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원의 탐관오리들은 견두산의 전설을 듣고 깨우쳐야.
지난(2008.6.14)남원전통문화재연구회원들과 지리산문화연구소 회원들은 수지면에 있는 견두산을 산행했다.
특히 견두산 정상 밑에 있는 견두산 도지정문화재인 마애불을 답사하면서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이 제대로 관리되지 못함에 안타까워했다. 견두산은 형태가 개머리를 닮았으며, 풍수지리학에서는 성난 개머리가 남원시내지역을 공격 하는 것 같아 개머리 산 이라고도 한다.

지난 2001.11.28일에 남원사회봉사단체협의회에서는 견두산을 호두산으로 지명변경을 남원시에 건의한 바도 있었다.
모든 사물에도 이름이 있듯이 지구상 어느 곳이나 사람이 살 때부터 지명이 있어 왔다고 한다. 특히 남원지역 지명에는 우리 조상들의 사고와 의지가 담겨진 곳도 있고 생활모습을 나타내는 것도 있어서 우리 문화 발전의 역사와 모습을 찾을 수 있는 귀중한 문화유산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또한 전설에 의하면 견두산에는 들개 떼들이 많은 민폐를 끼쳐서 민가는 많은 피해를 있었다고 한다. 이에 조선 정조때 두번이나 관찰사를 지낸 이석우 전라관찰사는 이를 막기 위한 비방으로 수지면 고정리와 남원 광한루에 호석을 설치하여 들개 떼들을 제압했는데 그 이후로는 들개 떼들에 의한 피해가 사라졌다고 한다. 또 견두산을 관리로 비유, 들개 떼들은 탐관오리들의 횡포로 보고 이에 개를 제압 하는 데는 호랑이 밖에 없다며 호석을 설치하자 관리들의 횡포가 없어졌다고 한다.

이석우 관찰사는 그시대 최고의 학문가이며 민본사상가이자 실천적 풍수지리학자로 그가 간접적으로 관리들의 실정과 폭정을 경고한 것이라 볼 수 있다. 호석은 중앙정부의 임금이 파견한 암행어사나 지방수령들을 지도 감독하는 도 관찰사임을 상징하여 원망과 실정을 남원부 관가에서 직접 항시 암행감시하겠다는 묵시적 경고 상징물이며 들개는 주민과 직접 접촉하여 횡포을 일삼는 지방관료들의 상징으로서 기근때 주린배를 채우려고 혈안이 되어 피해를 주고 있는 관료들에게남원관가와 떨어져서 직접 주민들과 접촉하여 생겨난 횡포를 먼 곳에서도 직접 알 수 있어 항시 감시 하겠다는 뜻이라 짐작해본다. 과거에는 남원광한루 옆에 호석거리가 있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하도 남원이 못살고 지도자들이 무능하니 호석거리를 만들어 보면 어떨까.어제는 지인께서 남원은 남원의 지도자가 문제라는 말씀을 하셨다. 오히려 남원은 수장이 없으면 시민들끼리 화합하고 단결하여 잘 살 수 있을 것 같다는 것이다.오죽해야 이런 발언을 하셨을까.


오늘날 우리 남원의 현실을 보자.
우리 남원은 정치적 소외와 중앙정치에 휩쓸려 주민의 의도와는 다른 결과 속에 살고 있다., 정치적 갈등과 권력의 남용, 이로 인한 지역경쟁력 악화, 빈부의 격차 심화, 젊은 인재들의 수용불능, 심화된 경쟁력으로 인한 주민의 양분화 현상과 갈등, 상대적 박탈감, 등이 시민의 화합과 소통 그리고 남원의 발전을 크게 저해하고 있다. 아무래도 우리남원의 풍토 탓은 아닌가 하여, 호석과 연관을 지어 보았다.
남원 시장은 시민들은 안중에도 없고 권력을 이용한 개인의 영달을 위하여 시민들을 분열시키고 있다. 그 예를 들라면 들수 있다.우리 남원 시민들은 분연히 일어나야 한다. 정유재란당시 민,관.군 일만 여명이 남원성을 지키다 초개와 같이 목숨을 바친 만인정신을 발휘 할 때다.
다시 호석거리도 만들고 현재 수지면 고정마을 어느 집안의 텃밭에 방치되어 있는 호석도 제자리에 설치해야 하며 견두산을 등산 코스로 만들어 기세가 등등한 개의 힘을 대한민국 아니 세계인들의 등산을 통해 그기를 억눌러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그러면 남원이 잘 살 것이다.

등산 할 때는 쉽게 했으나 하산 할 때는 코스가 길어 무척 힘들었다.
이번이 네 번째등산인데 갈 때마다 견두산의 경치는 다르다. 360도를 조망할 수 있는 만큼 많은 등산객들이 찾는 유명한 곳이기도 하다. 필자는 남원을 바라보며 안타까움을 느꼈다. 남원이 너무 너무 못사니 남원시의 모습이 초라하게 보일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