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서의 출연은 죽음의 예고였던가?

혼서(婚書)는 결혼식을 앞두고 신랑집에서 신부집에 폐물과 함께 보내는 편지의 일종으로 50여 자의 짧은 문구로 된 서식(書式)에다 혼주와 신랑의 성명, 작성연월일과 간지(干支)만 대입(代入)하여 작성하는 문서다.
이 혼서는 1932년(壬申) 음 11월 22일에 최기우(崔基宇)선생이 지었다. 그리고 선생의 친손자인 최공범(崔栱範)씨의 처가(妻家)가 될 진원 박(朴)씨 집으로 보내졌다가 공범씨의 부인(夫人) 박증순(朴曾順)여사가 시집 올 때 도로 가지고 온 것이었다. 이 자료를 혼불문학관에 기증 할 때 박중순 여사는 92세의 노령이었다.
그러면 최공범과 박증순! 과연 그들은 누구인가? 그들이야말로 소설 「혼불」에 등장하는 두 사람의 남녀주인공 “이강모”와 “허효원”의 모델들이다.
말하자면 최기우선생이 지은 이 혼서(婚書)는 주인공 이강모가 허효원에게 장가가기 며칠 전에 쓰여져 신부댁에 보내진 것이었다. 여자 주인공 허효원의 나이와 박증순여사의 나이도 일치한다. 소설 속에서 혀효원은 18세 되던 해에 이강모와 예를 지내고 19세에 신행을 왔다. 박증순 여사도 이 혼서(婚書)가 쓰여진 1932년, 18세 되던 해에 최공범씨와 예를 지내고 19세에 신행하였다.
일반적 혼서는 형식에 의해 쓰여진 혼서가 아닌 작자가 완전히 창작한 190자에 달하는 장문(長文)이며, 산문이 아니라 운문(韻文)이었고 운문 중에서도 해박한 지식이 없으면 짓기 어려운 4.6변려체 형식의 부(賦)에 해당하는 글로서 명필이며, 명문장이라고 한다.
작가 최명희는 「혼불」속에서 벼라별 문서(文書)를 다 소개하고 있다. 심지어는 장례식의 마지막 절차인 발인제(發靭祭)의 축문(祝文)까지도…… 그러나 최기우선생이 지은 이 특이한 혼서는 「혼불」속에 없다. 문화사적 가치가 매우 높은 문서이다.
이 혼서(婚書)는 박증순여사가 70여년간 소장해오다가 유명을 달리하기 얼마 전 남원 혼불문학 기념관에 기증함으로써 비로소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박증순 여사는 소설 「혼불」의 탄생을 위하여 생전의 최명희 작가에게 온갖 편의와 필요한 자료를 아낌없이 제공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한 그녀가 유독 본인의 혼서만은 몰라서 아니 내 놓았을 리가 없지 않은가? 아마도 일생을 통해 가장 소중한 물건이 노출되는 것을 꺼려해서, 아니 어쩌면 망부(亡夫)에 대한 감상(感傷)의 도화선을 건드리고 싶지가 않아서 일부러 공개하지 않고 그동안 숨겨두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원래 혼서는 주인(主人)되는 여자와 운명을 함께 하는 물건이다. 처음에 시댁에서 만들어 신부 댁으로 보낸 혼서는 혼례를 치른 후, 신행할 때 신부가 시댁으로 도로 가지고 온다.
그런데 유독 이 별난 혼서만은 주인의 뜻에 따라 주인을 따라 가지 못하고 이승에 홀로 남았다. 박증순 여사는 스스로 죽음을 예견하고 문학적 가치가 매우 높은 자기 혼서가 사장되는 것이 아까워서 기념관 진열장에서 다시 태어나도록 특별한 배려를 베푼 것이아닌가 한다. 혼서지를 기증한후 안타깝게도 박증순 여사는 집에 화재가 발생하여 종가건물과 함께 이세상을 떠나게 되었다.
어쨌거나 이 희귀한 창작(創作) 혼서(婚書)의 발견은 우리 남원의 문화유산과의 또 하나의 「소중한 만남」임에 틀림없다.
자세한 내용은 소병호선생의 "고전의 향기8호"에 소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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