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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여 한국여성단체연합 359,080

글쓴이 : 여성운동가 날짜 : 2008-08-18 (월) 18:57 조회 : 952
급여 한국여성단체연합 359,080

"우리 잠깐 회의 좀 하자!"
사무총장의 얼굴이 어둡다.

전에 기금담당자에게 들은 얘기도 있고, 최근 총무간사의 '물자절약' 압박으로 우리 모두 사태의 심각성을 알고 있었으나, 막상 총장의 얼굴을 보니 장난이 아니다.

회의자료의 제목은 <여성연합 기금마련 기획안>이었다.
'후원회를 조직한다, 소액 자동이체 회원을 모집한다' 등등의 안이 제출되었으나, 이건 별로 새로운 얘기가 아니다. 이미 모두 공유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단기자금이 없다는 것. 그래서 이번 달 활동비도 50% 밖에 못 나간다는 것이었다.
9월에 후원행사할 때까지 앞으로 서너달은 계속 이럴 수도 있다고 한다.
사무총장은 너무 미안한 얼굴로 양해해 달라고 했다(자기도 우리와 같은 활동가면서 직원들 월급 못주는 사업주라도 되는 것처럼).

'각종 세금, 보험료, 카드대금 다 빠져나가고, 아이 생활비 빼면 10만원도 안남는데…'
'곧 시어머니 생신인데…'
'지난 달에 카드 엄청 썼는데, 신용 불량등급에 오르는 거 아닌가…'
다들 머리 속이 어지럽지만, 아무도 속내를 말하는 이가 없다.

오히려 큰소리다.
"까짓것, 어떻게든 되겠지뭐."
"사업이고 뭐고 다 집어치우고, 내일부터 노가다라도 하러 가자!"
"넌 영우 업고 지하철로 쪽지 돌리러 가고, 넌 힘 좋으니까 새벽에 인력시장에 나가봐."

푸하하하.
어색한 분위기, 미안한 분위기를 뒤집으려고 다들 허풍이 세다.

여성연합은 그동안 독일의 한 재단으로부터 재정적 지원을 받아 운영을 해왔다(독일에서는 교회세를 가지고 제3세계의 NGO를 지원하는 재단들이 있다. 참 좋은 나라다). 그런데 한국이 OECD에 가입을 하자, 부자나라가 되었다고 지원을 할 수 없다고 한다. 덩달아 우리까지 부자 단체로 취급을 받아, 올 7월부터는 지원이 중단된다.

통장에 찍힌 '급여 한국여성단체연합 359,080'을 보며, 가난하다는 것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봤다.
가끔 여성운동가를 매우 독특한 사람인 양 생각하는 사람들이 묻곤 한다.
"그 돈 받고 어떻게 살아요?"

난 그저 "있는만큼만 써요." 한다.
"결혼하고 나니까 집안 대소사 있을 때 조금 어려워서 그렇지, 별 불편 없어요."
(그런데 이 달에는 좀 불편할 것 같긴 하다. 크크~)

우리집의 수입은 환경운동을 하는 남편과 내 활동비를 합쳐 한달에 160만원 가량.
(흔히들 말하는) 맏아들, 맏며느리 노릇은 하나도 못하고 산다. 쌀이며, 온갖 밑반찬이며, 가끔 다니러 가면 차비까지... 오히려 아직까지 시댁의 도움으로 산다고 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아이문제는 또 어떤가?
친척댁에 맡기면서 생활비 겨우 15만원 드린다(그것도 아이가 18개월되면서부터). 허구헌날 반복되는 야근때문에 10시, 12시에 찾으러 가는 일도 다반사. 매일같이 미안하고 빚진 마음으로 아이를 맡기는 내 일상이 비참하게 느껴질 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아침마다 떨어지지 않겠다고 울어대는 아이를 볼 때는, 정말이지 내가 뭐하는 짓인가 싶다.
아무 일이나 해도 이 돈보다는 많이 받을 수 있을텐데, 여러 사람 희생시켜 가면서 나 좋다고 이래도 되는가 싶다.
돈 버는 일 하면서 여성단체에 후원금이나 내고, 그들이 이룬 운동의 성과를 즐기고 싶을 때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왜 여기 있는가? 왜 여성운동을 포기하지 못하는 걸까?

아마도 그건, 내가 다른 일을 해도 지금보다 더 즐거울 수는 없을 것 같은 불안감과
이 세상의 모든 딸들이 좀 더 평등하게 살길 바라는 희망때문이 아닐까?

어서 빨리 여성운동가가 생활고 때문에 고민하지 않고 일할 수 있는 사회,
누구나 자신의 월급 중 1%만이라도 시민단체에 후원하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나저나 이번 달 생활비는 어디서 빌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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