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원향토문화연구회 회원 오정희
내가 다니는 답사 활동은 단순한 역사, 문화의 앎만이 아닙니다. 유적지를 다니며 그때를 살았던 그네들의 당시 심정으로 그것을 대면 할 수 있다면 나는 또 다른 누군가와의 특별한 만남을 가질수 있는 것이었고 그것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올해도 우리는 년 초면 빠짐없이 참배하였던 만인의총으로 향하였습니다. 그곳은 내 어린시절 쉽게 드나들던 놀이마당 이였고 지금은 삶의 쉼표를 느낄 수 있는 편안한 쉼터입니다. 아주 익숙한 발걸음이었지만 오늘은 새로운 의미로 만인의총을 찾았습니다.
향교리 왕산 남쪽 기슭에 안치되어 있는 만인의총에서는 남원시내가 조용히 내려다보입니다. 안타깝게도 지금은 고층 아파트가 시야를 막고 있어 400년이나 훌쩍 지나버린 정유재란 당시 남원성 전투의 치열했던 최후의 결정장을 떠올리기는 더욱더 어려웠습니다.
임진왜란은 조선과 일본 양국이 전국력을 동원해 치른 한국사상 최대의 전란이었습니다. 개전 초기 극히 불리한 상황에도 전국적으로 일어났던 의병의 활약은 전쟁의 국면을 반전 시킬 수 있었고 종국에는 일본을 격퇴시키는데 가장 크게 공헌을 하였습니다. 그렇지만 아직도 말없이 죽어간 수많은 의병들과 민중의 애끓은 아픔, 참혹한 희생이 특정지역인물의 공적으로만 평가되고 있어 못내 아쉽습니다.
5만 6천명이나 되는 군사로 남원을 포진할 만큼 왜군에게 있어서 남원성 싸움은 중요했습니다. 거기에 비하면 조명 연합군은 4천3백여명 정도였으니 사실 군사력으로 본다면 처음부터 패배 할 수밖에 없는 싸움이었습니다. 이러한 전황에서 우리 의병들과 민중들은 죽음의 혈전을 감행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돌맹이 죽창 괭이등을 무기로 최후의 일각까지 싸우다 천추의 한을 가슴에 품고 순절한 의병과 애국시민 만 여명의 주검이 이 만인의총에 묻혔습니다. 비전투원이었던 어린아이와 여자들까지도 학살하여 그 코나 귀를 베어간 잔학무도 하고 잔인한 싸움이었습니다. 이렇게 참혹한 아픔이 땅속에 깊이 묻혔습니다. 누가 지고 이긴 싸움이었는가를 가리는 일로 그들의 참혹한 아픔을 위로할 수는 없는 것 같습니다.
일본은 이 전쟁에서 조선을 폐허로 만들었으나 그들이 기도했던 목표달성을 하지 못했고 도리어 수많은 농민이 동원되어 일본의 농토도 피폐되고 도요토미정권 역시 무너졌습니다. 전쟁에서는 침략자나 침략을 받은 자나 모두가 희생자인 샘입니다. 다만 만여명의 아름답고 거룩한 희생을 위로 할 수 있는 방법은 그들이 목숨까지 내걸어 지키려고 한 남원에 대해 우리 후진들이 애정과 사랑으로 더 이상 무너지지 않을 정신의 성벽을 굳게 쌓는 일아 아닌가 합니다.
그토록 남원을 사랑했던 만인의 거룩한 희생이 있기에 그들의 정신을 추모하고 배우려는 우리들이 있기에 남원은 더욱 아름답고 강한 도시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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