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삼의당의 아름다운 시
전에 누가 저에게 애칭 하나 지어달라고 해서 애칭인지는 모르겠지만 화영이라고 하면 어떨까 얘기해 주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냥 한글로만 쓰면 흔한 이름 같아 보이지만, 실은 화영(花影)이란 의미이었지요. 꽃그늘, Shade of Flora, Flora Shade, Floral Shade, はなかげ(hanakage)... 영어는 발음이 좋은데 일어는 조금 어감이 예쁘진 않다고 생각했지요.
그런데 이 이름은 김삼의당(金三宜堂)이라는 분의 글에서 떠올린 것이었습니다. 우리 나라 여류 시인들의 한시들은 많이 영탄(詠嘆)에 치우쳐 있습니다. 님 그리움, 안타까움, 이별, 슬픔, 그런 것들. 김삼의당의 글에도 그런 것들이 있긴 하지만 그보다는 남편과의 따뜻한 애정을 노래한 아름다운 글들을 많이 남기셨습니다.
이 분은 영조 45년 1769년 10월 13일에 남원에서 태어났는데 우연히 같은 동네에서 같은 날 태어난 하황(河滉)이라는 분에게 시집가는 기이한 인연이 있었지요. 그 둘은 아주 시를 좋아해서 서로 시문을 화답한 것이 많습니다. 결혼 첫날밤에도 시를 수작(酬酌; 주고 받음)했다고 하니... 어휴, 대단하지요. ^^
그 분의 문집인 「삼의당고(三宜堂稿)」에 99수의 시와 19편의 글이 전하는데 이것을 보면 중국의 이청조의 아름다운 부부사랑의 시절이 떠올려집니다. 이청조와는 다르게 김삼의당님은 남편이 이 분보다 오래 살았는지 어떤지, 사별의 아픔은 보이지 않습니다.
화영은 제목이 이렇게 긴 다음의 시에 나옵니다.
『奉夫子夜至東園月色正好花影滿地夫子吟詩一絶妾次之』
낭군을 모시고 밤을 맞아 동원(東園)에 이르니 달빛이 진정 아름답고 꽃그늘이 땅에 가득하더라. 낭군께서 시를 한 절 읊으시니 내가 그에 화답하였다.
滿天明月滿園花
花影相添月影加
如月如花人對坐
世間榮辱屬誰家
하늘 가득 밝은 달은 꽃밭 가득 비추고
꽃그늘은 달그림자와 서로 어울려 있네.
달처럼 꽃처럼 님과 이렇게 마주 앉으니
세상 영예와 치욕에 그 누가 연연하리요.
[류주환 역]
(* 제목의 絶자는 節자의 오기일 듯...?)
하! 아름답지요. 호탕하게까지 느껴져요. 이런 사랑 한번 해봤으면... 꽃그늘은 달이 휘영청 밝은 것을 오히려 느끼게 해주지요. 막 그림이 그려지지 않나요? 꽃그늘이 너무나 선명해서 하늘을 문득 올려다보니 달도 자신의 밝음에 스스로 그늘이 져서 그림자가 뚜렷이 져 있어요. 정답게 바람 타고 느껴오는 향내가 꽃에서 나오는 것인지 님에게서 나오는 것인지 모를 지경이지요. 그렇게 님을 똑바로 보지 못하고 하릴없이 가슴 타며 거닐다가 마주앉아 사랑하는 님의 얼굴 바라보니 눈으로 튀어 들어온 님의 모습의 빛남이 가득 가슴을 벅차게 채워버리니, 이것이 정녕 이 세상을 떠난 선계(仙界)가 아니고 무엇이리요. 역시 화영에게는 월영이 있어야 제격이네요. 월영은 실은 저 멀리 지구의 저편 보이지 않는 태양을 상징하지요. 태양은 또 영원한 이데아의 세상을 지향하고 있고요. 꽃에서 출발해서 땅 위로 뻗친 그림자는 오히려 반대쪽으로 자신의 존재를 투영해서 달과 태양과 우주의 저편과 영원한 피안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지요. 월인천강(月印千江)... 달이 휘영청 세상 모든 강물에 비추고 있는 장엄함... 그런 자비와 화해와 사랑의 우주의 노래가 들려오네요.
如月如花人對坐...
달처럼 꽃처럼 님과 마주 앉으니...
아, 정말 무어라 말할 수 없이 멋있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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