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공존을 위한 평등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관념 중에는 남존여비사상이 빠지지 않는다. 가부장적 질서를 중요시하던 주자 성리학이 조선 후기의 정치이념으로 받아들여지면서 그 이전까지 남성과 크게 다르지 않았던 여성의 지위는 점점 떨어졌다. 남존여비사상과 함께 뿌리 깊게 박힌 칠거지악과 삼종지도의 횡행 역시 가족과 사회 안에서 주변인으로 머물 수밖에 없었던 여성의 삶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시부모에게 순종하지 않거나 자식을 낳지 못하는 것, 질투는 물론 나쁜 질병이 있거나 수다스러운 것 등 여자가 경계해야 하는 것을 이른 칠거지악은 과도한 억압으로 여성의 기본적인 인권을 무시하고 있다. ‘결혼하기 전에는 아버지를 따르고 결혼하고 나서는 남편을 따르고 남편이 죽은 후에는 아들을 따른다’는 삼종지도 역시 여성이 남성의 일방적인 요구에 수동적으로 응하던 존재였음을 말해주고 있다. 여성의 공간은 집안으로 한정되었고 여성의 역할은 아이를 낳고 살림 하는 것에 맞춰져 있었다. 이러한 가부장제 하에서의 여성과 남성의 획일화된 역할과 구분은 남성에게도 가족부양에 대한 지나친 부담과 스트레스, 자녀양육에서의 소외로 삶의 질을 떨어뜨리는 요소가 되고 있다.
가정의 울타리 안에서 벗어나지 못하던 여성의 목소리는 양성평등을 아우르는 사회의 영역으로 확대되어 갔다. 1962년부터 세 차례에 걸쳐 이뤄진 가족법 개정과 1987년 남녀고용평등법 제정 등 남녀차별에 대한 제도적 정비, 94년 성폭력특별법, 95년 여성발전기본법, 97년 가정폭력방지법, 99년 남녀차별금지법, 2004년 성매매방지법, 2005년 호주제폐지에 이르기까지 빠른 진전을 보였다. 그 사이에 한국 여성의 지위는 몰라보게 상승했고 가족 내 여성의 지위 또한 남성과 동등해졌으며, 여성의 활발한 사회진출, 여성관련 행정기구 확대 역시 급진전되었다.
물론 이러한 여성정책의 확대나 그를 통한 제도적 장치가 현실화되는 과정에서 오는 시행착오와 인식 전환의 진통이 계속 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여성의 사회진출이 확대되었다지만 여성에게 주어지는 일자리는 아직도 주변적인 직종과 비정규직이 많고 사회생활을 하더라도 집안일은 대부분 여성에게 주어진다. 여성 스스로도 일과 가정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으려는 슈퍼우먼 콤플렉스, 외모를 가꿔 경제력 있는 남자와 결혼하려는 신데렐라 콤플렉스, 청순가련한 여성상을 간직하려는 착한여자 콤플렉스로 고민하고 있지 않은가.
우리 사회가 양성평등을 향한 진보와 진통을 함께 겪고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주변의 변화들을 조금만 주의 깊게 살펴본다면 좀 더 희망적인 예측이 가능해진다.
“서서 오줌 누는 사람이 어찌 앉아서 오줌 누는 사람에게 결재서류를 들고 가 고개를 숙이겠느냐 ”라고 했다는 임영신 초대 상공부 장관 당시 남성직원들의 이야기는 유명한 일화로 남아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떠한가. 관계지향적인 감성리더십으로 조직을 이끄는 여성리더의 장점이 부각되고 여성을 동등한 경쟁상대로 받아들이는 것을 어색해 하지 않는다.
드라마 ‘주몽’에서 여성 카리스마의 전형으로 그려진 소서노는 스스로 운명을 만들어가는 진취적 여성의 모습을 보여준다. ‘대장금’의 장금이가 여성의 벽을 넘어 꿈을 이뤄가는 것이나 삼순이와 달자 등 솔직하고 털털한 캐릭터의 30대 미혼 여성을 앞세운 드라마가 늘어난 것도 이 시대의 심리를 대변하고 있다. 실장님을 부르짖던 청순가련한 여주인공이 설 자리는 점점 줄어가고 있는 것이다.
진정한 양성평등을 위해서는 아직 더 험난한 여정을 거쳐야하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여성들은 현재까지보다 더 빠르게 사회로 나올 것이고 금기의 벽을 허물 것이며 보이지 않는 유리천장도 깨뜨릴 것이다. 누구의 엄마, 아내, 딸이기 이전에 동등한 인간으로서 존중받는 것이 우선임을, 그리고 그것이 행복한 공존을 위한 길임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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