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쪽으로는 백두대간, 서쪽으로는 요천강이 흐르는 남원시의 중앙에 위치한 도심 인접지역으로 쾌적한 주거환경과 국도24호선의 산업도로가 지나가는 교통이 편리한 사랑과 인정이 넘치는 살기좋은 고장 이백면!
국화향이 기대되는 가을의 무르익음속에서 겨울을 재촉하는 바람이 쌀쌀하기만 하는 주말 오후다.평소 문화유적을 찾아 떠나는 남원투데이 답사팀과 지인들께 전화를 드려야할지 말아야할지 망설이다 그냥 집에 있기에는 너무 아쉬워 오후2시에 모여 떠난곳이 이백면이다.
먼저 남평 계산 외동 내동 강촌 내기마을을 둘러보고 오늘의 목적지인 주지암을 향했다. 여원치를 지나 돌로 된 표지석이 고개 오른쪽에 주지암을 방문할 보살과 처사들을 기다리고 있는듯이 근엄하게 서있었다.주지사라는 이름을 가지고......
일행은 승용차로 올라가다 중턱에 차를 주차해 놓고 올라가도 올라가도 주지사는보이지 않았다. 한참을 가다 보니 등산로에 300m만 가면 된다고 이정표가 길을 안내하고 있었다.그러나 정상을 가봐도 안내하는 등만 보이지 주지사는 우리들과의 숨바꼭질이다. 일행이신 안선생님께서 고개를 넘어야 한다고 하신다.원래 절들의 위치는 그런가 보다.그러나 내려가도 없었다. 또 김선생님께서 114안내에게 전화번호를 물어 보시지만 일반전화가 없다고 한다.일행은 한참 망설이다 하실장님께서 주위를 둘러보고 오겠다고 하시기에 기다리고 있었더니 산중턱에 자리잡고 있는 주지사를 찾아 일행에게 기쁨을 선사했다.
벌써 이곳은 겨울이 왔다. 요사체에는 비닐로 방풍을 막기위해 사방을 에워싸고 있었다. 비구니 스님께서도 겨울 쉐터를 입으셨다.
"설마 아직 마음의 겨울은 찾아오지 않았겠지"하는 생각을 하면서 먼저 주지스님께 인사를 드리고 답사를 해야 하는데 조심스러워서 말을 못하고 대웅전과 산신각을 둘러보며 비지정문화재에도 속해 있지않는 주지사가 의아스러웠다.
부처님을 따르는 신도들인지 흔적을 남기기 위해 천연 바위에 이름과 문구들을 새겨놓았고 남원출신국회의원 몇분과 불자들은 남북통일염원기념탑을 세워 이름을 새겨 놓았으나 맞춤법이 틀린 내용들이 낯 뜨겁게 했다.주지사가 있기까지의 유래를 듣고 싶어 주지스님께 노크를 했다. 하지만 스님께서도 자세한 유래는 알지 못하고 계셔 아쉬웠다. 그러나 안선생님께서 남원지와 용성지를 보라고 가르쳐 주셨다. 무엇보다도 값진 보물을 얻은 기분은 동굴에 있는 나한상과 지리산성모천왕으로 추측되는 석상들이 아닌가싶다.
많은 분들이 깨달음을 얻었고 사회적으로 성공하는데 발판이 된것은 이곳에서 공을 들였기때문이라고 하는데 우리고장에 이런곳이 있다는 것에 자부심을 갖은 시간이기도 했다.백두대간의 능선으로 서암정사에서 본 동굴의 축소판이 아닌가 싶은데 워낙 이런 불교문화에 지식이 없다보니 답답하기만 했다.시간이 있으면 가족과 한번더 가 보고싶다.날이 저물어 스님께 인시를 하고 오는데 스님께서 산등성이를 통해 올라가면서 선녀바위를 가보라고 권해 주셨다. 일행은 땀을 뻘뻘 흘리며 가쁜 숨을 고르고 기암괴석이 즐비해 있는 낭떠러지를 조심스럽게 기어 올라갔다.우리의 인생도 이렇게 힘들고 어려운 순간순간이 얼마나 많은가?
필자는 요즈음 삶을 기암괴석을 올라가는 심정으로 살고 있다. 모든것이 조심스럽다.그리고 사람을 시귀는 일이나 하는 일들이 절벽에서 낭떠러지를 쳐다보는 기분을 느끼기도 하며 정상에 있는 바위 위에 앉아 산 아래 있는 산천초목을 바라보면서는 뜨거운 마음을 토해 보기도 하고 입술을 깨물며 두손을 불끈 쥐어 보기도 하지만 하산해서 일상에 와보면......

힘들게 일행의 도움으로 올라 온 선녀바위에서는 신선한 자연의 신비를 느끼기 보다 분개의 마음이 생겼다. 바위 즉 정상에서 목이 떨어진 부처님의 모습을 보고 화가 치밀어 올랐다. 우리국민의 수준이 이것밖에 안되는가 싶을 정도다. 바위 위에 부처님을 모신 사람도 개인의 욕심일 것이고 부처님의 목을 베어 버린사람도 개인의 욕심이지 대승적 차원은 아니었을것이라는생각을 해보며 방치 해 놓은 모습에서 무엇을 얻고자 하는 것일까? 필자라면 치워 버리는 것이..........

이어 우리는 하산길에 선녀바위에서 눈이 떨어지지 않아 여원치에서 다시 내려 그곳을 응시하면서 남원의 팔경 중 한곳인 여원정에서 일몰을 구경하며 남원의 그림을 카메라에 담았다.많은 사람들이 느끼기를 바라면서. 구리시에서 지리산을 찾은 방문객들에게 하실장님은 남원을 열심히 홍보하셨다.
일행들과 관광객들은 일몰을 구경하며 아쉬운 것은 주위에 커가고 있는 소나무들을 베어 내야 여원정의 일몰을 제대로 구경하겠다는 의견을 개진하며 지는 해를 잡을 수는 없어 즐겁고 보람된 한나절을 보냈다. 많은 사상이 교차되는 시간이기도 했다.
다음날 일행은 과립리 석불입상을 찾아갔다. 시대적으로 통일신라 말기와 고려초기에 만든 것으로 보이며, 높이는 머리 부분이 1m, 몸체 부분이 3.5m로 거대한 조각품이다.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28호(1987. 4. 28지정)로 소재지는 이백면 과립리 520-1 이다.
조선 정종(1398~1400) 때 이곳에 절을 지었으나, 임진왜란(1592)때 불타 없어지고 불상도 깨어져 머리와 받침만 남았었다고한다.그러나. 근래에 주변에서 두 조각으로 갈라진 불상의 몸체를 찾아 받침 위에 다시 세웠다. 불상의 머리 윤곽은 매우 뚜렷하고 얼굴형은 거의 직사각형이다. 눈은 지긋이 감았으며 귀는 턱까지 내려와 있다. 그곳에서 1년에 몇번씩 잔디를 깎아 주고 청소를 해주신다는 김모(68)씨는 석불이 너무 소외되어 있고 관리를 못 받고 있어 아쉽다며 1987년에 다행히 주위에 돌담도 쌓고 내년쯤에는 석불 밑에 차돌을 깔아 주신다며 기뻐하셨다.필자는 몇년전 이백초등학교에서 방과후 독서지도를 했었는데 그 제자들이 잊지않고 선생님을 기억해주어서 너무너무기뻤다.
여기 여원치 마애여래좌상은 시월초에 다녀 온적이있다.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62호(1998. 11. 25지정) 로 소재지는 이백면 양가리 5-3번지이다 여원치 정상 부근 바위에 새긴 이 불상은 고려 시대의 것으로 보인다. 불상 옆에는 운봉현감 박귀진(朴貴鎭)이 지은 글을 새겼다고 한다. 가슴 아래 부분이 아직 땅속에 묻혀 있기는 하지만 머리부분을 제외하고는 보존상태가 비교적 좋은편이다. 조각수법이 평면적이어서 역동감은 없지만 넓은 어깨와 큰 귀 또렷한 코는 시원한 느낌을 준다.예전에는 불상의 보호각에 있었으나 지금은 그 흔적만 남아있다.
불상옆의 운봉현감 박귀진이 지은글에 따르면 조선태조 이성계의 꿈에 한 노파가 나타다 이성계가 황산싸움에서 승리할 것이라고 예언하였다. 이 불상은 그 노파에게 감사하기 위해 만들었다고 한다.아쉬운 것은 전북유형문화재임에도 불구하고 제대로된길과 이정표가 없으니 ......
◀주지산 정상, 선녀바위 위에 세워진 불상의 머리가 떨어져 흉물이 되어있다.
많은 사람들이 왕래하는 곳에 설치를 함도 문제가 있어 보이지만 이를 인정하지 못하고 파괴시킨자도 크게 문제가 있어 보인다. 부처님의 자비나 이를 인정하지 못한 또다른 신앙, 모두가 문제가 있어보이는 오늘의 세태를 잘 말한 듯 하다.

주지사 스님의 암자와 바위토굴 소개를 통해서 주지사를 이해할 수 있었다.
* 양경님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7-10-31 22:50) * 양경님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8-03-16 2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