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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아막성과 모산성

글쓴이 : 양경님 날짜 : 2007-12-05 (수) 22:13 조회 : 1592
아막성과 모산성

이제 아막산성과 아막성(阿莫城) 모산성(母山城)이 동일한 성인가 아니면
각기 다른 성인가를 추적해 보기로 한다.
『삼국사기』에 기록된 기사 내용은 앞에서 밝힌 바 있다. 그에 따르면
아막산, 아막, 모산의 세 성은 하나의 성에 대한 다른 이름으로 보인다. 그
러나 사실일까? 이에 대해 결정적인 문제점을 제시하는 것은 『삼국사기』
의 기사 내용이다. 「신라본기」의 602년 8월조에서는 百濟來攻阿莫城 이
라 했고 616년 10월조에서는 功新羅母山城 이라 한데 비해 602년 8월의
「백제본기」에서는 王出兵圍新羅阿莫城 이라해서 구체화시켰는데 여기서
문제되는 것은 圍(포위) 라는 것이다. 이는 산성이기 때문에 포위할 수 있
는 것이지 일정지역을 통괄하는 평지성으로 상정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보다 중요한 이유는 다음에도 얘기되겠지만 아막산성과 아막성이
별개의 다른 성일 경우 백제가 아막성을 공격하려면 이미 아막산성을 정복
한 후여야 하며, 그렇게 되면 백제는 이미 백두대간에 신라를 공격할 수 있
는 교두보를 확보하게 된 상태가 되고, 이어서 아막성이라는 평지의 본부성
을 진격하게 된다는 결론에 이른다. 따라서 백제가 후퇴를 하더라도 천산
서대택 근방이 아닌 아막산성으로 후퇴를 하게 되는데 『삼국사기』의 내용
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삼국사기』의 서술상 「신라본기」가 앞에 쓰였고 「백제
본기」가 뒤에 쓰인 점이라든지 「신라본기」에는 간략하게 서술된 것이
「백제본기」에서는 구체적으로 상술된 예로 보아 「백제본기」의 서술이
더 정확을 기했을 것으로 보아 「백제본기」의 기록에 더 신빙성이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사실상은 616년의 모산성 공격은 공격으로 끝난 게 아니라 모산성
을 탈환한 기사다. 백제는 이 모산성의 탈환을 기점으로 운봉고원을 평정하
고 624년에는 함양 일대를 점령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602년의 「신
라본기」에서 아막성 이라 한 것은 아막산성 을 신중을 기하지 않고 기록
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보며 그런 혼란을 야기시킬 수 있었던 것은 또다른
아막성 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라는 추정을 가능하게 한다. 이 밖에도 몇
가지 의문점을 제기해 보면
첫째, 아막이라는 지명이 있었으니까 그 지명을 딴 대표적인 산성으로 아
막산성이라는 명칭이 붙여진 것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둘째, 대체로 평지성에는 지명 다음에 그냥 성을 붙인다. 남원성 전주성
이 그 예이다. 그런데 비하여 산에 성을 축조했을 때에는 산성을 붙인다.
교룡산성, 음지산성, 양지산성 등이 그 예이다. 그런데 삼국사기에는 아막
산성, 아막성, 모산성이라는 이름이 섞여 쓰이고 있어 평지성과 산성의 구
분이 되지 않고 있다.
셋째, 권력자가 산성에 거주하면서 그 지역 주민을 통치하는 경우는 없
다. 권력자는 평지성에 거주하면서 방위 담당관을 산성에 파견하여 방어에
임하도록 한다. 그리고 성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그 성들을 통괄하는 기구
가 생겨나지 않을 수 없다. 그 통괄하는 기구는 평지에 두지 않을 수 없다.
또한 아막산성을 두고도 네 개의 성을 더 수축해서 대비하려는 정도의 세력
권이라면 그만큼 권위를 드러낼 수 있는 정도의 어떤 기구나 위용의 시설을
필요로 한다. 그렇다면 아막산성을 후방에서 지휘 통솔하는 실질적인 권력
자와 그 사람이 통치하는 기구나 기관이 있어야 한다. 이 기구나 기관은 운
봉고원의 고대 명칭인 아막(阿莫)이라는 지방에 있어야 하고 이 지역에 있
는 평지성을 아막성이라 했을 것이다.
이를 확인해 보기 위하여 필자는 아영면 일대를 몇 번 답사한 일이 있었
는데 아영면 월산리가 성터임이 분명한 것을 확인했고 청계리도 성터였을
가능성이 높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인근에 있는 이 두 마을의 성터
가 어떤 관계에 있는지는 확인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청계리 뒤에는 저수
지가 있고 저수지 뒤에는 시루봉이 있는데 시루봉의 동쪽 즉, 시루봉과 저
수지 사이는 거대한 삼각형 지형을 이루고 있고 이 일대는 경사가 대단히
완만하고 엄청나게 넓은 평지에 가까운 숲이 형성되어 있는데 이 일대에서
인공적인 흔적이 역력한 돌의 집산 분포를 여러 군데서 확인할 수 있었다.
이 지역에서 북쪽의 낮은 구릉을 넘으면 성리로 해서 아막산성과 복성이고
개 및 치재봉 아래에 도달할 수 있고 남쪽의 구릉을 넘으면 월산리에 이르
게 된다. 이러한 확인 결과를 근거로 필자는 월산리나 청계리에 이 지역을
통괄하는 본부성과 그에 연계되는 성이 있었을 것으로 보며 적(백제)으로부
터 완전하게 은폐되고 엄폐된 시루봉 아래에 군사의 기지나 본부를 두고 아
막산성과 그 이후 축성한 이 일대의 성에 유사시 군대를 파견하여 대비하는
작전을 구사하였던 것이 아닌가 하며, 따라서 월산리나 청계리에 있었던 성
의 하나 혹은 두 성을 함께 아막성이라고 하지 않았는가 추정하고 있다. 그
러나 이를 입증하기 위해서는 이 일대의 과학적이고 면밀한 조사가 이루어
져야 할 것이다. 앞에서 이미 얘기된 바이지만 청계리 일대에는 고인돌군이
있으며 월산리 고분군에서는 환두대도가 출토된 고분군이 있고 이 건너편
능선에는 가야계의 대형 고분군이 집중적으로 분포된 두락리와 유곡리가 있
다. 이 정도의 고분군이 있기 위해서는 이 지역에 강력한 권력 집단이 거주
하고 있었음이 분명하며 이 권력 집단의 규모는 그만큼의 위용을 뽐낼 만한
평지성을 보유하고 있었을 것이 또한 분명하다.
『삼국사기』가 완성된 것은 1145년 고려 때이며 여기서 추적하고 있는
연대는 602년이니까 500년을 훨씬 상회하는 시대가 지났음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모산성(母山城)의 경우는 더욱 어려워진다. 언 듯 생각하면 월산리와 청
계리성 중 그 하나가 아막성이고, 다른 하나가 모산성일 수도 있겠으나 그
렇게 이해되지는 않는다. 이에는 여러 가지 문제점이 제기되는데 이를 정리
해 보면
첫째, 아막, 아영이라는 명칭이 지금도 전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삼국
사기』의 운봉현본모산현(雲峯縣本母山縣) 이라는 기록 다음에 붙은 주에
혹운 아영성 혹운 아막성 이라 했고 이 기록에 나타난 이름들이 모두 성
으로 불리는 특징이 있으며 아영평원에 적용된 이름들임에 틀림이 없다.
둘째, 아막과 아영은 음운상의 유사점을 찾아볼 수 있지만 모산성은 음운
상의 유사점이 없다.
셋째,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삼국사기』의 지명에는 현행 행정 구
역의 아영, 동면에 관한 지역만 일관되게 나타나지 운봉읍 일원에 관계된
지명은 없다.
넷째, 운봉읍에도 가야계통이나 백제계로 보이는 고분군이 많으나 아영면
일대에서 보이는 대형 고분군이 전혀 나타나지 않음은 이 문제와 어떤 연관
성이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점이다.
다섯째는 602년을 전후한 당시의 교통로가 지금과 같았을까 하는 점이다.
이러한 문제점을 종합적으로 점검하여보면, 자동차 문화가 보급되기 전에
는 남원시와 함양읍을 연결하는 교통로는 현재의 24번 국도를 따르는 여원
치, 운봉, 인월, 팔량재의 코스가 아닌 산동, 복성이고개, 아영, 매치고개
를 통한 길을 더 많이 이용했다. 이 길은 24번 국도를 통한 길보다 가깝고
무리하게 큰 고개도 없다. 게다가 고분군의 분포로 보아 대형 고분이 아영
면 일대에 집중적으로 분포되어 있는 것을 감안할 때 600년대에는 지금의
운봉읍 지역보다 아영면 지역에 고위급 세력자들이 집중 거주하고 있었음이
틀림 없고 따라서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였다고 보아야 한다.
여기서 지명을 다시 언급해 보면 아막 과 모산 은 아미 나 어미 의
뜻으로 하늘을 뜻하는 공통점이 있다는 것은 앞에서도 얘기되었지만 같은
의미의 명칭이 왜 크게 다른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는가는 의심해 보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운봉읍 일원도 아영면 일원의 조건을 완벽하게 갖추고 있
다. 예를 들면 아영면보다 더 넓은 들을 운봉읍이 갖추고 있으며 아영면의
봉화산이 천산(泉山 혹은 天山)이라면 운봉읍의 고리봉과 수정봉 역시 천산
의 기능을 갖추고 있다. 이 산들을 수원(水源)으로 한 물이 운봉천을 따라
봉화산에 수원을 둔 아영천과 합류되어 가야지방의 젖줄인 남강으로 빠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같은 의미의 지역에 어떤 구분을 두어야 한다는 조건을
전제하고 한 지역은 아막, 한 지역은 모산이라는 이름으로 구분해야 할 필
요를 상정해 볼 수 있다. 더구나 천산(泉山) 을 천산(天山) 으로 볼 때
그에 대응하는 모산(母山) 으로 연결하면 아주 자연스러워 진다.
그런데 후기신라(통일신라) 이전에는 각 지역의 행정 중심지에 성을 두었
기 때문에 지명에 성(城)을 붙여 불렀으나 후기신라에 들어와 현(縣)의 명
칭이 붙여진 것으로 보아 602년 당시에는 현재의 아영면 중심 체제에서 8세
기 중반에는 이미 운봉읍 중심체제로 바뀌었던 것이 아닌가 한다. 따라서
『삼국사기』기록 당시에는 아영면의 세력은 약화되고 운봉읍 세력 체제가
확고하게 잡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추정이 사실에 어느 정도만
접근한다. 해도 아막성과 다른 성으로 운봉읍 지역의 어디엔가에 모산성이
라는 성이 따로 있었을 것으로 파악된다.
필자는 이러한 추정을 근거로 하고 『조선보물고적조사자료』의 소형토
루지가 있으며 태반이 붕괴되었다. 와 『문화유적총람』의 유래 미상의 석
성으로 석축 주위 약 1100m정도였으나 대부분 붕괴되었다. 는 운봉읍의 구
읍내리(현재의 읍소재지 일원)에 있었다는 수미성(輸未城)을 찾아보려했으
나 실패했다.
또한 아막성으로 추정한 월산리와 청계리의 지형에 맞추어 고남산 아래인
임리, 권포리, 가동 마을 등에서 성터를 찾아보았으나 권포리와 가동 마을
에서 약간의 가능성만 확인했을 뿐 실패했다. 한국보이스카우트연맹 에서
펴낸 『한국의 성곽과 봉수』에서는 운봉읍 서천리와 신기리 사이의 성산
(城山)에 있는 잿미산성을 수미성으로 파악해 보려 하였으나 필자의 답사
결과로는 문헌 기록의 수미성과 다르며 그 규모나 시설 및 위치에 있어 읍
성이나 지휘, 본부성에 걸맞지 못하다는 결론을 얻었다. 그러나 『문화유적
총람』의 기록이 조사당시의 사실로 확실하다면 이 수미성이 아막산성과는
또 다른 모산성일 수 있는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필자는 또 다른 가정을 설정해 보고 있다. 그것은 무왕이 602년에
아막산성을 두 번이나 공격했으나 실패하고 그 14년 후인 616년에 모산성을
공격하여 빼앗게 되는데 이는 602년의 공격 이후 아막산성 일대에 대한 신
라의 방어 체제가 더욱 견고해짐에 따라 비교적 방비가 허술한 지역의 허점
을 찾아 공격하였던 것이아닌가 하며 이 지점을 방학산성(장교리산성)으로
추정해 보는 것이 그것이다.
방학산성은 지금의 여원치 동북쪽에 있는 성인데 여원치의 서쪽에는 주지
봉과 음지, 양지산성이 있어 이 여원치 일대를 얼마나 견고하게 지키고 있
었는가를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여원치 주변에는 여원치 말고도 크고 작
은 고개가 많다. 특히 방학산 아래에는 이백면 내촌 마을이 있고(이 마을은
옛날에 백제성이었다.) 이 마을에서 장교리에 이르는 계곡은 주변에서 완전
히 은폐된 계곡인데 노루잿재(장재)를 통하여 장교리에 이르게 되고 백제군
이 장교리에 이르면 방학산성을 고립시킬 수 있는 조건을 갖추고 있다. 그
렇다면 지금은 장교리산성, 합민산성, 할미산성 등 여러 명칭으로 부르고
있는 이 성이 당시 운봉권은 대표하는 모산성일 가능성이 높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방학산성은 어디까지나 국경의 산 위에 있는 산성일 뿐이어
서 운봉읍 일대를 통괄하고 주변의 국경성을 통괄하고, 어떤 경위로 해서
이름이 바뀌었는지는 모르지만 그 성이 수미성으로 기록된 운봉읍의 구읍내
리에 자리잡고 있을 가능성이 가장 높다. 따라서 운봉에는 모산성 과 산
성인 모산산성 이 있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를 정리해 보면 아막산
성과 아막성은 각기 다른 성이고 아막성은 아영면에 있었던 평지성이며 읍
성으로 월산리나 청계리에 있었던 성이 틀림없을 것이며 모산성은 또 다른
평지성으로 읍성인데 이는 운봉읍 지역에 있었던 것이 확실해 보이고 수미
성이라는 이름으로 기록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운봉에는 평지성인
모산성 과 산성인 모산산성 이 있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런데 김부
식이『삼국사기』를 쓴 고려 중엽에는 산성이 그 기능을 상실하고 평지성만
활용되고 있어 아막산성과 아막 혹은 아영성과 혼동했으며 같은 고원에 있
는 모산성과 아영 혹은 아막성을 혼동하여 동일한 성으로 착오를 일으킨 것
이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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