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img1]인간이 절망 앞에서 더 이상 지탱하기 힘들 때 두가지 현상이 나타난다고 한다.
하나는 자포자기하거나 불만을 표현하면서 지금까지의 자세를 허물어뜨리는 일이요, 또 하나는 자신을 억제하고 극기하면서 지금까지의 자세를 유지해 가는 길이라고 한다.
조선시대 남원출신 여류시인인 김삼의당은 많은 역경과 고난이 있었으나 지혜롭게 헤쳐나간 대표적인 분이다. 특히 김삼의당은 자기자신을 이기기 위해 많은 시들을 창작했다. 시로써 마음을 달래며 한결같이 남편에 대한 정으로 자신을 위로하며 생활했던 김삼의당! 고달픈 일상에서도 어떤 마음가짐으로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그 의미와 결과도 달라진다.
일요일은 하나님께서도 쉬는 날로 정하셨다.
일요일만이라도 좀 쉬지....... 일주일동안 못했던 집안일을 대강 해놓고 남편의 말을 뒤로 한채 그리고 무엇이든 한번 시작하면 밤낮을 잊고 해내는 나의 성격을 탓하면서 봄을 시샘하는 꽃샘추위와 동행하며 전북 진안군 백운면 덕현리에 있다는 김삼의당과 하립의 묘를 찾아 떠났다.
오후 2시에 출발, 삼의당기념사업회 준비모임을 눈앞에 두고 평소 함께 김삼의당과 하립에 관심을 갖고 연구하시던 남원사회봉사단체협의회 회장님, 사무총장님과 같이 전주-남원간 국도를 달리다 임실 성수를 거쳐 백운면 덕현리 원덕마을(구렁뜸)에 도착했다.
내동산이 병풍처럼 둘려 쌓여 있는 원덕마을 분위기는 전형적인 농촌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었다. 쟁기며 써래며 달구지며......
마침 길가던 촌노에게 하씨들 묘지를 물으니 친철히 건너편 산을 가리키며 설명해 주신다. 조그만 냇가를 건너고 산길을 따라 오르다보니 김삼의당과 하립이 우리를 반기듯 내리던 진눈깨비가 그치고 날이 환해졌다.
드디어 하씨 종중 묘지에 도착, 여기저기에 눈길을 돌리다 꿈에도 그리던 김삼의당과 하립의 묘소.......
그때의 환희란.......이루 형언할 수 없었다...
철처한 양반중심의 사회, 그리고 남성중심의 사회인 조선시대에서 김삼의당과 하립은 남과 여로서가 아니라 동격의 인간으로서 서로의 사랑을 나누었다. 양성평등의 부부사랑을 실천하셨다.
[img2] 덕태산과 성각산 사이의 백운동계곡이 보이는 곳에 비석과 함께 쌍봉으로 나란히 누워있는 모습은 세상을 떠나서도 평등 부부사랑을 확인시키고 있는 듯하다.
그 순간 문득 이희호여사와 김대중 전대통령이 집대문 앞에 나란히 문패를 걸어 놓았던 사실이 뇌리를 스친다.
현대사회는 이기적인 사회분위기 속에 휩쓸려 많은 부부들이 인내하지 못하고 이혼을 하고 있다. 그 결과 한부모 가정으로 인해 많은 사회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에서 나는 김삼의당과 하립의 부부사랑은 더욱더 빛나고 본받아야 된다는 생각에 돌아오는 길 내내 중압감에 쌓였다.
그리고 나의 이러한 작은 노력들이 철지난 흰눈처럼 되지 않기를 바라며, 빠른 시일 안에 삼의당 기념사업회가 창립되기를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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