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원성은 남원최고의 호국의 성지다. 특히 조선조 정유재란 당시 전국 최대 격전지(사적 298호)로서 남원지역의 선열들이 호국의 열정과 후퇴하지 않은 결사항정으로 산화하신 곳이다. 그렇게 남원성은 남원정신으로 남아 오늘에 이르고 있다. 성곽구조는 삼국시대에 최초로 축성되었고 조선시대에 다시 크게 재수축한 읍성으로 인근의 피난성인 교룡산성과 같이 호국의 성지로 널리 알려져 있는 곳이다.
남원성의 일반현황으로는 둘레가 약 3.5 km(동벽 866m, 서벽 850m, 남벽 870m, 북벽 855m, 성내 넓이 740.025㎡(223,858평)이고 높이 5.4m(18척), 치성 16개소, 옹성4개와 4대문, 치첩 1016개, 여장이 높이 있었고 해자(넓이 6m)와 마면 16개소이 있었던 조선8도의 유명한 백제식 읍성이다.
조선조 정유재란 당시에는 일본군 5만 6천명과 대항해서 조선군은 1천명 주민과 명나라원군 3천명이 6천 남원백성과 함께 싸워 아군 일만 여명이 순절한 역사문화사적인 국난극복의 현장이다. 구한말 일제에 의해 철저히 보복을 당하고 1960년대 전 박정희대통령의 지시로 다시금 호국성지로 개발된 뒤로는 현재 남원성 300미터 정도로 인근의 만인의총과 함께 국가 사적으로 모셔져 있다.
남원성은 그나마 일제 강점기에 모두 헐리고 일제가 스스로 이주시킨 자국일 일부와 조선민에게 남원성안의 많은 땅을 악의적으로 불하하여 현재 개인사유지로 만들고는 성곽복원이 더욱 어렵도록 만들어 놓아 문화침탈의 대표적인 현장으로 인식되어 있다.
성곽의 형태로는 북벽 일부 212m 정도의 기단부와 치성터가 남아 있고 1989년, 1997년, 1998년, 1999년 4차에 걸쳐 성벽과 치성만 복원하고 공사가 중지되어 있다. 따라서 현재 복원되어 있는 성곽과 성벽위에 치첩과 여장을 원형으로 올리고 치성에는 우루를 건립하면서 성벽 앞에는 해자를 파 남원성의 옛 면모를 일신하여 원형복원에 가깝게 갖추어 완결하여야 한다.
물론 한국철도공사부지의 옛 남원성터 역시 철도공사에서의 남원시로의 이관이 이루어져 자연스럽게 호국의 혼을 심고 역사문화관광자원을 통해 남원의 도심을 다시금 재생해야 할 것이다.
남원성은 국가사적으로 1982년 11월 3일에 지정되어 관리고 있으나 일부 성벽만 복원되어 있을 뿐 마치 집주변의 담장모양과 흡사한 형태로 왜곡되어 있으며 남원성의 전체 규모 등을 전혀 알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현재 그 훼손정도도 역시나 심하다.
또한 우리역사를 배우고 고적을 답사하러온 분이나, 관광객, 외국인들에게 우리문화유산을 알리고 전승하는데 국가사적답지 않은 큰 문제점을 노출하여 지역의 큰 숙원과제를 안겨주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향후에는 남원성의 복원을 위해서라도 잔존부분 212m에 치첩과 여장, 해자, 우루 등을 조성하여 완전하게 복원하게 되면 일부분이지만 남원성의 전체윤관과 규모를 알 수 있을 것이고 정유재란 남원성 싸움의 처절함과 조명연합군과 왜군이 사용하였던 임란고무기를 구입(복제품)도 볼 수 있는 만인의총 기념관에다. 남원성에서 고무기를 발사 재연하면 그야말로 관광자원으로, 호국정신을 고양하는 학습장이 될 것이다.
이제 서울의 일부 궁궐에서만 행하던 450년전 조명연합군의 사열식 등이 남원성에서 복원한다면 남원성 인근의 유명한 관광명소인 관왕묘와 만인의총 또는 공설시장 등 지역에서 전설로만 치부되고 있는 중국 모택동 주석의 부친인 모광대의 묘가 있었다는 곳으로 추정되는 남원 만행산 등과도 연계되어 중국관광객도 유입할 수 있는 세계적인 문화관광명소가 될 것으로 사료되는바 하루속히 소외되고 낙후된 지리산권 관광발전을 위해서라도 남원성의 복원건립은 서둘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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