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원서원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을 지도하고 대곡으로 한 이이를 데려다 주러가면서 항상 만나는 장승이 있다. 내가 어렸을 때 그곳은 엄마 따라 밭에 갔던 길이다. 그런데 어느날 장승이 노인들만 살고 있는 동네와 논밭을 지키는 수호신역을 톡톡히 하고 있다. 아직 문화재적 가치는 없지만 내 고향입구에 있기에 내가 모습을 담아 보았다. 장승은 사람의 머리 모양을 새겨 마을 어귀나 절 어귀에 세운 기둥 모양의 형상을 하고 있다. 장승의 기원에 대해서는 고려 시대 절에 설치한 서민 금융 기관인 장생고에 속하는 절의 밭을 표시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목장승은 솟대에서, 석장승은 선돌에서 유래한 것이라는 등의 여러 가지 설이 있으나 확실한 기원은 알 수 없다.
장승의 명칭도 여러 가지여서, 지방에 따라 장승·장성·벅수·법수·당산할아버지·수살목 등의 이름이 있다. 장승의 재료는 기본적으로 나무와 돌이다. 돌로 만든 것을 석장승, 나무로 만든 것을 목장승이라 하는데, 목장승이 더 많다. 목장승은 소나무나 밤나무를 주로 사용하는데, 비바람에 10년을 넘기지 못하고 부식하므로 매년 또는 2∼3년마다 장승과 솟대를 새로 만들어 세운다.
장승은 하나만 서 있는 경우도 있으나, 보통 한 쌍의 남녀로 이루어져 있으며, 남상은 머리에 관을 조각하고, 앞면에 ‘천하 대장군’ ‘상원대장군’이라는 글을 쓰며, 여상은 관이 없고 앞면에 ‘지하대장군’지하여장군’ ‘하원대장군’ 등의 글이 새겨 있다.
장승은 지역 간의 경계 표시 또는 길을 일러주는 이정표의 구실도 하지만, 마을의 수호신으로서의 구실이 더 크다. 길가나 마을 경계에 서 있는 장승에는 그것을 기점으로 한 사방의 주요 고을 및 거리를 표시하였다. 수호신으로 세운 장승에는 이정 표시가 없으며, ‘천하 대장군’의 표시도 없고 마을의 신앙을 대상으로서 주로 액병을 빌었다. 때로는 개인의 소원 성취를 기원하는 대상으로서의 신앙적인 성격과 더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신앙의 대상이기 때문에 장승은 신성시되며, 함부로 건드리거나 손대지 않는다고 한다.
특히 장승은 17세기부터 18세기에 걸쳐 전국적으로 세워진 불교 계통의 수호신상이라고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