987년 4월 5일 결혼을 했다.

지금의 나의 결혼생활은 행복하다. 어느 누구 하나 부럽지 않다. 6살 때부터 태권도를 시작하여 지금까지 각계 각층에 태권도를 보급하다 태권도장을 운영하는 남편과 은평구 소방서에 근무 하는 아들 박지훈, 도서관에 근무하다 경찰시험을 앞두고 공부한 야무지고 예쁜 딸 예슬과의 생활은 후회없이 행복하다

.

돈, 명예, 권력 얼마나 소중한 것들인가 하지만 우리 가족은 남들에게 관심갖고 남들에게 배려하고, 남들에게 지지받고 살고 싶은 것이 가정의 철학이다. 그동안 많은 어려움과 고난이 있었지만 이겨내고 밝은 내일을 위해 뛰어보고자 한다. 모두들.

 

 

인간이 살면서 어려움이 없다는 것은 삶이 무의미하다고 본다.

결혼하면서 결혼 10년은 꼭 자녀교육에 투자하기로 나 자신과의 약속을 했다. 모유를 먹이고 꼭 아들, 딸들 옆에서 어떤 모진 풍파가 닥쳐와도 떨어지지 않으리라고

..

나의 대학 시절의 부름

어느 정도 자녀를 키우고 나니 나란 존재를 발견하게 되었다. 많은 사회단체의 손짓, 삼십대 마지막 난 바른선거시민모임 회장이라는 이름으로 첫발을 내 딛었다. 어느 정당 정파에 치우치지 않는 깨끗한 사람으로 올바른선거문화를 정착시켜 보겠다고 61명의 여성으로만 구성된 회원들과 98, 6. 21 창립대회를 갖고 현재까지 열심히 활동하던 중 남원여성단체협의회, 남원사회봉사단체협의회등 다양한 사회활동에 참여하면서 다시 한번 배움의 꿈을 재확인하고 싶었다.

 

남성 중심의 사회 구조속에 껴 맞추기의 나의 활동이 싫기도 했다. 무엇이든지 주인의식을 가지고 열심히 하기에는 힘이 필요한데 그것은 돈과 배움 중 나에겐 배움의 기회가 필요했기 때문 서남대경영대학원 여성지도자과정을 마치고

 

서남대학교 사회복지학과에 진학하여 못다한 공부를 했다. 2004년에 졸업을 하고 바로 일반대학원 국문학과에 입학하여 조선시대 남원이 낳은 여성시인 “김삼의당의 삶과 부부화답시 연구” 라는 석사 논문은 내 인생에 가장 고귀한 결과물이라고 본다.

 

또한 자원봉사활동에 대한 전문지식의 필요성을 느껴 지난 2004년 2월 학부를 졸업하며 졸업장을 받는 수간 셋방살이에서 전전긍긍하다 좋은 집을 한 채 산 기쁨을 맛본 사람처럼 학벌에 대한 컴플렉스가 심했던 나도 그 기쁨을 맛보았다. 자신감이 생겼다.

40세가 되어 만학도로 대학을 다니면서 자녀들과 남편에게 무척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가족의 협조 없이는 그야말로 우리 가족은 가족의 순기능의 표본으로 자부하고 한다.

 

수업 중에 집에서 전화가 오면 가슴이 뜨끔뜨끔 했다. 혹시나 무슨 일이...

열심히 사회활동하 면서 또 여성활동가로서 주부로서, 아내로서 엄마로서 수강을 하면서 더 큰 목표를 향하여 학부는 사회복지를 전공했지만 이것으로는 부족하여 석사과정을 국문학을 전공한 것도 잘한일이다.

 

모든 사람들에게 많은 글을 통해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고 싶다

요즈음 세상 살기 힘들다고 다 아우성이다. 많은 사회문제와 개인이기주의의 팽배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허덕이고 있다.

 

사람이 부모 품에서 성장하면서 자신의 목표를 설정하고 목표를 향해 달린다. 그러나 그 실천은 많은 노력과 희생을 감수하면서 피나는 노력이 없이는 물거품이 되고 만다. 나는 지금도 달리고 있다. 걷는 사람이 나와 더불어 달리고 싶다면 도와서 같이 달리고 싶다.

더불어 사는 우리 삶을 만들고자 한다. 그날이 올 때까지....

 

인생의 전정한 기쁨은 스스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목적을 위해 자신을 쓰는 것이다.

세상이 자신을 행복하게 만들어주지 않는다고 불평하며 배 아파하고 열병을 앓는 이기적인 고깃덩어리는 진정한 기쁨을 얻을 수 없다.

 

나는 나의 인생이 전체 사회 속에 속해 있으며 내가 살아있는 동안 사회를 위해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는 것이 나의 특권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죽을 때 나 자신이 완전하게 소진된 생태이기를 원한다. 내가 더 열심히 봉사할수록 나는 더 오래 살아남기 때문이다. 나는 이러한 목적을 가지고 인생을 즐긴다. 나에게 인생은 곧 꺼져버릴 촛불이 아니라 일종의 찬란한 횃불이다.

이 횃불을 다음 세대에 넘겨주기에 앞서 내가 들고 있는 동안은 되도록 환하게 타오르게 만들고 싶다.


   

총 게시물 277건, 최근 0 건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2020년 남원문화대학 개강 오는 6월 25일 양경님 06-02 6186
 남원성 양경님 11-12 8088
 남원성 그 윤곽 드러나...!! +1 양경님 07-08 8939
17  여성의 힘! 변화하는 남원! +-31 관리자 03-20 1396
16  기초의원 여성출마! 선언.... +-32 양경님 03-15 1269
15  제4회 동시 지방선거 출마의 변 -기자회견문- 양경님 03-15 1227
14  양경님이 걸어온 길..... 양경님 03-13 1642
13  * 주부들 대안정치 주체로 뜨다 * +-34 양경님 03-03 1006
12  참여하는 남원여성! 발전하는 남원여성! 양경님 01-07 1323
11  KBS 전주방속국 전북투데이 출연 관리자 06-21 1337
10  문화대학 강좌 안내 +-35 관리자 04-03 936
9  향교동 주민자치위원회/위원장 양경님 향교동민 03-27 1667
8  제75회 춘향제 자원봉사자 모집 +1 관리자 03-18 1137
7  삼의당이시여! 다시 태어나시옵소서..... 양경님 03-16 1026
6  양경님 그녀는 달리고 있다. +-29 관리자 03-07 1800
5  인사말 +1 양경님 03-03 897
4  <b>2005 자원봉사자 모집</b> +-93 관리자 02-28 1118
3  양경님21에서는 "2005 더불어 사는 남원 만들기"를 진행하고 있… +-35 관리자 02-28 1925
2  YGN21 설문조사를 실시하려고 합니다. 주제를 올려주시면 참고하… +-33 관리자 02-28 1285
1  홈페이지 자료를 수집중에 있습니다. 관리자 02-28 932
처음  이전  11  12  13  14
 
Copyright ⓒ www.ygn21.co.kr. All rights reserved.     contact:
상호(법인)명: 지리산과 섬진강 세상 / 대표전화: 070-4223-4216 / 063) 625-4216 / FAX: 063) 635-4216
주소: 우)590-985 전라북도 남원시 동충동 20-17번지 / 개인정보관리책임자: 박예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