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친구 딸이자 제자인 주희가 광주 웨딩문화원에서 11시 30분 결혼식을 하였다.
결혼식에 참석 후 예슬이의 입시 때문에 어딘가에 가서 빌어보고 싶은 마음에서
언니랑 광주와 가까운 화순 운주사를 찾았다.


천불천탑의 운주사는 몇 년 전에 향토문화연구회에서 도선국사가 하룻밤사이에 천불천탑중 마지막 부처를 세우다 닭이 울어 와불이 되어버린 와불을 찾아 마음의 답답함을 털어 놓았다.


운주사는 천불천탑으로 잘 알려진 운주사는 협곡을 사이에 두고 양날개로 뻗어내린 산등성이에서부터 불심이 가득한 특이한 사찰이다. 불상이나 불탑으로 보면 예전에 전각이 이곳저곳 있음직한데, 지금은 일반사찰과 유사한 대웅전을 중심으로 우측으로 지장전. 왼쪽엔 승려들이 거주하는 요사채와 대웅전 뒤로 산신각이 자리한다그 후 조사한 기록을 보면 석탑이 22기, 석불이 213기가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석탑 17기, 석불 80여기만 남아있어 역사 속에서 끝없이 유실되어온 뼈아픈 세월을 겪어왔음을 알 수 있다. 운주사 서쪽 산능선에는 거대한 두 분의 와불(미완성석불)이 누워있다. 예부터 전해오길 “이 천번째 와불이 일어나시는 날 새로운 세상이 온다.”는 말을 전해왔다고 한다. 아마도 운주사 천불천탑은 우주법계에 계시는 부처님이 강림하시어 하화중생의 대 설법을 통한 불국정토의 이상세계가 열리기를 간절히 염원하는 마음으로 조성한 대불사가 아닐까한다.불사뒷산에는 큰 암벽에는 마애불이 마모가 되어 장구한 세월이 지났음을 알 수 있으며, 주변의 산림이 지난해쯤 산불로 인해 모두 타버려 불 냄새가 가시지 않았다. 한 스님이 넓은 가람을 쉬지 않고 걷는 고행을 보면서 저 스님은 무슨 깨달음이 부족하여 상좌스님이 깨달음을 얻도록 하였을까를 생각게 한다..


일주문까지 이어지는 곳에는 각기 모습이 다른 석불이 존재하고 불탑이 있지만, 간혹 원형으로 이루어진 불탑이 생소하다. 또한 사각의 석실에는 부처가 등을 대고 앞뒤로 자리하고있어, 일반적인 가람의 형태와는 다른 느낌을 받는다.
조선조 인조 10년(1632)에 발간된 능주읍지에는 ‘운주사 재현남이십오리천불산좌우산협석불석탑 일천우유 석실이석불상배이좌(雲住寺 在縣南二十五里千佛山左右山峽石佛石塔 一千又有 石室二石佛相背而座)’ 운주사는 현의 남쪽 이십오리에 있으며 천불산 좌우 산 협곡에 석불 석탑이 일 천씩 있고 석실에 두 석불이 서로 등을 맞대고 앉아있다는 기록이 있는 걸로 봐서 일천씩의 석불 석탑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고, 그 말미에 금폐(今廢) 라는 추기가 있어 정유재란으로 인해 소실되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