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봉황이 알을 품은 봉황대를 지난 가을 자주 갔었지만 꼭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어 보육교실 마지막 날 위험해서 혼자 아이들을 데리고 가기는 힘들고 딸 예슬이에게 동참을 부탁했더니 쾌히 승낙을 해주었다.
누가 힘자랑이라도 할 요량으로 일부러 기암괴석을 한군데에 모아 놓은 것 같다. 울퉁불퉁하게 솟은 바위 봉우리와 그 사이 사이 소나무가 절묘하게 어우러진 이 특이한 지형으로 옛 부터 봉황이 알을 품은 비봉포란형(飛鳳抱卵形)이라 하여 봉황대라 불렀다고 한다.
한아이가 “아빠랑 여기 와서 삼겹살 구워 먹었는데요.”하며 좋아한다.
봉황대 주변에는 연못이 있다. 그런데 유독 대나무를 많이 심어 놓은 것은 대나무 열매만 먹고사는 봉황에게 먹이가 되라고 한 것이라고 한다. 마당바위 탕건바위 소금바위 말바위 소바위 개바위 등 많은 이야기 꺼리를 가지고 있지만 워낙 위험해서 꼭대기까지는 올라가보지 못하고 부모님과 같이 와 보라는 부탁을 하고 집으로 왔다. 밖에 나오면 좋아하는 아이들을 왜 어른들은 가둬놔야 하는지 ....

남원시 대산면 대곡리에 암각화는 호남내륙에서는 유일한 선사시대 암각화다. 세상에 알려진 것은 1991년 국사편찬위원회 김광 연구사가 처음으로 발견하여 학계에 보고한 것이라고 한다. 문자로 인류의 역사를 기록하기 이전인 선사시대 암각화는 봉황대 꼭대기쯤에 있다. 옛날 그곳은 그냥 동네 놀이터와 평상 같은 기능을 했을 뿐인데 전문가들에 의해 문화재로 지정이 됐다.
전문가들에 의하면 각각 3기의 문양을 갈아 파기로 새긴 암각화는 바위 두 곳의 수직면에 있다고 한다. 아래쪽 바위의 것은 심하게 닳아 알아보기가 쉽지 않지만 위쪽의 것은 문양의 윤곽을 알아보기 어렵지 않다고 한다. 기하학 문양의 이 그림에 대해서는 학자들마다 견해가 다르다. 방패형이라거나, 족장의 권위를 상징하는 돌검의 손잡이형(검파형)이라는 설도 있고, 사람이나 짐승의 얼굴을 그린 가면형이라고도 한다. 청동기시대 대나무마디 모양의 청동그릇과 유사하다고도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