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버이날에
교감 김 영 수
올해도 어김없이 산 속의 오솔길을 따라 아버지를 뵈었습니다.
어느덧 6년이란 세월이 흘렀건만, 지금도 아버지의 산소 앞에 엎드리면 왜 이리도 가슴이 찡하고 울먹여지는지……
아마도 아버지의 못다한 정이 그리워서인가 봅니다.
다정한 아빠도 되어 주시고, 때론 다정한 친구도 되어 주셨던… 제게는 특별히도 존경하고 사랑했던 아버지였기 때문일 겁니다.
사랑하는 가족을 남겨두고, 멀고 먼 험한 길을 떠나셨을 아버지의 심정은, 못난 이 아들보다 더 하셨겠죠. 어머니의 처절한 통곡 소리도 들으셨을 거고, 손자들과 저의 울부짖음도 들으시면서, 아버지의 마음은 찢어질 듯 몇 천 배, 아니 몇 만 배 더 아프셨을 걸 생각하면, 저 또한 가슴이 메어집니다.
따스한 봄날 마을 어귀에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며 고개 숙인 빨간 할미꽃이 눈에 띄일때에는 저도 모르게 발길이 멈추어져 바라보곤 한답니다.
빨간 장미와 접시꽃을 퍽이나 좋아하셨잖아요. 금년에도 어김없이 어버이날에 빨강 장미꽃은 피었는데……
아버지! 정말 보고 싶습니다.
세월이 흘러 갈수록 아버지의 정이 그리워지고 안타까워 지는 건, 제가 그 만큼 철이 들어가고 있다는 걸까요?
어려서부터 유난히 병치레도 많이 하며 자라서, 아버진 저를 업고 이 십리 길을 멀다않고 하루 같이 업고 다니셨다지요.
제가 세 살 때에는 홍역을 앓다가 죽었다고 이불에 싸서 묻으러 가는데 어머니의 울부짖음이 너무나 애처러워 이불을 들쳐보니 숨을 쉬고 있더라고요. 아버지께서는 약주 한 잔 드실 적 엔, 우리 아들이 선생이 되었다고 그렇게 자랑을 하셨었는데....
이젠 저도 부모가 되어 당신처럼 아이들을 기르다보니 부모님의 높고 깊으신 뜻을 깨닫는가 싶으니, 북망산이 그리도 급하셔서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멀고 먼 저 세상으로 가셨으니 못난 이 자식을 얼마나 원망하셨을까요.
아버지! 제가 살아가는 모습을 아버진 끝까지 지켜봐 주시겠죠?
아버지 정말 죄송합니다. 힘들고 쓸쓸하실 텐데…….
어느 스님이 말씀하셨던가요.
“여보게 저승 갈 때 뭘 가지고 가지” 솔바람 한 줌 집어가지. 농담 말구. 댓 그늘 한 자락 묻혀가렴. 안 그럼. 풍경 소릴 듣고 가던지……
너무 쓸쓸해하시지 마셔요. 아버지 즐겨 들으셨던 풍경 소리가 항시 곁에 있을 테니까요. 아주 영원히 영원히 말이에요.
언젠가 아버진 말씀하셨잖아요. 법당의 그윽한 향 내음과, 목탁 소리며, 풍경 소리가 좋으시다구요.
어렸을 적 저를 지켜봐 주셨던 것처럼 당신의 사랑하는 아들이 어떻게 살아갈까 걱정하시지 마시고, 아주 편안한 마음으로 끝까지 지켜봐 주세요. 저를 사랑하는 제 아이들이 부모님의 이런 마음을 알아 줄 수 있는 착한 아이들로 자라날 수 있도록 아버지처럼 지켜봐 줄 거예요.
이 세상의 모든 부모님의 마음이 한결같이 따뜻하다는 걸 느낄 수 있는, 그런 심성을 가진 밝은 아이로 자라날 수 있게끔 말입니다……
못난 자식 김영수(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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