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교(巫敎)는 왜 정통종교로 인정받지 못하나
글쓴이: 天一將軍 조회수 : 0 08.05.01 02:08
http://cafe.daum.net/sonofwin/4yhv/16 무교(巫敎)는 왜 정통종교로 인정받지 못하나
통계청이 발표한 '2005년 인구주택총조사 인구부문 전수집계결과'에 따르면,
2005년 11월 현재 종교인은 2497만 명으로 전체 인구의 53.1%를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으며,
문화관광부가 2006년에 발표한 2002년도 종교단체 수는 불교 105개, 개신교 170개, 천주교, 유교, 천도교, 원불교, 대종교 각 1개, 그 밖의 종교 44개 등 총 324개 단체이며, 교당 수는 불교 22,072개, 개신교 60,785개, 천주교 1,258개, 유교 730개, 천도교 283개, 원불교 520개, 대종교 109개, 그
밖의 종교 4,992개 등 총 90,749개의 교당이 있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리고 문광부가 발표한 2006년 8월 31일 현재 ‘종교법인체 총괄표’를 보면,
총 559개의 단체가 비영리법인으로 등록되어 있다.
상기 통계치는 무교가 제외된 수치인데
무당의 숫자는 10만 명이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우리나라의 정부는 무당을 종교인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으며,
무교는 종교가 아니라고 판단하고 있다.
사실 종교가 국가로부터 공인을 받는다는 자체가 종교의 근본을 무시하는 행위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국가 혹은 시민 대중으로부터의 인정은
종교와 미신의 경계선을 구분하는 중차대한 일이기도 하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일부 종파의 종교만을 문화관광부에서 법인으로 허가하는 상황 하에서는
문광부 등록이 정통종교 혹은 기득권의 상징으로 인식되고 있음도 사실이다.
현실이 이렇다보니,
무교 관련 단체들이 문광부 허가를 득하기 위해 수없이 등록 신청을 하는 사례를 빗고 있다.
그러나 문광부가 관행적으로 무교관련 단체의 법인화를 인정해 주지 않다보니
편법을 이용한 사례가 빈번히 일어나고 있다.
무교에 관한 정부의 정책
대표적인 것이 2000년도에 행정자치부에 사단법인으로 등록한
<대한경신연합회>와 2006년도에 문화관광부에 등록한 <한국설화신화토속문화진흥협회> 등이다.
1955년 경 <대한승공경신연합회>로 출발한
<대한경신연합회>나 종교단체가 아닌 문화단체로 등록한 <한국설화신화토속문화진흥협회>나
모두 무교인들의 염원을 충족시키기에는 태생적 한계를 보이고 있다.
그 외 <한국무속협회> <한국 무속인 총연합회> <한국무속인협회> <한국민속문화경신연합회>
<천우종> <단군신앙불선종>등 무교관련 단체는 수없이 많지만,
문화관광부에 <무교>라는 명칭이 정식으로 등재된 단체는 아직까지 단 하나도 없음이 현실이다.
그러면 이쯤에서 문화관광부가 무교 관련 단체의 등록을 반려한 사례 몇 가지를 소개하겠다.
1)수신자: 이춘섭 제목: '한국무속총연합회' 법인 설립 허가 신청서 반려
ㅇ전통민족문화관련 비영리 법인의 설립은
전통민족문화의 계승발전과 건전한 문화생활을 통한 국민 문화복지 증진이라는
정부시책에 부응해야 된다고 봄.
그러나 귀 법인의 설립목적인 무속의 발전은 이러한 정부시책에 부합되지 않는다고 판단됨
ㅇ또한 무속관련 법인을 허가할 경우 정부로부터 합법성을 공인받는 효과로
무속의 확산과 무속관련 단체 난립을 조장할 우려가 있고,
현재 사회 통념상 무속을 국가가 육성해야할 사회적 타당성을 인정받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보기 때문임
2)수신자: 이기현 제목: 한국무속문화인협회’ 법인 설립 신청서 반려
ㅇ비영리 법인의 설립을 위해서는 국민의 문화 향수권 확대와
건전한 문화생활을 통한 국민 문화복지 증진이라는 정부 시책에 부응해야 함.
ㅇ귀 법인 설립의 주목적인 무속신앙 진흥은 이러한 정부 시책과도 맞지 않고,
현재 사회 통념상 무속을 국가가 육성해야할 사회적 타당성을 인정받고 있다고 보기 어려움.
우리나라 정부가 무교에 대해서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가는 상기에
예를 든 두 가지 사례만으로도 충분하리라 본다.
우리나라에는 외국과 같은 종교관련법이 없다.
단지 ‘문화관광부 및 문화재청소관비영리법인의 설립 및 감독에 관한 규칙’이 있을 뿐이다.
이에 따라, 문광부는 자체 내의 규칙에 의해 종교계 비영리 법인에 대한 설립 및 감독을 하고 있다.
문광부의 ‘문화관광부 및 문화재청 소관 비영리 법인의 설립 및 감독에 관한 규칙’ 이라는 것도
그 내용이 부실하다 보니 담당 공무원의 자의적 판단에 의해 업무 처리가 되고 있는 실정인 데,
향후 ‘종교법인법’이 제정된 후 문광부 내의 조직과 담당 공무원 등이 보강되거나
공신력 있는 유관 시민단체 등이 감시하는 방법론에 대해 심도 깊게 논의되어야 할 것이다.
종교에 관한 법적 제도적 장치가 허술한 결과,
각 종교 단체의 입장으론 거의 생존이 걸려 있다고 할 수 있는 비영리 법인 등록이
종무실 직원의 임의적 판단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어이없는 일이 너무나 당연하게 일어나고 있다.
대법원의 판례도 어쩔 수 없이 문광부 직원의 자율적 판단에 손을 들어 줄 수밖에 없다.
종교관련법이 없다보니 소위 정통 종교라는 곳에서 사회적 일탈 행위를 일삼고 있고,
종교관련 단체의 등록을 임의로 해도 전혀 규제를 받지 못하고 있다.
종교법인법은 하루라도 빨리 제정되어야할 법이다.
그러면 언제부터 소위 정통 종교들은 기득권으로서의 특수성을 인정받게 되었을까?
무교가 종교로 인정받지 않게 된 근본 연유
일본군국주의를 합리화하고 종교단체를 통제하기 위해서 제정한 악법이기는 하지만
1939년도에 제정된 ‘종교단체법’은 종교단체 재정의 투명화면에선 지금도 참고할 면이 많은 법이다.
그리고 종교단체에게 소득세, 법인세를 면제한 제22조 등을 보듯
종교인과 종교단체에 대한 과세의 구분도 분명히 되어 있는데,
부언하자면 일제하 종교인들은 모두 소득세를 납부했다는 뜻이다.
한편, 이 ‘종교단체법’은 1945년 종전을 경계로 한국과 일본 두 나라에서 별도의 운명을 맞게 된다.
일본의 경우 이 법을 기초로 하여 1945년 ‘종교법인령’을 거쳐 1951년 ‘종교법인법’ 이 제정된 반면
우리나라의 경우 미군정 시절 종교단체법이 폐지된 후 대체입법이 이루어지지 않게 된다.
당시 사회가 혼란스러웠고 일제에 대한 원한, 복수심등으로 인해
종교단체법의 대체입법에 대해 모두들 무심했던 듯하다.
일본 천황을 우상화하고 군국주의 근본 이데올로기를 제공했던 ‘종교단체법’ 이 비록 악법이라고 할지라도
이 법의 대체입법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은 우리에게 종교의 권력화를 허용하게 된 비극적인 단초라고 판단된다. 그러면 종교단체법이 폐지될 당시, 영향력을 행사했던 이들이 누구 누구였는지 알아보기로 하겠다.
1945년 9월10일 점령군으로서 군정장관에 임명된 아놀드(A. B. Annold)소장은
9월11일 교육담당관에 락카드(E. L. Lockard)대위를 임명하는데, 교육에 대해 전혀 문외한이었던 그는
총독부 마지막 학무국장이었던 엄상섭의 자문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엄상섭의 추천으로 오천석, 백낙준 등이 참여하게 되면서부터
친미 유학파들이 신생 대한민국의 교육과 종교관련 기본 정책을 주도하였다고 보면 된다.
오천석, 백낙준은 소위 천연동 멤버들이었는데,
미군이 진주하기 전인 해방 후 약 2주일 후 김성수, 유억겸, 김활란, 오천석, 백낙준 등 5명이 서대문구 천연동 김활란의 친구 집에서 모임을 가졌다. 이 모임의 명칭을 ‘교육간담회’라고 했으며
이후 이 모임은 미군정 시절 ‘한국교육위원회’의 모태가 되었다.
당시 홍명희 등이 주축이 된 ‘조선학술원’이 교육, 문화, 종교 정책을 주도했더라면
우리나라의 역사는 어떻게 바뀌었을까하는 원망과 안타까움을 전한다.
1945년 9월 16일 구성된 ‘한국교육위원회(The Korean Committee on Education)’는
김성달(초등교육, 휘문의숙 교장), 현상윤(중등교육, 경성대학 예과부장), 유억겸(전문교육, 연희전문 부교장), 김성수(고등교육, 보성전문 교장), 백낙준(교육전반, 연희전문 교수), 김활란(여자교육, 이화여전 교수), 최규동(일반교육, 중동학교 교장) 등 7명이 최초의 구성원이었다.
이후 윤일선(의학교육, 세브란스의전 교수), 조백현(농업교육, 수원고등농림학교 교장), 정인보(학계대표, 연희전문 교수) 등 3명을 추가하여 10인의 위원회로 확대 개편되었다. 통역과 연락사무는 주로 오천석이 맡았으며,
12월 19일에 교육위원 가운데 유억겸이 한국인 학무국장으로,
그리고 오천석이 부국장으로 임명됨으로써 한국교육위원회는 학무국 행정에도 직접 참여하였고,
교육위원들은 이외에도 각 교육부문의 요직에 배치되었다.
한국교육위원회는 정부 수립 이후 문교부의 전신이 되는데, 유억겸, 김성수, 김활란, 백낙준 등의 친일 행위에 대한 자세한 논의는 이글에선 생략하겠지만 결국 대표적인 친일파 혹은 기독교인들이 반공, 친미로 둔갑하여 우리나라의 백년 교육, 문화, 종교 정책의 근간을 좌지우지했던 셈이다.
한국교육위원회가 구성될 당시 기독교인들이 대부분이었던 천연동 멤버들이 참여하지 않았다면 ‘종교단체법’의 대체입법이 이루어졌으리라 짐작한다. 그런데 정말 궁금하고 이해되지 않는 사실이 하나 있다.
교육과 종교 등의 정책을 주관했던 김활란, 오천석, 백낙준 등은 미국에서의 유학 경험과 선교사 등을 통해 미국의 종교 정책에 대해 최소한의 지식과 정보를 가졌으리라 본다. 그렇다면 미국의 정교분리 원칙과 비영리법인의 재정 투명화 정책에 대해 알고 있었을 터이다. 그런데 왜? 한국의 종교단체만 이러한 규정이 적용되지 않게 하였을까? 그들이 진정한 친미주의자였다면, 미국이 행하고 있는 종교단체 재정 투명화에 대해서도 모방을 했어야하지 않았을까?
물론 그들이 한국의 종교계가 지금처럼 성장을 하고 파렴치한 행위를 일삼는 단체로 전락하리라
예상을 못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법치주의를 표방한 신생 대한민국에 종교계라는 치외법권지역을 허락한 천연동 사람들
그리고 한국교육위원회 위원들은 ‘종교법인법’이 제정되는 그날까지
민족에게 두고두고 참회를 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토머스 페인은 그의 저서 <이성의 시대> 서문에서 “인간은 평등하다. 그
리고 정의를 행하고 자비를 사랑하고 모든 인간을 행복으로 이끄는 것이 종교이다.
여기서 벗어난 종교는 이미 종교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권리만 행사하고 의무는 전혀 없었던 정통 종교들이
과연 종교로서의 자격은 갖추고 있는 지 곰곰이 생각해 볼 때이다.
지금까지 왜 우리나라에는 다른 나라와 달리 종교관련법이 없는가에 대해서 간략히 살펴보았다.
필자 개인의 소견으론 우리나라도 일본과 같은 ‘종교법인법’이 하루라도 빨리 제정이 되어야 한다고 본다.
종교법인법 제정의 필요성
왜 종교법이 아니고 종교법인법이 제정되어야 하는가하는 의문에 대해 간략히 설명하고 넘어 가는 게 좋을 듯하다. 보다시피 미국의 제도를 따르자면, 사학법이나 사회복지법 등 기존의 비영리법인 관계 특별법을 모두 폐지해야 한다. 그리고 독일과 같이 종교법을 시행하면 종교세를 부담해야하는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일본은 우리의 법체제와 매우 유사한데, 우리나라와 같이 사학법, 의료법 등이 시행되고 있다. 우리나라와 다른 점은 종교법인법이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우리나라도 종교법인법을 제정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라 할 수 있다.
현재 일본은 20만에 가까운 종교법인이 있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는 겨우 559개 단체만이 종교관련 법인체로 등록되어 있다. 일본의 예를 적용하자면, 우리나라의 경우 적어도 10만개 이상의 단체는 법인으로 등록되어야 할 듯싶다. 물론 무교 관련 단체도 법인으로 등록하여 음지에서 양지로 나와야 한다.
무교는 오랜 세월이 흐르며 단순한 종교로서 만의 기능이 아닌, 복합적이며 사회적인 기능을 맡아왔기 때문에 우리 한국인의 심성 전반에는 그 영향력이 강하게 남아있는 것이 사실이다. 반면 무당은 예나 지금이나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해왔다. 조선시대에는 유교가 사회의 기본이념으로 자리 잡은 가운데 무교는 혹세무민의 세력으로 양반들의 공격받았으며 소위 팔천의 하나로 백안시되었음이 우리의 역사였다.
또한 근대 개화기에 이르면 우리의 전통문화를 말살시켜 철저히 식민지화시키려는 일제에 의해, 이후에는 이승만, 박정희 등 독재정권의 전통 미풍양속 말살정책에 의해, 그리고 근래에 이르러서는 서양문물과 같이 유입되어 무섭게 성장한 기독교 세력에 의해 맹렬히 공격받으면서, 현대의 무교는 우리사회에서 하나의 종교로 인정받기보다는 민간신앙이나 심하면 미신쯤으로 오해받아온 것도 사실이다.
한편, 현대에 이르러서는 가짜 무당들이 나타나 사기를 치고 거짓예언을 늘어놓아 민심을 혼란하게 하고 돈을 부당하게 갈취하는 일도 인정해야만 한다. 무교 관련자들은 인정할 것은 인정하고 반면 새로운 무교의 가치를 발굴함으로써 사회적으로 점차 음성화 되고 있는 무교를 하나의 전통신앙으로 떳떳이 등장시켜야만 한다.
무교인의 숙제
무교는 당연히 문광부에 정통종교로 당연히 인정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무교가 문광부 혹은 시민대중으로부터 인정을 받는 단체가 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전제조건이 있다.
첫째, 총유의 개념을 알아야 한다.
민법은 “법인이 아닌 사단의 사원이 집합체로서 물건을 소유할 때에는 총유로 한다”고 하였고, 총유에 관하여는 “사단의 정관 및 기타 규약에 의하는 외에 민법 제276조와 제277조의 규정에 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275조). 즉 총유물의 관리 및 처분은 사원총회의 결의에 의하며, 각 사원은 정관 및 기타의 규약에 좇아 총유물을 사용, 수익할 수 있고(276조), 총유물에 관한 사원의 권리 ·의무는 사원의 지위를 취득 ·상실함으로써 취득 상실된다(277조).
즉 종교 단체의 재산은 개인의 것이 아니라는 개념에 익숙해야만 한다. 무교 관련 법인이 설립되기 전이라도 무당의 사유 재산화에 대한 경계는 지금부터라도 시작해야만 된다고 본다.
둘째, 손님이라는 용어를 철폐해야만 한다.
종교단체에는 신도 혹은 신자가 있을 뿐이다. 종교단체와 종교인을 방문하는 자를 손님으로 본다는 자체는 종교인 자격이 애초에 없다고 본다. 손님 대신 신도라는 용어를 선택하라.
셋째, 무속이란 단어의 사용을 자제해야 한다.
종교도 큰 틀에선 문화의 한 분야인 것은 옳다. 그러나 무교인 스스로 무속이라는 용어를 씀을 무교가 종교가 아님을 스스로 인정하게 되는 결과를 낳게 된다. 무교란 단어에 자긍심을 가지자.
넷째, 소득세 납부 등 재정이 투명해야만 한다. 이 외 무당이 정치에 참여하는 등 정교분리의 헌법정신을 위배하는 행위를 금해야만 한다.
소득세를 내지 않고 있으며, 세습 불륜 간통 횡령 배임 강제채플 성차별 정치참여 등 소위 정통 종교계가 이러한 사회적 일탈 행위를 일삼는 이때, 무교 관련자들이 종교인으로서의 모범을 보여주고 참된 예언자로서의 기능을 솔선수범하는 것이야말로 문화관광부에 정식 등록하는 이상으로 중요한 일임은 무교 관련자 모두의 책임이 되겠다.
* 본문은 무교문화총연합회 주최로 21일 오후 2시 30분 서울 장충동 만해NGO교육센터 세미나실에서 열린 ‘한국무교의 현황과 대안’이라는 학술세미나 발제문입니다.
”
필자는 <종교법인법제정추진시민연대> ©박철홍
[출처] 무교(巫敎)는 왜 정통종교로 인정받지 못하나 (천지신명) |작성자 사령진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