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어린시절~
어린시절 우리의 놀이 문화는
그저..자치기,간생이,칼쌈,나무깎아 권총맹기러 전쟁놀이,제기차기
딱지치기,목자놀이,빠끔살이,가시나들은 오재미나 고뭇줄놀이..
모꼬,쌈치기 하면서 투전놀이의 생리를 옹삭하게나마 터득햇으며..
대나무활 맹긴후 산중대로 화살 맹기러 새 잡겠다고 쏴댓다.
가실엔 노오란 잔디위에 대나무로 맹긴 대발스키도 탔었으며
겨울철엔 철길옆에 세워진 전봇대 지지용 강철선 끊어내어 그철사로
스케이트날 맹기러 탔다.
옆집 순이 델고 뒷동산에 올라가 삐비 뽑아먹고..
자징기 꽝빼내어 그곳에 화약 넣어 터트렸으며 부족하면
성냥골 끝 유황성화약 뿌시가서 보충하기도했다.
산태미 들고 동네앞 또랑에 나가면 어류도감을 방불케할정도로 다양한
물괴기가 있었다.요천수 여울목엔 대사리가 그득했으며 피래미는
잡은 즉시 초꼬치장찍어 꽷잎에 싸서 묵었다.
흐레를 송구락으로 쭈욱 펴서 꽂아 긁어당기면 미꾸라지가 꼬물거렸으며
보다못한 어르신네들은 밧떼루로 지져대불먼 물괴기가 하얗게 떳다.
나는... 가장 기억에 남는 어종이 새비다..
그새비는 양념이 필요없이 무시만삐져 넣고 끓여도 참진국이었다.
그 새비를 앞으로도 영영 묵어볼수 없다는게 넘 아쉽다.
취학전 우리가 입었던 옷들은..
어무니께서 덧대 꿰매기바빳고
웃도리 단추는 매달기 지친나머지 옷핀으로
채워 주시기도 했다.
유치원이라는곳이 있는줄조차 몰랐던 우리가 핵교를 갔다.
대부분 10리 거리는 기본으로 걸어다녔다.
좀 여유있는 집 아니고선..
책가방대신 책보를 각기로 메고..
벤또 반찬은 콩자반이나 멜따구 볶아 묻힌것이 최고였으며
계란후라이 한판 덮어주면 행복했다
그러나 글케좋은 짐치는 아마도 그 남새땀시 싫어했던듯..
목간통 가는것은 년례행사 정도로 인식했던시절..
힌두줄 다오다 빤스입고 노트한권 연필몇자루 타볼려고
죽을힘을다해 담박질 해대던 우리들의 운동회였다.
정월 대보름엔 달집지어 불싸지르고 놀았으며 농짓대 높이 치켜들고
고수의 지휘아래 풍악을 울려댔던 이웃동네와의 자존심대결도 기억난다.
노환으로 돌아가신분의 상여가 나갈땐.. 어렵게 깃발하나 챙겨들어 세우면
용돈을 벌었다. 소위 요즘 야그허는 아르바이트의 원조라해도 손색없다.
핵교 파하면 풀한망태기는 해놓아야 공부를 하거나
놀수있는 자유시간이 주어진듯하다.
해걸음이면 매놓은 소나 염소를 집안으로 몰아
온후 쇠죽 끓이고 그랬었으며..
또 해가 짧아지는 시기에는 겨울 땔감 장만하느라 매일 대산면
큰산까지 그먼길을 찰가리나무 긁어모으러 가신 부모님을 마중나가
앞도 안보이는 리어카 뒤에서 좃빠져라 밀었다..
그 어릴때 무슨 아침잠이 그리도 고소하고 맛났던지..
차앙원아아~~~~ 그만 일어나이~~~ 핵교 늦것다이~~~
손바닥으로 투박한 마루를 쳐대며 불러대는 우리 어머이 목소리다.
음지에는 아직도 살얼음이 잡히는 시기..
지난 겨울 도장에 잘 보관해뒀던 씻나락 꺼내서.
밤갈색 고무다라에 쏫아붓고 발아촉진제던가 소독약이던가?
약 풀어타서 담수해뒀다가 파종한것으로 기억난다.
시커먼 고운흙뻘속은 아직 차가운 냉기가 대단한데도
망종(芒種)이 되면 여지없이 모판 맹기러 못자리 한다..
이어지는 비닐씌우기.. 조금 자라면서 피뽑기..
드뎌 모내기다..
못줄 잡다가 모숭궈 보겠다며 일도 못하면서 온몸에 흙물로 도배하고..
농삿꾼인양 폼도 내봤다.
무더운 여름이 끝나가면 누렇게익은 밀,보리타작을 했다.
뙤약빛 논밭에서 베어다 싣고온 보릿다발 밀다발을 털어내기 위해
마당 구석진곳에 시커먼 무쇠 사각뭉치(발통기)를 엔지니어가 튀나온
코를 누르고 바쿠를 공회전하다 코를 놓으면 시동이 걸리는것 같았다.
그 굉음은 처마끝은 물론이고 서까래를 흔들만했다.
그 텁텁한 몬지며 까끌이가 몸속을 파고들어 끈적하게 흐르는 땀과
궁합이 맞아 연한 피부를 사정없이 찔러총 당했다.
나락은 홀태를 쓰다가.. 앵앵거리며 돌아가는 발구동식 탈곡기
로 업되었다.
메주콩을 털을땐 도리깨질을 했는데.. 상당한 기술을 요했다.
동네 샴 은 빨래하는 어머니들의 대화장이었으며..
무더운 한여름..마당 구석탱이에 피워놓은 모굿불에 켁켁하면서도..
학독에 폿삶아 붓고 폿독으로 갈아 체로 폿껍데기 걸러낸후 밀가리 반죽해서
숙숙썰어 넣어 끓인 폿국시맛은 천하일품이었다.
간식거리가 별로 없었던때라..산에 쌀칡캐러 올랏으며..
개칡 먹고나면 주딩이가 시컨스됫다..핵교 파하면서 보리모가지 꺾은후
나뭇가지 불내서 구워 비벼먹고나면 주디 시커먼스는 매일반..
밀은 씹어 뱉고뱉어 껍질 발라내면 그것이곳 요즈음의 끔이나 다름없었다.
대밭 울타리에서 캐먹던 돼지감자며..
한겨울 웃목엔 대발로세운 창고에 감자(고구마) 가그득했으며 밤참으로
손색이없었으며..하지감자 열매씨 살살 긁어내면..그것이 곳 때왈이렸다?
이로인해 콩너물 대가리 음을 터득하는 기초였던것 걑고..
봄바람 불면 버들가지 꺾어 비틀어맹긴 버들피리의 실력으로
강원도 여정에서 그누가 그리 나발을 잘불어댔던가...?
사업상 울동네찾은 한겨울의 엿장수 아자씨...
찰그렁 찰그렁 가위질함서.. 유순했던 우리들의 미각을 자극하면..
숨겨둔 어무이 비녀,잘라놓은 머리채, 모아놓은 빈병..
통큰 아그덜은 놋쇠그릇, 숟구락 아예 두지에 쌀도 퍼냈던것 같다.
잔대가리를 굴렸던 아그덜은...
조를 편성해 한두늠은 지겟 작대기를 슬쩍 걷어차고 담박질해
도망치면 2조는.. 땅에 달팍 엎어진 엿판을 수습해가고 남은 엿토막몇개를
부산물로 얻기도했으며 과수원이나.. 수박밭 참외밭 물외밭에 드가서
너무것 안돌라 묵은사람이 어디 있을런지?
여름철엔..
아이수케키 장시가 글케 멋져보여서 사먹다 못해
누님을 졸라졸라 장시도 한번 해봤다..
다 못팔고 녹아서 먹다 먹다 남아서 물로 변햇다?
고숙께서 비닐우산 공장을 한덕에. 비오는날 우산장시도 해봤다?
남원서국민핵교를 평범한 성적으로 졸업한 나는?
뺑뺑이를 돌려 용성중핵교를 입학했다..
먼길이니 자징기를 꼭 배워야했다.
자징기를 배우면 아부지가 사주신댄다.
동네앞 널따란 비행장에서 달밤에 힘에부치는 꼬마가 진빠자징기로.
자징기 세우는걸 배웠다.
너무 신이났다. 핸틀은 거무티티 진빠중고부품 같아보였고..
후크는 용접땜질한 재생품.. 그래도기름 발라놓으니 탈만해 보였으나.
개학해서 막상 핵교엘 가보니 쪽팔려 죽는줄 알았다.
다 신삥 자징기로 비까번쩍했기 때문이다.
앞마당에 거꾸로 뒹굴러 떼를 써댄결과 뻔데기 공장에서 돈벌던 누님께서
드디어 새걸로 바꿔주셨다 ..
도시생활을 하면서 찾아든 어렵고 힘들었던 그 시기에..
허약한 손을 잡아주었던 친구들이..
바로 고향친구들이었다. 그 친구들에게
마음의 빚을 지고 살아가고 있음을 고백해본다.
자랑스러운 나의 고향은 춘향고을 남원..
[우리가 자라온 어린시절의 고향을 토대로 ..향수에 젖어 두서없이 써내려간 넋두리입니다.
공개된 창에 올리기에는 다소 부적절한 방언이 많지만..선후배님들의 이해를 구합니다. ...]
2회 졸업생 서창원 씀..
댓글 0 개 이 글을...(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