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천서원과 사계정사(주생 영천)를 찾아서......
입춘을 눈앞에 둔 주말이다.
"남원투데이와 함께한 문화유산답사"를 가는 날이다.
남원의 문화를 사랑하는 지인들은 겨울 음식의 최고인 시레기국에 점심을 맛있게 먹고 5현사(五賢詞)라 불리우는 방사량·방귀온·안탁·방응현·안창국을 기리기 위한 서원이 있는 주생면 영천리 유천서원과 2000년 11월 17일 전라북도문화재자료 제166호로 지정된 사계(沙溪) 방응현(房應賢:1524∼1589)이 벼슬을 마다하고 숨어 지냈던 건물로, 조선 중기에 처음 세웠다고 전해온 사계정사를 찾았다.
"남원투데이와 함께한 문화유산답사"를 가는 날이다.
남원의 문화를 사랑하는 지인들은 겨울 음식의 최고인 시레기국에 점심을 맛있게 먹고 5현사(五賢詞)라 불리우는 방사량·방귀온·안탁·방응현·안창국을 기리기 위한 서원이 있는 주생면 영천리 유천서원과 2000년 11월 17일 전라북도문화재자료 제166호로 지정된 사계(沙溪) 방응현(房應賢:1524∼1589)이 벼슬을 마다하고 숨어 지냈던 건물로, 조선 중기에 처음 세웠다고 전해온 사계정사를 찾았다.

먼저 유천서원은 순조 30년(1830)에 세웠으나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폐쇄되었다. 그 뒤 서원을 복원하지 못하고 1909년에 후손들이 그 자리에 유허비를 세웠다. 현재 서원이 있던 곳에는 건물은 찾아볼 수 없고 담장만 남아 있다.
구한말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에 따라 철거되었다가, 그후 복구하지 못하고 지금은 그 자리에 후손들이 유허비(遺墟碑)를 세워 조상들의 덕을 기리고 있는데, 유허비 경내에는 옛날 유천서원의 담장, 강당, 고직의 청사등 흔적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방사량은 고려말∼조선초의 의원으로 조선 정종 1년(1399)에 간행한 『향약제생집성방 』과 『신찬집성마의방 ·우의방 』의 편집에 참여하였다.
우리에게 안내를 해주신 방선생님은 아주 친절하게 설명해 주셨다. 남원의 5대서원인 창주서원 호암서원 용장서원 풍계서원등 대표적인 서원중의 서원이라고보는데 제일 초라하고 허술하게 관리 되고 있는 모습이 가슴 아팠다.
(서원에 대한내용 보충할것)
구한말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에 따라 철거되었다가, 그후 복구하지 못하고 지금은 그 자리에 후손들이 유허비(遺墟碑)를 세워 조상들의 덕을 기리고 있는데, 유허비 경내에는 옛날 유천서원의 담장, 강당, 고직의 청사등 흔적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방사량은 고려말∼조선초의 의원으로 조선 정종 1년(1399)에 간행한 『향약제생집성방 』과 『신찬집성마의방 ·우의방 』의 편집에 참여하였다.
우리에게 안내를 해주신 방선생님은 아주 친절하게 설명해 주셨다. 남원의 5대서원인 창주서원 호암서원 용장서원 풍계서원등 대표적인 서원중의 서원이라고보는데 제일 초라하고 허술하게 관리 되고 있는 모습이 가슴 아팠다.
(서원에 대한내용 보충할것)

이어 조선시대의 정자인 사계정사 [沙溪精舍]를 갔다. 사계정사는 정자 옆으로 모래내, 즉 사계(沙溪)라고 하는 냇물이 흐르고 있는데 정자의 이름은 이 냇물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한다.
임진왜란 때 불에 타버린 이후 후손들이 여러 번 고쳐지었다고한다. 방응현의 손자 방원진(房元震)이 1609년에 다시 지은 후 그 모습을 그림으로 제작한 《사계정사도(沙溪精舍圖)》(견본채색화, 55.5×88㎝)에 의하면 정사(精舍)는 길 맞은편 인가(人家)에서 다소 떨어져 약간 높은 지대에 자리잡고 있었다.
건물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기와로 된 팔작지붕 집이며, 화강암으로 2벌대 기단을 쌓은 후 역시 화강암으로 다소 높은 주춧돌을 놓고 두리기둥을 세웠다. 호남지방의 일반적인 정자 양식을 따라 가운데 1칸만 방으로 처리하였을 뿐 사방에 마루를 깔고 평난간을 둘렀다. 방 4면에 모두 쌍여닫이 띠살문을 달았다. 건물 주위에는 돌과 시멘트로 담을 쌓아 둘렀다.
정자 안에는 방응현이 평소 가깝게 지냈던 이항(李恒)·노수신(盧守愼)·남영조식(曺植)·노진 등의 글이 여러 편 걸려 있었다. 2001년 현재 남양방씨 사계공파 종중에서 소유 및 관리하고 있다고 하는데 전라북도 문화재 자료 치고는 너무 허술하게 관리되고 있어 아쉽기만 했다.

동행한 김선생님은 걸려 있는 편액들이 하루속히 해석되어 선인들의 얼이 서려있는 만큼 후세에 귀감이 될수있는 보람된 일들이 문중을 중심으로 일어나야 한다고 피력하였다.
도화가 필 춘삼월이 기대된다.
그때 다시한번 찾아가서 선인들의 숨결을 다시한번 느껴 보리라.
도화가 필 춘삼월이 기대된다.
그때 다시한번 찾아가서 선인들의 숨결을 다시한번 느껴 보리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