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수익 교수 - 수강생 30여명 매주 월·목요일에
남원시 향교동에 자리잡은 남원향교 사마제(司馬齊) 명륜학원(明倫學院)에서는 매주 월요일과 목요일 유교경전을 공부하는 카랑 카랑한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명륜학원은 석천(石川) 조수익(趙洙翼·74) 교수를 스승으로 올 해로 8년째 한학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학생은 최연소 50대 중반부터 초고령 84세까지 퇴직 공무원과 교장, 주부 등 다양하다. 등록학생 29명 중 수업에 참석하는 학생은 평균 20명으로 높은 출석률을 보이고 있다. 5~6년 이상 공부하는 학생들이 대부분이며, 한번 수업에 참석한 학생들은 한학에 매료돼 졸업하지 않으려 한다고 한다. 그래서 명륜학원에는 입학은 있어도 졸업은 없다.
명륜학원이 문을 열 수 있었던 것은 조 교수의 역할이 컸다. 수지면 산정리가 고향인 조 교수는 2004년 낙향해 고향에 이바지할 일이 무엇인지 고민하다 후학을 지도하기로 마음먹었다. 조 교수는 향교 활성화를 위해서는 공부하는 향교를 만들어야한다는 소신이 크게 작용했다. 수업은 오전 9시부터 오후 2시까지 1시간 30분씩 강행군이다. 월요일에는 논어, 소학, 대동기문(大東奇聞)을, 목요일에는 대학, 통감절요, 대동기문을 공부한다.조 교수보다 나이 많은 학생들도 수업시간에는 눈감아 주는 일이 없다. 책을 읽고 뜻풀이를 하라는 조 교수의 지명에 학생들은 곧바로 목청을 가다듬는다. 우물쭈물했다가는 바로 불호령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조 교수가 한학과 처음으로 인연을 맺을 수 있었던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6·25 한국전쟁 때문이라고 한다. 전쟁으로 학교가 쉬는 동안 큰 아버지가 훈장으로 있던 서당에서 3개월여 동안 한학을 배우면서다. 그러나 먹고 살기 힘들던 시절 한학공부는 그와는 거리가 먼 것처럼 보였다. 한학과 두 번째 인연은 그의 나이 31세이던 70년. 국방부 과학기술연구소 5급 군무원 봉급으로는 쌍둥이 자녀와 먹고살기 힘들었던 그는 파독 광부를 지원했다. 광부로 독일에 파견되면서 우연히 짐 보따리에 따라온 ‘맹자’는 그의 외로움을 달래줬다. 쉬는 시간에 특별히 할일이 없었던 그는 맹자를 읽고 또 읽었다. 그 덕분에 파독광부로 일하면서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수필 ‘얼굴’이 당선돼 문단에 등단할 수 있었다. 그가 한학공부를 본격적으로 할 수 있었던 것은 민족문화추진회 부설 국역연수원 3년 과정을 수료하면서다. 그후 민족문화추진회(한국고전번역원)에 입사해 7년 동안 고전(古典) 국역(國譯) 번역에 종사했다. 이때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등을 다수의 역사서를 번역했다. 우리나라 최대의 한문 사전인 ‘교학 한한대사전(敎學 漢韓大辭典)’ 편찬도 그의 작품이다. 민족문화문고간행회 편집주간으로 있으면서는 ‘우리고전 읽기운동’용 청소년 고전 문고 집필과 간행에 심혈을 기울였다.조 교수는 옛날에는 학교 교육을 통해 자연스럽게 인성교육이 이뤄졌는데 요즘은 한학이 외면 받으면서 그런 순기능이 이뤄지 않는 것을 아쉬워하고 있다. 어린이들을 위한 4개월 과정의 ‘이야기한국사 교실’에서 특강을 하고 있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조 교수는 “꿈을 가지면 언젠가는 이뤄진다”며 “어디에 살고 있던지 항상 고향을 잊지 말고 남원인이라는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고 젊은 이들에게 조언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