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살아나는 막걸리 문화
전국적으로 막걸리 열풍이 거세다. 외국의 유명 브랜드처럼 막걸리 족보에 대한 얘기가 나오는가 하면 이제는 막걸리학교까지 문을 열었다니 가히 열풍이라고 밖에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다.
어린시절 양조장집하면 웬만한 지방 소도시에서는 몇 손가락 안에 드는 부자였다. 읍면(邑面) 단위 시골뿐 아니라 도심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끼니걱정을 하고 살았던 때라 그만큼 여유가 있는 집이 아니면 술을 빚을 수 없는 것이 이유였다. 오죽했으면 1965년 박정희 정권은 쌀로 막걸리 담그는 것을 금지하는 정책까지 내놨을까.
막걸리의 텁텁한 맛은 예나 지금이나 크게 변한 것 같진 않다. 나는 술을 즐겨하는 편에 속하진 않지만 학창시절 찌그러진 양은 주전자로 막걸리 심부름을 할 때부터 그 맛을 알았던 것 같다.
당시 주원료는 밀가루였다. 7, 80년대 밀막걸리를 시작으로 남원 광한루원 인근 주점에서나 맛볼 수 있었던 콜라나 사이다를 섞은 ‘칵테일막걸리’에서부터 90년대 쌀막걸리가 빚어지기까지 다양한 맛을 음미했던 것 같다.
안주에 대한 얘기도 빼놓을 수 없다. 남원시 금동에 있는 고샘골목의 대표적 막걸리집인 ‘동삼집(지금도 성업중)’의 안주거리는 주객들에게는 꽤 유명한 편이었다.
대도시에서 내놓은 파전이나 두부김치 말고도 각종 젓갈류에서부터 홍탁과 같은 발효식품, 낙지구이, 조개 꼬막구이, 병어회무침 등 다양한 나물류도 술자리를 빛내는 안주거리였다.
그러던 막걸리가 차츰 대중으로부터 멀어지기 시작한 건 식사패턴이 서구화되면서였다. 무엇보다 막걸리는 다른 술에 비해 트림이 많이 나오는데다 배가 부르다는 단점을 안고 있다. 먹을 것이 없는 시절에야 이게 좋은 요건이었지만, 현대인들은 당연히 싫어하는 요인이 아닐 수 없다.
그러면 왜 막걸리가 최근에 와서 다시 인기를 끌게 된 것일까. 지난해부터 시작된 경기침체 여파라고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웰빙바람이 만든 것이라고도 한다. 그러면서 막걸리는 다른 술에 비해 건강을 크게 해치지 않고 거꾸로 건강에 좋은 술이라는 해석이 대세가 되면서 판매량이 늘었다는 견해가 많다.
예컨대, 막걸리에는 체지방 축적을 예방하는 필수아미노산인 트립토판과 메티오닌 성분이 많아 다이어트에 효험이 있고, 유산균이 요구르트에 비해 훨씬 많이 들어 있어 변비와 피부미용에 좋다는 등의 의견들이다.
이 외에도 등산인구가 급격히 늘면서 이른바 ‘하산주’로 막걸리가 애용됐다는 얘기부터 일본에서 분 막걸리 열풍이 한국에 늦바람을 불러왔다는 설도 있다.
어떤 술 품평가는 요즘 술문화가 놀이의 성격이 짙은 때문이라고도 한다. 이를 테면 와인이 유행하면서 포도의 품종과 토양을 논하는 이들이 늘어난 것처럼 막걸리의 산지와 원료 등을 논하는 이가 많아졌다는 것이다.
하지만 소비자 조사 등 어디에도 구체적인 근거가 없어 한마디로 규정하기에는 곤란하다. 그런데도 막걸리는 소주보다 훨씬 먼저 인기를 끌었던 술임에는 틀림없어 보인다. 생산된 지방의 물맛과 깊은 상관관계를 맺고 있는 것 처럼 전해지고 있다.
이런 막걸리의 붐은 여러 군데에서 찾아볼 수 있다. 젊은 여성들의 술자리뿐 아니라 각종 회식자리, 편의점 판매는 기본이 됐다. 막걸리 전용카페가 등장하는가 하면 웬만한 골프장 클럽하우스에서도 막걸리를 어렵지 않게 마실 수 있다. 막걸리가 와인판매량을 앞질렀다는 통계보도도 심심찮게 접할 수 있다.
롯데백화점이 공개한 지난 3분기 주류 판매현황에서 막걸리는 맥주나 일본산 사케 등을 제치고 와인, 위스키에 이어 3번째였다. 또 신세계백화점에서는 막걸리에 대한 소비자 호응도가 높아 서울 강남점이나 영등포점 등에 전문코너를 열었다고 한다.
이마트와 홈플러스 등 유명할인매장에서도 지난 9월까지 막걸리 매출이 지난해에 비해 각각 160%, 100%가 늘어났다는 것이다.
다행히 우리 고장에서 생산된 전통주들도 전국 술 품평회에 뽑혀 최근 몇 년 사이에 전국적으로 유명세를 타면서 톡톡한 재미를 보고 있다.
전국 술 품평회는 국세청이 2007년 각 지방별 예선을 거친 60종의 술을 놓고 제1회 대한민국 주류 품평회를 열었는데, 우리 전통주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면서 대중화에 기여하기를 바라는 맘에서였다고 한다.
농림부도 각 도별로 예심을 거쳐 올라오는 79종의 술을 놓고 심사를 한 결과 남원 생막걸리를 뽑았다고 한다.
남원 막걸리는 소맥분으로만 발효시켜 만든 생막걸리로 7, 80년대 서민들의 애환을 달래주는 그때 그 맛을 느끼게 해준다는 평을 받았다고 전한다. 당시 심사에서도 색감이 뛰어나며 이취가 적고 향기가 뛰어난다는 평가였다.
막걸리의 부활은 단순한 술의 부활만이 아니다. 문화의 부활이자 맛의 부활이다. 남원은 춘향전을 배경으로 한 동동주로도 유명하다. 전통주인 막걸리 문화를 새롭게 브랜드화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아닐 수 없다.
알콜도수가 11도 이하로 낮은 술은 막걸리와 맥주밖에 없다고 한다. 막걸리는 단맛 신맛 탄산맛을 동시에 낼 수 있다. 특히 막걸리는 누룩과 재료가 다르더라도 중요하게도 ‘물맛’에서 승부가 갈린다. 이 또한 막걸리의 고장으로 내세울 수 있고 빼놓을 수 없는 요인이 아닐까 싶다. 기회는 다가왔을 때 잡지 못하면 그저 흘러가고 마는 것이다.
춘향골포럼 대표 윤승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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