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춘향의 화신인가 물새할머니
지난 3월31일 어머님(96세)께서 중풍으로 남원의료원 응급실에 입원했다가 4월1일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기 시작하였다.
말 그대로 중환자실은 생과 사의 갈림길에 놓인 환자들이 대부분이었다. 여기 저기 서 들려오는 환자들의 신음소리와 분주하게 오고가며 환자들을 보살피는 간호사들의 애환이 깃든 곳이다. 96세까지 고향집을 지키시며 건강하게 살아오신 어머님께서 급작스레 중풍으로 입원하시고보니 앞이 캄캄하고 어떻게 해야 좋을지 막연하기만 했다. 대신 아파드릴수도 없고 할 수 있는 것이 곁에서 지켜 드리는데 그칠 수밖에 없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 이었다.
그러면서도 중환자실에 입원해 있는 환자들의 내면을 직접 볼 수 있었다. 간병하는 가족들도 가까이에서 접할 수 있었다. 그런데 바로 옆 침대에 할아버지 한 분이 입원하셨다. 우리도 고향이 수지인데 그분 고향도 수지출신이라고 했다. 할아버지는 82세이신 고 박환중씨이고 할머니는 83세이신 노길례씨라고 했다.
그렇지 않아도 환자를 돌보는 마음이 똑 같은 심정인데 고향이 같으니 더 가까워지는 계기가 되었다. 할아버지의 병세는 폐가 많이 안 좋아 계속 기침을 하시고 가래를 수도 없이 뱉어내시는 것이었다. 자녀는 3남1여라고 하는데 모두가 바쁘게 살고 있어 간병은 할머니 몫이었다. 가끔 아드님도 다녀가시고 따님도 곁에 있었지만 중환자실엔 환자 침대만 있고 간병인이 앉을 수 있는 의자마저도 없는 실정이었다. 그런 와중에도 할머니는 하루도 빼지 않고 병상을 지켰으며 좁은 침대위에 쪼그리고 앉아 수없이 뱉어 내는 가래를 계속 닦아 주시면서도 얼굴 한번 찡그린 모습을 보지 못했다. 누구나 할 것 같은 일이지만 직접 겪어보면 참 어려운 일이다. 83세의 자그마한 몸인데 저렇게 지극 정성으로 간호를 하시는지 곁에서 보는 나도 크게 감명을 받았다. 밤잠도 설치시며 좁은 침대에 쪼그리고 계시다가 피곤에 지쳐 온몸을 구부린 채 누워 계시는 할머니가 이 시대 춘향의 화신인 듯 싶었다. 할아버지는 성균관대학교를 졸업하시고 김구선생 밑에서 독립운동을 하셨다. 김구선생이 피살된 후에 고향에 내려와 공직에도 계셨고 국가 유공자라 한다. 힘겨운 어머님 간병을 하면서도 곁에서 간병하시는 할머니를 보면서 많이 닮고 싶었고 위안도 많이 받았다. 수없이 뱉어내는 가래를 손수 닦아주시는 할머니 정성에 감히 가래가 더럽다는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그냥 지나치기가 아쉬워 남원투데이 신문사에 전화해서 기자 분들이 오셔서 인터뷰도 해주시고 모습도 사진을 찍었다. 이것이 내가 할머니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라 생각이 들어 투고하게된 것이다.
그런데 사진 찍던 그날 밤 두 시간 후 12시 30분에 할아버지가 이 세상을 하직하셨다고 한다. 인터뷰하고 있는 동안 긴 시간을 기침 한번 하시지 않고 경청하셨던 그 할아버지였는데, 아주 평화스런 모습으로 보고 계셨는데, 유명을 달리하시다니요. 할아버지의 명복을 빕니다. 자칫 지나칠 뻔 했고 하마터면 놓칠 뻔 했던 아름다운 모습의 할머니, 오래오래 행복하고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