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찌는듯한 무더위가 식을 줄 모른다.
그러나 예슬이가 장학회에서 하계수련회를 가는데 1인 2역을 가지고 동행한 하루의 일정은 너무너무 소중했다. 우선 예슬이와 이야기를 참 많이 했다. 가정사나 진로 교우관계 등등.
평소 서로가 바쁘다는 핑계로 많은 대화가 없는 탓에 미안하기도 했지만 누가 뭐라고 해도 난 예슬이에게 항상 고맙다.
오늘 장학회에서 꼭 부모님과 같이 가기를 바라는 깊은 마음이 이해가 된다. 많은 부모들이 이런 저런 핑계로 빠졌는데 다음엔 꼭 같이 참석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화가는 아름다운 자연을 그대로 화폭에 담을 수 있어서 좋겠고 작가는 글을 통하여 인간세계와 통해서 좋겠지만 난 모든 것이 부족해 나의 마음을 표현 할 길이 없어 속상 할 때도 많다. 하지만 이대로 넘어가기엔 너무 아쉬워 땀을 뻘뻘 흘리며 작은 메모를 하여본다.
역사의 향기와 전통의 숨결이 살아 있는 안동!
한국의 정신문화의 수도라고 할 정도로 안동은 선인들의 정신이 살아 숨 쉬고 있다. 언제부터인지는 몰라도 꼭 다녀오고 싶은 마을 이었다.
시대별로 다양한 문화재를 고르게 보유한 전통문화의 고장 안동은 염상도사가 BC57년에 창녕국을 세웠다고 한다.

문화해설사로부터 해설을 들으니 현장교육만점
안동하면 생각나는 것이 많이 있지만 먼저 안동하회마을이다. 중요민속자료 제122호. 예로부터 유림의 고장이었던 이곳은 한국의 대표적 동족부락으로, 국보를 비롯해 보물·중요민속자료·중요무형문화재 등 값진 문화유산을 간직하고 있어 1984년 1월 민속보존마을로 지정되었다. 동쪽은 태백산의 지맥인 화산(321m)이 감싸고 있으며, 낙동강이 서·남·북 경계를 따라 마을 전체를 태극형으로 감싸 흐른다. 이는 풍수 지리적으로 산태극수태극(山太極水太極)을 이루는 길지(吉地)로 임진왜란 때는 전화를 입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곳에는 '허씨 터전에 안씨 문전에 유씨 배판'이라는 말이 전해오는데, 이는 일찍이 허씨(許氏)들이 자리를 잡았다가 나중에는 안씨(安氏)들이, 그 다음에는 풍산유씨(豊山柳氏)들이 동족부락을 이룬 곳임을 의미한다. 조선 전기에 이미 유씨들의 기반이 성립되어 있었을 것이라 짐작되나 유씨 동족촌의 기틀이 마련된 것은 조선 중엽 이후 대유학자인 유운룡·유성룡 형제 시대에 이룩되었다.

과거 신분제 사회의 생활을 엿볼 수 있는 300~500년 된 130여 호(戶)의 유서 깊은 대·소 가옥들이 보존되어 있다. 이들 중 유운룡의 종택인 안동 양진당(보물 제306호)과 서애 유성룡을 모신 종가인 충효당(보물 제414호)을 비롯해 하회 북촌택(중요민속자료 제84호)·하회원지정사(중요민속자료 제85호)·하회 빈영정사(중요민속자료 제86호)·하회 유시주가옥(중요민속자료 제87호)·하회 옥연정사(중요민속자료 제88호)·하회 겸암정사(중요민속자료 제89호)·하회 남촌택(중요민속자료 제90호)·하회 주일재(중요민속자료 제91호) 등이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이들 가옥들은 모두 풍산유씨의 소유이며, 대부분이 유운룡과 유성룡의 유적이다.
하회마을의 대표적 가옥으로는 북촌택·양진당·충효당·남촌택의 네 가옥을 들 수 있는데, 이들 가옥들은 ㅁ자형을 기본으로 하고 몸채의 한 편을 연장해 사랑채로 했다.
충효당 후원에 있는 영모각(永慕閣)은 유성룡의 유물을 보존·전시하기 위해 지은 것으로 각종 유물과 문서들이 보존되어 있다. 또한 이들 가옥 변두리에는 하인이나 노비·타성씨(他姓氏)가 거주하던 집들이 있는데, 이들은 3~4칸 규모의 토담집이다. 이 고장의 오랜 민간전승놀이로 하회별신굿탈놀이(중요무형문화재 제69호)와 강상유화(江上流花) 놀이인 줄불놀이가 있다. 하회별신굿탈놀이에 쓰이던 하회탈은 국보 제121호로 지정되어 있다(→ 하회탈 및 병산탈).

서북쪽으로는 울창한 노송림대가 있으며, 마을 중앙에는 600여 년 된 느티나무가 있어 삼신당나무로 삼고 있다. 강 건너의 부용대는 천연의 병풍과 같은 형태를 자아내며, 이 일대는 백사청송(白沙靑松)이 어우러져 경승을 이룬다. 이곳 강은 대략 최대 폭 300m, 최대수심 5m에 이르며 하회도선장의 나룻배를 이용해 주변지역과의 왕래가 이루어지기도 한다. 상주와 풍산읍을 잇는 지방도와 연결된 길이 하회마을을 동서로 가로지르며, 이 마을길의 북쪽을 북촌이라 하고 남쪽을 남촌이라 한다. 1990년 현재 남촌·북촌의 총가구수는 102가구이다. 산업화에 따른 이농현상과 그로 인한 인구의 감소 및 노령화, 빈 집의 증가와 가옥의 유지·관리가 소홀해지면서 가옥들이 퇴락해가는 문제점을 안고 있어 근본적인 대책이 요구되고 있다. 또 안동은 민속 문화의 보고이며 유교의 본향이다. 그리고 불교문화의 정수의정수라고 하는데 빼놓고 가기는 너무 아쉬워 몇 자 적는다.
민속 문화의 보고
세계에서 그 유래를 찾아보기 어려운 남성들만의 격렬한 대동놀이인 “차전놀이”품격과 적극성을 갖춘 여성들의 대동놀이인 “놋다리밟기” 민간신앙의 근원이라고 할 수 있는 성주(집의 창조신)의 고향 “제비원” 세계적인 탈문화와 한국적 신명이 넘쳐나는“하회별신굿탈놀이”풍요와 다산을 기원하며 농사의 피로를 덜고 능률을 올리기 위해 부르는 “저전농요”마을의 평안과 풍농을 기원하는 “동제”등은 안동에서만이 볼 수 있는 한국 민중의 삶의 문학이다.ㅣ서민들의 투박한 생활 속에 잠재 되어 있던 갖가지 놀이 문화와 전통행사에는 강인하고 고집스러운 서민들의 삶이 그대로 녹아 있다.


영국엘리ㅏ베스여왕방문기념관에서
유교 문화의 본향
안동은 義 와 禮를 중시하여 대쪽같이 꼿꼿한 절개로 학문과 풍류를 즐겼던 옛 선비들의 생활과 정신이 그대로 배어 있다. 동방의 주자라 불리 울 정도의 대학자였던 퇴계이황을 비롯하여 서애 류성룡등 명현이 많이 배출되었으며 이들의 학문의 전당이었던 향교와 서원이 발달한 곳이다.
특히 전국에서 가장 많은 서원이 건립되어 학문의 전당으로 이름 높았으며,그중 26개소가 아직도 현존하며 봄, 가을 두 차례에 걸쳐 향사(享祀)를 봉행한다고 한다. 선비정신에 기초한 학문적 전통을 바탕으로 안동은 한국에서도 이름 높은 교육의 도시이자 현대 한국정신문화의 토대를 마련한 뿌리가 되었다고 하는데 도산서원 상덕사 전교당 농운정사 광명실 시사단 하회마을 양진당 충효당 영모각 부용대 병산서원 태사묘 학봉종택 이육사문학관한국국학진흥원은 관심 가져 볼만하다.
불교문화의 정수
안동은 한국정신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 불교문화의 중심지란다. 모든 존재는 절대적인 가치를 지키고 있으며 변화하고 생멸하는 모든 것들에 부처의 영원한 있다는 절대적 현실관을 바탕으로 찬란한 불교문화의 꽃을 피웠다고 한다. 안동지역 불교의 특성 자연을 그대로 불교의 이상사회로 승화시키고자 노력하는 데 있다. 이러한 특성은 자연물을 사찰구조로 이용한 것에서 잘 드러난다.
그래서 이 지역사람들은 세파에 시달리면서도 안동의 사찰 안동의 자연 속에서 깨달음을 얻어 마음의 평화로움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봉정사 대웅전 영산암 천동굴 개목사 광흥사 이천동석불상 용담사 봉황사 신세동7층석탑 조탑동5층석탑 동부동5층전탑등이 있다
특히 중식으로 육질이 좋고 신선한 닭과 감자 시금치 대파 등의 야채와 당면이 어우러져서 매콤하면서도 달콤하여 담백한 맛이 조화를 이뤄 적은 비용으로도 여러 사람이 정감을 나 눌수 있는 안동찜닭의 맛이 일품이었다.
차속에서 간식을 많이 먹었는데도 안동닭찜이 참 맛있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