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설「혼불」의 작가 최명희님의 넋이 마을노송을 지켜냈다 -
소병호(남원향토문화연구회 고문)
최명희님의 혼이 우리를 인도하였다. 그렇다. 그것은 우연의 일치가 아니 라, 분명 하나의 계시였다. 하필이면「그 날」,「그 시각」에「그 곳」을 지나가게 되었는가? 그리고 하필이면 목적지인 노봉제(露峰堤)를 찾아간 다면서 길을 잘못들어 노봉제로 직통하는 길을 놓아두고 마을 진입로로 접어들었는가? 만일 길을 제대로 짚어 노봉제로 직행하였더라면「그 곳」 은 무심코 지나쳤을 것이고 그 노송을 캐내는 작업광경도 포착하지 못하였을것이다.
뿐만 아니라 체리암, 매화낙지 터 등 다른 답사 예정지가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오후로 미루고 웬지 일행 모두가 한결같이 오전중에 노봉제부터 먼저 다녀와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었다.
우리가 노봉마을 어귀에 막 들어선 것은 3월14일(金) 오전 11시경이었다.
첫 눈에 이상한 광경이 들어왔다. 몇 명의 인부들이 커다란 낙락장송 두 그루를 장비를 동원하여 캐고 있는 것이었다.
“아니 저 소나무는 행정에서 보존하기로 약속한 그 나무들이 아닌가?”
알아 본 즉 이 소나무 두 그루는 서울 사는 나무 임자가 조경업자에게 이 미 매각하였고 지금 매수자가 반출하러 왔다는 것이다. 소나무는 이미 뿌리가 거의 다 들어나 있었고 운반하기 편리하도록 가지도 몇 가닥 잘린 채 한 시간 정도만 더 작업을 한 뒤 집게로 이빨 뽑듯 중장비로 뽑아 올려서 이미 대기하고 있는 운반차량에 싣기만 하면, 수 백년간 정든 고향을 떠 날 수밖에 없는 절박한 운명에 쳐해 있었다.
소나무의 수령은 2, 3백년쯤 되어 보이는데 아주 싱싱하고 모양이 아름다웠다. 소나무도 자웅이 있는 것인가? 한 그루는 사내처럼 우람하고 껍질 투성이고 약간 다른 한 그루는 지지껍질이 별로 없고 미끈하게 뻗어 오른것이 미려 단아한 자태를 지닌 30대 여인과도 같다.
더구나 소나무 아래로는「혼불마을」주차장이 닦여진다고 한다. 주차장 부근에 서있는 한 쌍의 소나무라! 그리고 10여 평 남짓한 그 그늘에서 땀을 씻으며 담소하는 손님들! 이 얼마나 정겹고 그 멋깔스러운 운치인가? 사내 소나무는 가지를 온 통 왼쪽 언덕을 향하여 뻗고 있는데 그 언덕에 는 빈 오두막집이 한 채 있다. 옛날에 서저울댁이 그 집에서 두부장사를 하면서 살았다고 촌로 한 분이 귀띔하여 준다. (혼불의 주인공 효원의 친 정에 살았던 찬모 서저울네와 혹시 무슨 연관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언젠가 어느 이름난 순두부집에 들려 김이 무럭무럭나는 순두부를 숭숭 썰어서 양념장에 꾹꾹 찍어서 막걸리에 곁들어서 먹던 생각이 난다.
“여보시오 서저울댁, 여기 두부하고 막걸리 좀 가져오시오” 사내소나무 가 연신가지를 흔들어댄다.
반대로 색시소나무는 마을쪽을 향하여 가지를 뻗어 살랑거리고 있는데 마치 “저어 동네 양반들 어서 오시겨요. 여그 손님들이 오세 갖고 지달코 계시구만요” 하면서 한들한들 교태를 부리고 있는 것만 같다.
과연 호사가가 탐낼 만한 나무들이다. 이런 정도의 나무를 외지에서 사 들여 조경하는데 쓰려면 모르긴 해도 기천만원은 들지 않을까?
이 부부소나무는 마을의 수문장 겸 길라잡이가 되어 수 백년동안 마을을 지키면서 주인들을 맞고 나그네들을 배웅하였을 것이다.
이윽고 관계 부서에서 간부와 직원들이 나오고 소유자와 매수자 사이에 통화가 오가고 하더니 부부 소나무는 일단 위기를 면하게 되었다.
나무를 매수한 분도「혼불」의 애독자라고 하면서 한 걸음 양보하여 보존에 적극 협조하기로 하였다 한다. 참으로 장한 일이다.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병사는 죽어서 말한다고 하던가? 작가에게 영원한 죽음이란 없다. 작가 는 죽은 뒤에 테마(theme)속에서 다시 부활하기 때문이다. 부부 소나무는 노봉마을로 지켜왔다. 그리고 작가 최명희님은 오늘 부부 소나무를 지켜 내기 위해서 우리를 인도하였음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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