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원 (淵 源)
우니 나라 모든 양씨(梁氏)의 시조는 탐라 개국 설화의 삼신인 중의 한 분이신 양을나 이시며 삼신인 중 맏이가 양을나, 둘째가 고을나, 셋째가 부을나로서 이들이 양ㆍ고ㆍ부 제주 3성의 시조가 되었다.
우리 양씨는 모두가 제주양씨에서 분관되었는데 제주도내에 분포된 토박이 양씨를 제양, 육지에 널리 퍼져있는 양씨를 육양이라 부른다. 양씨의 본관은 제주양씨, 남원양씨, 충주양씨의 삼대파로 분관되는 바 그 외의 종파는 이 삼대파 중에서 분파된 것이라 할 수 있으며 서기 1686, 1973년 대동보를 간행함으로써 동조동원임을 과시하고 있는데 이 삼대파 중 남원양씨가 전체의 70%를 차지하고 있다. 아주 옛날, 제주도에는 사람이 살지 않았다. 어느날 한라산 북쪽 기슭땅속에서 삼신인이 솟아 나왔는데 이곳이 삼성혈이라 불리는 모흥혈이다. 이 때가 단군창업과 동시대이며 탄생 시기는 중국의 “요” 25년이라고 구보에 실려 있으나 유사 이전의 일이라 정확한 고증은 불가능하다.삼신인은 사냥을 하여 짐승과 고기를 잡아 먹고, 짐승가죽으로 옷을 해입으며 살았는데 어느날 동해 바닷가에 이상한 나무상자 하나가 떠내려 왔다. 가서 열어보니 무지개 빛 광채 속에 아리따운 처녀 세 사람과 오곡의 씨앗, 가축의 종자가 들어 있었는데 이윽고 자색 빛 옷을 입은 사자(使者)가 앞으로 나와 말하기를 “벽랑국왕이 서해 가운데 신인이 탄생하여 장차개국할 것이라 예언하고 공주 세 자매를 보냈아오니 취(娶)하시어 조국(肇國)하시오” 하고는 구름을 타고 사라졌다.이렇게 되어 삼신인은 나이순으로 세 공주와 혼인지(지금의 남제주군 성산면 은평리에 위치한 고적 “혼인지”)에서 결혼을 하였으며 활을 쏘아 자신들이 정착하여 살 곳을 정하였는데 첫째 화살이 꽂힌 제1도리는 양을나, 두 번째 화살이 꽂힌 제2도리는 고을나가 세 번째 화살이 꽂힌 제3도리는 부을나가 각각 차지하여 양을나를 개국왕으로 탁라국을 창건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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