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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행사]

선인들의 사고와 사상을 느낄수 있는 기회로.....

글쓴이 : 양경님 날짜 : 2007-10-10 (수) 21:29 조회 : 2586


이른 점심을 먹고 찾는 곳은 대산이었다.남원의 서쪽에 위치한 준평야 지대로서 88고속도로, 국도24호선이 통과하고 전주↔광양간 고속도로가 건설중에 있는 교통의 요지이다.
또한 교룡산성과 풍악산이 위치한 큰산초록의 천혜의 자연조건을 갖춘 지역으로서 아스파라거스, 취나물, 표고, 축산, 꿩등 고소득을 창출하는 살기 좋은 고장임을 자부한다.
그리고 국민연금관리공단에서 추진하고 남원상록 골프장을 대곡리 일원에 50만평에 18홀의 골프장을 건설중에 있으며 자연과 레크레이션이 함께 살아 숨쉬는 도시민이 동경하는 고장이라고 면장님은 자랑이시다.
대산면(大山面)은 대곡방(大谷坊 : 일명 대실방), 시라산방(時羅山坊), 성남방(城南坊) 등 3개 방이 있었던 지역으로, 1897년(고종 34년)에 8도를 13도로 개편하면서 방(坊)이 면(面)으로 바뀌었고, 시라산면(時羅山面)이 대산면의 중심이 되었다.남원군(南原郡) 시라산면(時羅山面) 또는 정산면(睛山面) 지역으로 노촌(蘆村), 신계(新啓), 운교(雲橋), 옥전(玉田), 율정(栗亭), 심곡(深谷), 왈길(曰吉) 등 7개 리(里)를 관할했는데 1914년 행정구역통폐합때 대곡면(大谷面)의 하대(下大), 소대(小大), 노산(老山), 월계(月桂), 독산(獨山) 등 5개 리(里)와 성남면(城南面)의 내촌(內村), 음촌(陰村), 수정(水亭), 가정(佳亭), 점촌(店村), 주치(舟峙), 설탄(雪灘), 장동(藏洞), 상신흥(上新興), 하신흥(下新興), 애산(艾山), 유동(柳洞), 이동(理洞), 동마(銅馬), 장항(獐項), 노현(鷺峴)의 16개 리(里), 성내면(城內面)의 서동(饍), 감동(柑洞) 일부 및 주포면(周浦面)의 광촌리(廣村里) 일부를 병합하여 대곡과 정산(시라산)의 이름을 따서대산면(大山面)이라 하고 수덕(水德), 신계(新啓), 운교(雲橋), 옥률(玉栗), 길곡(吉谷), 대곡(大谷), 풍촌(楓村), 수정(水亭), 주월(舟月), 신흥(新興), 유산(柳山), 이동(里洞) 등 12개 리(里)로 개편,하고 운교리에 면사무소를 설치하였다.1935년에 수정(水亭), 주월(舟月), 신흥(新興), 유산(柳山), 이동(里洞) 등 5개 리(里)가 순창군 동계면으로 편입되었고, 1956년 남원읍(南原邑) 금성리(金城里)의 금강(金岡), 감성(甘城) 마을이 대산면으로 편입되었다.1995년 1월 1일 남원시 군이 통합됨에 따라 남원시 대산면이 되어 8개 법정리, 15개 행정리, 19개 자연마을로 구성되어 있다.

남원시청에서 9.1Km지점의 동경 127°21′, 북위35°22′에 위치한다. 동쪽은 남원시 화정동, 남쪽은 주생면(周生面), 서쪽은 순창군 동계면(東鷄面), 북쪽은 사매면(巳梅面)과 인접해 있으며 동북쪽에 전라선철도와 면의 남쪽에 국도 24호선, 중앙에 88고속도로가 통과하고 있으며 지방도 745호선 신설중에 있다. 총 면적은 3,638.2ha로 남원시 전체면적의 4.9%에 해당하며 전답별 비율은 논은 694ha로 농경지의 78%, 밭은198ha로 농경지의 22%이다. 임야는 2,409ha로 총면적의 66.2%, 기타가37.2ha로 9.2%를 차지하고 있다.

대산면대곡리 봉황대에 걸려있는 편액

면세는 20052년 12월말 현재 전가구가 735호로, 인구는 1,988명(남자 977명, 여자 1,011명) 행정구역은 8개 법정리, 15개 행정리, 19개 자연마을, 40개 반으로 구성되어있으며 일반적 지세는 서부는 편마암, 나머지 대부분의 지역은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산지로, 이들이 심층 분화되어 분지가 발달되었으며 높이 250m 미만의 완만한 경사지가 남쪽으로 펼쳐지고 있다. 기후는 풍악산 준령이 서쪽을 가로 막아 겨울이 온화하며, 또한 평야부에 속하여 일조시간이 길고 서쪽 높은 산에 뭉친구름이 비를 몰고와 강우량이 풍부한데다가 풍악산과 노적봉에서 발원하는 옥율, 대곡, 풍촌천 등 준용하천이 흐를 뿐아니라 동화댐 농업용수로의 기반시설 확충으로 논의 대부분은 수리안전답으로 되어있다. 토질은 양질의 사질토이고 벼농사가 영농의 주종을 이루고 있다. 산림형태는 서쪽의 풍악산 줄기의 일부를 제외하고는 구릉성 야산과 평야가 알맞게 분포하여 있으며 해발 580여m인 교룡산 기슭에 40∼50년생 소나무가 주종을 이루고 있으며 하천은 길곡, 옥율, 운교, 금성, 노촌을 잇는 옥율천(총연장 13,950m)이 요천강을 지나 섬진강으로 합류하고, 대곡∼주생, 풍촌∼주생으로 이어지는 섬진강의 지류인 대곡천(총연장 5,250m)이 흐르고 있다. 그밖에 운교 분저울천(520m), 풍촌 버들골천(730m), 금성 감성천(1300m)과 안이실천(560m)이 있으며 해발고도 100 ∼ 250m로 분포되어 있고 옥정|봉황대|판고개와 운교리|말바위와 가마바위|신계리마애여래좌상|잉어와 석수암|양시랑동등의 문화유산이있다.오늘 나에게 제일 많은 관심사는 봉황대와 암각화다.

말바위와 가마바위의 전설이 있는 감성마을
일정의 첫 코스다. 대산면 금성리 감성부락은 말바위와 가마바위의 전설이 유명하다.마치 천막을 펼쳐 놓은 듯한 산이 마을 뒤쪽에 길게 뻗어 있고 마을 당산 옆에는 큰 바위가 가로누워 있는데 이 바위를 말처럼 생겼다 해서 말(馬)바위라고 하며 지금은 88고속도로 때문에 일직선상에 있는 큰 바위를 볼수 없지만 대산면 입구 농협창고 앞 도로 건너편에 가마바위가 있다. 마을에서 써온 재래식 천막을 차일이라 하는데 치알산, 말바위, 가마바위가 있다면 결혼풍습을 두고 하는 말이라 한다. 사람이 장가가고 시집갈때면 부귀다남하라고 하는데 이와같은 남녀간의 결혼을 상징한 자연조건이 구비되어 있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라 한다. 그래서 이곳 부녀자들은 아들을 낳지 못하는 사람이 이곳에 아들을 팔고 공을 드리면 옥동자를 낳게 된다고 믿어왔다. 누가 언제부터 시작했는지는 모르지만 아들을 낳고자 하면 왼새-끼를 꼬아 가마바위에 띠를 두르고 7일 기도를 드려 공을 드리면 소원을 성취한다고 믿었다.
또한 아이를 낳아 변변히 키우지 못하고 죽을 경우는 그 아이를 가마바위에 팔면 수명이 길다하여 아이 건강에 자신이 없는 부모들은 이 바위에 아이를 팔아 왔다. 아이를 팔때는 비단조각에 아이 이름과 생년월일을 적어 바위에 붙이는 한편 음식을 차려 제사를 지내는데 반드시 무당의 지시에 따라 굿을 하되 해가 지면 이튿날 새벽까지 철야기도를 올리는게 상례였다고 하는데 지금은 거의 없어져 아쉬워 하고 있다.

남원진씨가 탄생되었다는 전설이 있는 금성마을
특히 오늘 놀라운 사실을 발견한 것은 남원진씨에 대한 이야기이다.두가지의 별설이 있기는 하지만 금강이 옥정은 금강마을에 옥정(玉井)이라는 샘이 있었는데 옛날에는 이곳을 옥정동이라 불렀는데 이곳에 아리따운 아가씨가 살았다고 한다. 어느날 아가씨는 나물을 캐러 바구니를 이고 나갔으나 불현 듯 목이 말라 참을 수 가 없었다. 그래서 석간수가 있는 옹달샘으로 갔다. 그녀가 옹달샘을 바라보고 있을 때 순간 소녀는 참으로 이상한 현상을 목격하게 되었다. 화려한 옷을 입은 동자가 샘 위에 판자를 띄어 놓고 놀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는 놀랐으나 호기심이 생겨 샘으로 다가갔다. 동자는 처녀를 보더니 물속으로 들어갔다. 이에 처녀는 동자가 사라지자 아쉬워 그 동정을 살폈다. 그러자 동자가 갑자기 수면으로 나타난듯했다. 그때 처녀는 불시에 동자를 덥치니 동자는 의외로 순수하게 수면으로 올라왔다. 처녀는 동자의 얼굴을 보고 이 동자가 玉人이라고 생각하고 무례함을 사죄했다. 그랬더니 동자는 용왕님의 지시로 인간과 인연을 맺고자 우물위에 올라왔다가 아가씨를 맞이하게 되었다고 하였다. 결국 인연을 맺게 된 두사람은 부부가 되어 아들을 낳게 되었으니 이가 곧 南原晉氏의 시조이다. 이 사람은 높은 벼슬에 올랐으며 후손들은 고려시대에 높은 벼슬을 지냈다고 한다.

<별설 1>로는 남원군 대산면 금강리에서 동편으로 약 300m 지점 교룡산 아래 옥정이라는 샘이 있는데 남원진씨의 시조가 이 샘에서 나왔다하여 남원진씨 문중에서 관리 보호하고 있다.아주 옛날에는 이샘이 물길도 좋고 수질도 좋기는 하였지만 유독 뱀장어가 많이 살고 또 마을에서 많이 떨어져 있는 곳이어서 식수로는 쓰지 않고 들일을 하는 사람이나 나뭇꾼들이 간혹 마른목을 적시며 이 마을 아낙들의 빨래터로 사용하였는데 어느날 한 처녀가 여러 아낙들과 함께 빨래를 하다 다른 아낙들은 모두 돌아가고 혼자서 늦게까지 빨래를 하게 되었다. 해는 기울어 어둠이 들가운데 자욱이 깔려 높은 산 아래 들녘에 혼자 있으려니 무섭기도하고 불안한 마음으로 남은 빨래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데 잔잔하던 샘물이 느닷없이 출렁이고 이상한 소리가 나는지라 무심결에 들여다보니 기골이 장대하고 이목구비가 뚜렷한 홍안의 동자가 나와 처녀는 정신을 잃고 말았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난후에 깨어보니 홍안의 동자는 간데 없고 옷매무새만 흐트러지져 있었다. 처녀는 뜻밖의 일을 당한지라 무슨일이 있었는지 조차 모를 지경이었고 무슨말을 할수도 없는 노릇이었다.그런일이 있은 후 얼마가 지나 쳐녀는 배가 불러왔고 달이 차 아이를 낳았는데 아들이었다. 누구의 아이인지도 모를 뿐만아니라 그 아비의 얼굴 조차도 모르는 아이를 낳은 처녀는 고민을 한 끝에 필경 하늘의 뜻이 있어 자신에게 아이를 내려주신것이라고 생각하고 玉井(참샘=晉)에서 얻은 아들이란 뜻으로 성을 진(晉)이라 불렀다.

<별설 2>는 옛날에 금강리에 자손이 없는 집안이 있었는데 그집 아낙이 어느 무더운 여름밤에 玉井으로 목욕을 갔다. 외지고 호젓한 밤중이기에 아낙은 목욕을 하면서 옥정에다 아들 하나만 점지해 주십사하고 치성을 드렸다. 한참 치성을 드리는데 느닷없이 우물속에서 뱀장어가 튀어 나왔다. 놀란 아낙은 기절을하여 한참을 지나 정신을 차려 집으로 돌아왔는데 그후 얼마되지 않아 아낙의 몸에 산기가 돌더니 아들을 낳았다.아들을 낳은 아낙은 필경 무슨 까닭이 있을거라는 생각에 아들의 성을 뱀장어로 보고 얻었다.(뱀장어가 길다. 사투리로 하면 길다는 질다. 그것을 한자로 줄이면 '진'이 된다.)하여 진씨라 불렀는데 그 아들이 남원 진(晉)씨의 시조라 한다.현재 그 옥정 옆에는 진씨 시조의 묘동이 있고 옥정은 진씨문중에 석축하고 우물옆에 비석을 세우고 따로 옥정비를 세워 모시고 관리 하였으나 지금은 마을에 진씨의 손은 한집도 살고 있지 않다.그런데 대강면 방동마을 앞을 가니 남원진씨 세거지 비석이 있었다.

운교리 마을을 가로지르는 하천
이어 대산면 운교리를 갔다.운교리는 풍수설에 의하면 구름다리형 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 구름다리형의 마을을 바라보고 있는 대산면 금강리와 운교리의 경계인 나즈막한 고개가 있는데 마을에서 이 고개가 보이면 마을이 해롭다하여 면사무소앞에 인공으로 산을 만들어 그 고개가 보이지 않도록 했고 후에는 그 고개를 파서 뱅이(방비)를 했다고 하는데, 그 고개 옆 봉우리는 마을에서 보면 시체를 묶어 눕혀 놓은 형상으로 시체봉이라 부르는데 겨울에 황새가 날라와 시체봉을 향하여 머리를 조아리며 절을 하였으며 이 고개에 우물이 하나 있었는데 그 우물물을 마시는 사람이면 모두가 천질을 앓았다고 한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이 고개를 지날때마다 무사함과 액운을 막아 禍을 없애고자 고개 아래에다 돌을 하나씩 던져 돌무덤을 쌓았는데 이를 사망다무락(담장)이라하여 액땜을 하였다 고한다. 또 이 고개를 넘으면 금강부락 초입인데 그 주위가 꼭 상여를 메고 가는 모양이라하여 상정몰이라고 부른다. 그러한 까닭으로 운교리 마을 사람들은 면사무소 앞에다 커다랗게 산을 만들고 나무를 심어 시체봉 고개가 보이지 않도록 뱅이를 하였다가 그대로 두면 마을에 해가된다하여 지금으로부터 약 30여년전에 우물을 없애고 사망다무락을 없애고 고개를 깍아 내려 도로를 내어 마을의 액운을 막았다 해서 판고개라 부른다.마을마다 전설이 있지만 오늘 찾아간 대산면은 유독 전설적이다.
운교리를 거쳐 옥율천과 옥율리를 지나는 길가에서 가을의 친구인 탱자나무를 만났다.만감이 교차되는 대산의 가을 풍경은 세상 부러울것이 없을 정도다.놓치고 싶지 않는 풍경이라서 한컷 담아 보았지만 눈으로밖에 즐길 수 없어서 아쉬웠다.

그 다음은 전국에서 아름다운 숲으로 지정된 왈길 숲에서 휴식을 취하고 들깨를 베고 계신 노인을 보니 친정 아버지가 생각나서 말벗이라도 되어 드리고 싶어 뜨거운 가을 볕을 친구삼아 한참동안 이야기를 주고 받으며 음료수한병을 건네드리고 신계리풍악산 중턱에 자리잡고 있는 마애여래좌상을 갔다.자연암석의 일면을 다듬어 불상을 부각하고 광배를 새긴 마애불좌상이다. 도선국사가 하룻밤사이에 조성하였다는 전설이 있으니 어쨌든 대작업임에는 틀림없다. 불상은 소박하면서도 양감이 풍부하고 상호도 원만하여 어깨가 다소 넓은감이 있으나 전체의 균형은 잘 조화되어 있다며 전문가가 극찬하신다..지금도 우리의 갈길을 염려하는여래좌상의 모습이 정스럽기만하다.

이어 풍악산 정신요양시설 하원장님으로부터 차를 한잔 대접받은 후 선사시대 암막화가 있는 대곡을 향했다.오늘 제일 먼저 가보고 싶었는데 가장 나중의 코스가되었다.
암각화가 있는 남원시 대산면 대곡리 마을 앞 100여m 지점에 봉황대도 있다.한국에서 발견된 대표적인 바위그림은 울산반구대암각화(국보제285호)·울주천전리각석(국보 제147호)·고령양전동암각화(보물 제605호) 등이다. 울산 반구대암각화에는 여러 가지 동물과 물고기, 사람 등의 형상과 고래잡이 모습, 사냥하는 광경 등이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고 울주 천전리와 고령 양전동 암각화에는 추상적인 기하학적 문양이 새겨져 있다. 이밖에도 영일 칠포리, 경주 석장동 금장대, 남원봉황대 등과 같이 산과 물, 옛 무덤과 어우러진 바위그림이 여러 곳에 분포되어 있다.

길곡리 마을앞 텃밭에서 깻잎을 따며 어르신과 정담을 나누었던 필자.....

암각화는 선사시대 사람들의 생활상을 말해주는 대표적인 유적지이다. 물론 그것을 누가 만들었는지 어떻게 만들었는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다. 하지만 암각화는 당시의 사람들의 종교, 예술, 생활, 문화 등을 포함한 종합적인 문화 결정체이다. 암각화를 통해서 선사인들의 생활 방식이나 그들의 생각 등을 유추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들의 가장 중요한 문제를 암각화라는 형태의 언어로 남겨 놓은 것이다. 그들의 가장 큰 관심사는 생존의 문제였던 것 같다. 신상을 그려 신에게 기원을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서 신이라는 개념이 나온 것으로 보인다.

선사시대것으로 추정되는 봉황대의 암각화....
지금 이 시대에 바위에 그림을 새긴 뒤 시간이 지나면 그것이 당시의 어떤 것을 말해 주기를 할 것이나, 지금 우리가 흔히 말하는 국보나 보물이나 하는 문화재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선사인들이 남긴 암각화는 자기들의 간절한 생각을 담고 의미를 부여하고 상징을 그려 놓으면서 자기들의 제사의식에 쓰인 일종의 신의 역할을 대신하는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단순히 신비롭고, 흥미 있다라는 그런 생각을 버리고 다시 한 번 그들의 사고나 사상을 볼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야겠다. 또한 지금 발견된 암각화는 더 이상의 훼손을 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를 보존해나가는 문제도 생각해봐야할 것이다. 바위에 새긴 것은 언젠가는 풍화되고 만다. 조금더 많은 노력을 기울려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행해오던 탁본과 같은 방법을 지양하고 최근 발달한 컴퓨터를 통한 방법과 같은 암각화에 훼손이 안되는 방법을 이용하여 암각화를 연구할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다. 또한 유적을 보호할 수 있는 정부의 노력이 뒷받침 되어야 함을 물론이다.따라서 선사인들의 삶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유적인 암각화의 보존에 많은 노력을 해야함은 물론이고 이런 노력과 아울러 후대의 사람들에게 물려 줄 수 있는 그러한 자세가 갖추어져야 한다.
이 마을은 원래 대나무가 많아 죽동이라 했는데 마을의 형태가 비봉포란(飛鳳拘卵), 즉 나는 봉황이 알을 품고 있다하여 마을 뒷산의 제월봉이 나는 봉황이요 봉황대가 봉황의 알(卵)인데 대나무가 많은 까닭도 봉황의 먹이가 대나무 씨앗이기 때문이라 한다.봉황대의 암벽에는 봉황대(鳳凰臺)라 음각되어 있는데 옛날 어느 선비가 마을 앞을 지나다 봉황대를 보고 중국의 봉황대와 같다고하여 이곳에서 시문을 하고 풍류를 즐겼다고 하는데 이 봉황대는 봉황정 '말바위' '소바위' '탑건바위' 등으로 오밀조밀하게 구성되어 있고 봉황대를 감돌며 흘러가는 대곡천을 면하여 봉황정이 날아갈 듯 서있어 음풍농월하기에 안성마춤이다. 특히 이 마을에서 큰 인물이나 큰 부자가 나올때면 이 봉황대가 울었다하여 명암(嗚岩)이라고도 불리운다. 봉황대는 험한 낭떠러지 이지만 수맣은 사람이 몰려 들어도 추락사고 한 번 없었고 유독 개미와 모기가 없어 마을 사람들은 봉황이 자기의 알을 보호하고 있는 까닭이라 믿어와 현재 마을 공동으로 계를조직하여 봉황대를 공동으로 관리하고 있다고 한다.

또 월계리에 풍악산이 있는데 이 산 남쪽기슭에 커다랗고 넓은 암석층이 있고 암석층 밑에는 암굴이 하나 있었다고 한다. 석굴암에는 석정(石井)이 있었는데 겨울에는 얼지않고 여름에는 어름과 같이 차갑고 가뭄에 마르지 않고 장마가 들어도 넘치지 아니하여 일정한 수온과 수량을 유지하였다 하는데 지금은 이곳일대의 채석작업으로 그 형태를 찾아볼수 없는지 오래다.
전설에 의하면 이곳에는 석수암이 있었는데 함안조씨 조효문은 조선 중종때 인물로 아호를 월계(月溪)라 하고 송순과 벗이되어 함께 이 석굴에서 공부를 하였다고 한다. 이 두 소년들이 밖에 외출하였다가 돌아올때면 반드시 석수암 승려들의 꿈에 그들이 보였다고 한다. 하루는 추운 겨울, 때마침 폭설이 내려 눈이 산과 같이 쌓였는데 승려들의 꿈에 두 소년의 조짐이 있어서 꿈을 깬 승려는 "허 오늘은 두소년이 눈길을 헤치고 오겠는 걸" 하였다. 이 말을 듣고 있던 옆의 승려가 "아니 그래눈이 저토록 많이 왔는데 하늘을 나는 날개가 없는 이상 무슨 재주로 이 눈길을 온단 말이요" 하고 의아해 하며 묻자 꿈을 꾼 승려는 "내 꿈에 석굴암 돌샘에서 세 마리의 잉어가 노는 꿈을 보게되면 어김없이 두 소년이 나타나거든. 어젯밤에도 예외없이 이 꿈을 꾸었으니 어디 한 번 기다려 봅시다. 그런후 과연 두 소년은 책궤를 짊어지고 석수암으로 눈길을 헤치며 올라오고 있었다하는데 그곳이잉어와 석수암의전설이다.석수암 승려의 꿈에 항상 잉어 세 마리가 석정에서 노는 것은 그중 두 마리의 잉어는 조효문과 송순이 문과에 급제함으로써 그 영험을 보았고 한 마리의 영험은 아직 남아 있어 누군가 한사람의 큰 인물이 나올것이라는 기대를 대곡리 마을 사람들은 가지고 있다하여 세월이 흘러 석수암은 없어지고 그 자리에 산신사가 세워지고 석정이 있었다는 곳엔 생수만 솟고 있을뿐 찾아 볼수는 없다.
대곡리 남원 48방중 대곡방이었는데 대곡방은 속칭 "대실"이라 하는데 "대실"의 대는 대나무를 뜻한다하여 대곡방으로 표기하기도 하였는데 풍악산 줄기가 수없이 뻗어 그중의 한가닥이 대실 동쪽을 감싸며 뻗어 있는데 이 골짜기를 양시랑동이라 부른다. "시랑"은 조선시대 정랑에 해당하는 고려대의 정4품 문관 벼슬로 이곳에 한 무덤이 있었는데 그 아들은 부모가 살아 계실때에도 효성이 지극하였지만 부모가 돌아가시니 무덤앞에 초막을 지어 3년간 시묘살이를 했다. 이렇게 정성껏 3년을 부모 무덤에 시묘하니 나중에는 사나운 짐승호랑이도 그 효성에 감동되어 밤이면 초막을 찾아와 보호하여 주었다고 한다. 그의 성이 양씨요, 일찌기 시랑 벼슬을 하였기에 사람들은 이곳을 양시랑동이라 부르게 되어 오늘에 이르렀다고 한다. 일정에 잡혀 있는 곳이지만 너무 시간이 늦어 다음으로 미루고 오늘을 여기서 접는다.

다시 찾아간 봉황대......
* 양경님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7-10-17 22:12) * 양경님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8-03-16 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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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경님 10-29 15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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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상사에 속해있는 서진암을 찾아간 시간은 오후 2시쯤 된것 같다.일성콘도 앞 매동마을을 지나 한참 올라가다 보니 차로가 끊겼다.일행은 주차를 해놓고 갈림길에서 선택을 해야할 입장에 놓였다. 아무래도 산을 많…
양경님 10-25 2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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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쪽으로는 백두대간, 서쪽으로는 요천강이 흐르는 남원시의 중앙에 위치한 도심 인접지역으로 쾌적한 주거환경과 국도24호선의 산업도로가 지나가는 교통이 편리한 사랑과 인정이 넘치는 살기좋은 고장 이백면!국화…
양경님 10-21 33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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