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을 시샘이라도 하듯 무척 쌀쌀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지리산문화연구소 회원들은 오늘(2007.3.31.토 .오후 2시)부터 지리산 주변의 역사문화현장을 찾아 나서기 시작이 했다.
첫 코스로 오늘은 주천면에 있는 파근사를 찾아가는데 김용근 선생님께서 길라잡이를 해주셨다.
도중에 길을 잘못 들어 한참동안 헤매다가 드디어 영제봉 8부 능선 정도에서 김재희 선생님께서 “파근사”다 라는 외침으로 힘든 고통을 덜어 주었다.
목도 마르고 지칠 대로 지쳤지만 힘들다는 표현을 할 수가 없었던 것은 ...........
파근사는 신라 진성여왕 때(서기 890년경) 이 마을 동쪽, 해발 1050m의 높은 산 영제봉(英帝峰)에 부흥사(富興寺)라는 큰 절이 세워졌다고 한다. 그 절은 고승과 선사들이 자주 드나들면서 휴양한 곳으로 지상낙원이며 마치 바다 속의 용궁(龍宮)과 같아 땅위의 용궁이라 했다고 하는데, 이로 인해 마을 이름이 용궁으로 지금의 용궁마을의 유래다. 그 뒤 1320년(고려말엽)에 채씨(蔡氏), 정씨(丁氏)를 비롯한 각 씨족들이 혼성으로 마을을 이루었고 1578년(선조11)에 서산 유씨(瑞山柳氏)가 들어와 살고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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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부흥사가 있었다는 절은 없고 지금은 파근사지(波根寺址)라는 절터의 자취만 남아있는데 산위에 파근이라는 평평한 땅이 바로 그 곳이다. 부흥사가 없어진 이유는 부흥사 중들의 작폐가 너무나도 심한지라 고승선사(高僧禪師)들의 미움을 받아 파근사라고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그런데도 하도 많은 사람들이 들끓어서 사람을 적게 오게 하려고 빈대를 잡아다 놓았는데 이 빈대가 너무 많이 번식하여 마침내는 사람이 있을 수 없게 되었고, 그로 인해 절도 일시에 망해 버렸다는 전설이 있다. 절의 자취를 알려주는 것으로 '중터' '너들검' '명대새' '왕답' 등 들이나 골짝 이름이 이를 증명해 주고 있다.
아쉬운 것은 준비부족으로 카메라 밧데리가 떨어져 파근사의 모습을 담아오지 못해 아쉽기만 했다.
오는 4월에 꽃 피고 새우는 날에 다시 찾아가 보리라.
신라 진성여왕 때(서기890년경) 남원시 주천면 용궁마을 동쪽, 해발 1050M의 높은산 영제봉 에 부흥사라는 큰절이 세워졌다. 그 절은 고승과 선사들이 자주 드나들면서 휴양한 곳으로 지상낙원이며 마치바닷속의 용궁과 같아 땅위의 용궁이라 했다고 하는데 이로 인해 마을이름이 용궁으로 되었다고 한다.(남원지/용성지/마을의 유래)
부흥사에서 서쪽으로 바라보이는 곳이 용궁마을이며, 용궁에는 바위사이와 돌담사이로 산수유나무가 자라고 있다. 산수유나무는 구불구불하고 키가 크지 않아 바람결에 흔들리면 바다속의 해초가 흐느적거리는 모습과 같다.
또한 봄에 산수유의 노란꽃이 피면 온 뜰이 노랗게 물들고 바위와 조화를 잘 이루어 바다 속의 해초가 흐늘거리는 모습과 거의 같다고 할 수 있다. 영제봉에서 바라다 보이는 풍경이 바다 속의 용궁의 모습처럼 아름다움을 지녔다하여 용궁이라 불리어 졌다고 한다.
예로부터 산수유는 요슬산통(腰膝酸痛:허리와 무릎이 시리고 아픈 증상)이 있는 경우에 쓰며 신양허(腎陽虛)로 인한 음위(陰痿:발기불능)나 조루 등에도 사용한다고 한다. 아마 수도에 열중하던 중들이 허리와 무릎의 시리고 아픈 증상에 도움이 되고자 즐겨 먹었던 것 같다. 그러나 그것이 오히려 화근이 되어 넘치는 양기를 주체하지 못하여 중들의 작폐가 심하게 되자 고승선사들의 미움을 받아 파근사라 이름이 붙여 줬다고 한다.(주천면 마을의유래 참고)
후세에 파근(波根)터나 파근사(波根寺)터라고 불리어지는 것도 중들이 타락하여 불교의 근간이 흔들렸다하여 불심에 더욱 증진하란 뜻에서 불교의 마와 파순(波旬)의 이름을 딴 파근사(波根寺)라 불리어 지고 있는 것을 보면 산수유를 즐겨 복용하였다는 일과 무관치 않음을 알 수 있을 듯하다.
불교에서 마왕파순은 “중생들을 욕망에 사로잡히게 하고 세상을 어둡게 어지럽히는 마왕”이다.
석가모니가 수행 시 마왕파순의 유혹을 뿌리친 이야기인 “파순과 세딸의 이야기.....”를 살펴보자..
석가모니 부처님이 보리수 나무아래에서 정각을 이루시려 할 때 마왕 파순이 자기의 세딸들을 싯다르타에게 보내 유혹했다고 전 한다
마왕 파순의 세 딸들은 바로 아름다운 비단옷으로 갈아입고 금/은으로 머리를 장식하였다. 궁녀들은 앞뒤로 보개를 들고 그들을 따랐다. 무녀들은 기악을 연주하며 춤을 추었다. 그 행렬은 십 리에 이어질 것 같았다.
하늘에서는 꽃비가 쏟아졌다. 그들은 꽃비를 맞으며 태자가 정각 중에 있는 보리수 아래에 이르렀다. 궁녀들은 길상좌에 앉아 묵상중인 싯다르타 태자를 에워쌌다. 그리고 세 딸들은 춤을 추듯이 태자 앞으로 다가섰다.
'세존, 사람이 이 세상에 살면 얼마나 오래 살겠어요? 영화를 버리고 고행을 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대답해 줄 수 있는지요? 보시지요, 저와 같은 미색은 이 세상엔 없나이다. 세존과 금슬을 맺어 영화를 누리며 살게 해주소서. 간절히 바라나이다.'
첫째 딸이 말하였다. 그리고 보리수 열매를 따 태자에게 던졌다.
'세상에 깨달을 것이 무엇이오니까? 아름다운 여자를 사랑할 줄 모른다면 더 무엇을 깨닫겠나이까? 그렇다면 깨달은들 무슨 소용이 있겠나이까? 어버이를 버리고 하계에 내려왔나이다. 원하옵건대 부부의 연을 맺어 주옵소서.'
보리수 잎을 훑어 뿌렸다.
'조용히 하여라. 나는 지금 정각을 하고자 하느니라. 정각을 하여 너희들과 같은 어린 중생들을 구원하고자 하니, 방해하지 말고 물러들 가거라.' 싯다르타가 말했다.
'세존, 왕위까지 버리시고 홀로 산중에 사시다니 얼마나 고적하시나이까? 소녀가 찾아온 것은 언니와 다르옵니다. 이곳에 있게 해 주시면 향불을 피우고 물을 길어 오고 청소를 해 드리도록 하겠나이다.'
둘째 딸이 말하였다. 첫째 딸이 춤을 추며 태자를 감싸고돌았다. 둘째 딸은 그 반대로 돌아가며 춤을 추었다. 치마의 끝자락을 잡고 나비처럼 너울너울 춤을 추었다.
'소녀는 비단 치마를 즐겨 입나이다. 부드러운 살결과 같나이다. 맹세컨대 부부의 연을 원하는 것이 아니옵니다. 다만 이 고운 손으로 금상을 청소해 드리고 싶을 따름입니다.'
'나는 지금 무상으로 골몰하느니라. 앉아 있는 이 자리는 본래 맑고 깨끗하다. 누가 너로 하여 금상을 쓸라고 했더란 말이냐? 어서 돌아 가렸다.' 싯다르타가 조용히 말하였다.
'세존, 소녀는 아직 어립니다. 이만하면 단정하고, 아름답지 않나이까? 제석천왕이 저를 신부로 맞이하려고 했으나 지위가 낮아 부모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셨나이다. 그런데 정반왕의 태자일 뿐더러 문무를 겸비하고 있으시니……. 야수보다 못할 것이 없지 않나이까? 그러나 감히 세존의 아내가 되기를 바랄 수는 없는 줄 아옵니다. 옆에서 시중을 들 수 있도록 해 주시기를 바랄 뿐입니다.'
셋째 딸의 말이었다. 순간 꽃잎이 쏟아져 내렸다. 그녀는 춤을 추며 노래를 불렀다.
나이는 이제 열다섯 가슴이 두근거릴 때.
방금 물속에서 피어난 한 송이 부용인 것을
모른 체 하시면
정각의 눈이 멀 것......
그녀의 청아한 목소리가 바람을 타고 날렸다.
'더 이상 방해하지 말라. 서둘러 상계로 돌아 가렸다.'
싯다르타는 근엄하게 말하였다.
'세존, 정각중에 세존은 교만하기 이를 데 없나이다. 자비심도 없이 정각을 할 수 있나이까? 소녀의 꽃다운 마음을 모르는데 어찌 어린 인생을 구원할 수 있겠나이까?'
셋째 딸이 따지듯 말하였다.
'나를 능멸할 마음이면 지옥 불에 떨어질 수 있느니라. 후회하지 말고 서둘러 돌아가거라.'
싯다르타는 손을 내저으며 말하였다.
꽃비가 쏟아지니 향기가 바람에 날리네.
꽃비에 목욕을 하면 여인을 사랑하게 된다는데.
싫다면 죄 될 밖에.
세 딸은 한 목소리로 합창을 하였다. 첫째 딸은 윗옷을 벗어 바람에 날리듯 싯다르타를 향하여 던졌다. 그리고 S자형의 춤을 추었다.
'세존, 꽃비가 향기롭지 않나요? 향기를 모르시나요, 못 맡으시나요? 이런 것 저런 것 다 모르시면 어떻게 큰 도를 이루실 수 있나요? 그러고도 큰 도를 이루시다니 거짓말입니다.'
둘째 딸이 말하였다. 그녀는 하나하나 옷을 벗어 던졌다.
'그래요. 큰 도를 이룬다는 것은 거짓말입니다. 여색과 사랑도 모르는데 어떻게 중생을 구원하겠어요?'
셋째 딸은 조롱하듯 말하였다. 그리고 옷을 모두 벗어 버리더니 빨간색의 비단천을 휘날리며 회오리바람이 돌듯이 호선무를 추기 시작하였다.
'서둘러 돌아가라고 하지 않더냐? 더 이상 소란을 피우면 용서하지 않겠다.'
싯다르타는 눈을 감은 채 노기를 띠며 말하였다.
'오히려 소녀가 용서할 수 없나이다. 사랑과 자비도 모르는 사람은 죄인이 아니옵니까?
죄인을 누가 용서할 수 있겠나이까?'
셋째 딸은 비단천을 내던지며 말하였다.
'최후의 경고이니 그리 알아라. 서둘러 돌아가라.'
싯다르타는 노기를 가라앉히며 말하였다.
'세존, 눈을 뜨시옵소서. 뜬 듯도 하고 감은 듯도 하나이다. 정각의 눈을 크게 뜨시고 세상을 사랑으로 바라보소서.' 둘째 딸이 말하였다. 그리고 첫째 딸은 무릎을 꿇고 싯다르타의 발에 입 맞추려 하였다.
'내 몸에 손을 대지 마라. 재앙을 면하지 못할 것이다.' 싯다르타가 말하였다. 그러나 첫째 딸은 엎드려 발에 입을 맞추었다. 순간 싯다르타는 황금빛 팔을 뻗어 마왕의 딸들을 하나하나 가리키며 말하였다.
그들은 갑자기 늙기 시작하였다. 얼굴이 숯 검댕이 같이 검게 변하고 두 눈은 사발처럼 함몰하였다. 머리통은 썩은 호박처럼 쭈그러들고 까만 머리는 노랗게 사그라졌다. 이빨은 새까맣게 썩고, 눈썹은 하얗게 시들고, 입술은 파랗게 늘어졌다. 목은 마른 국수 가락처럼, 허리는 굽은 낫처럼, 다리는 장대처럼 변했다.
온몸에 감고 있던 비단은 낡은 무명으로 너덜너덜해졌다. 머리의 긴 옥비녀가 구불구불 움직이기 시작하더니, 한 무더기 뱀으로 변하여 몸속으로 기어 들어갔다.
마왕의 세 딸들은 서로 얼굴을 바라보고는 대경실색 통곡하였다. 하늘의 잘못이 아니라 스스로 초래한 재앙이라고 여겼다.
'세존, 자비를 베풀어 용서해 주옵소서. 정각을 방해한 죄가 너무 크나이다. 한번만 용서해 주옵소서.' 그들은 무릎을 꿇고 줄줄이 참회의 눈물을 쏟았다. 뱀은 여전히 갈라진 혀를 날름대며 어지럽게 기어 다녔다.
싯다르타는 조용히 생각에 잠겼다. 그들이 흘리는 참회의 눈물에 자비로써 용서를 하였다.
'알았으니, 그만 일어 나거라. 그리고 돌아가거라.'
싯다르타는 목에 걸린 천을 걷어 셋째 딸에게 건네주며 말하였다. 순간 그들의 추악한 몰골은 본래의 아름다운 모습으로 되돌아왔다.
마왕의 세 딸들은 다시 한번 대경실색하고는 다시 제 모습을 찾은 데 대해 기쁨의 미소를 지었다. '세존, 자비하신 세존, 미처 몰라보았나이다. 정각을 경하하옵니다. 용서하옵시고 절 받으시옵소서.' 마왕의 세 딸은 싯다르타에게 세 번 큰절을 올렸다.
'만수무강하시기 바라나이다.'
그리고 그들은 궁녀들을 거두어 하늘로 돌아갔다.
마왕 파순은 성문 밖에까지 나와 세 딸을 맞이하였다. 길 양쪽으로 마군이 도열하였다. 군악에 맞추어 우렁찬 합창이 울려 퍼졌다.
'세존은 이미 큰 도를 이루었습니다. 부왕이시여, 다시는 세존에게 대항할 생각일랑 버리시옵소서. 그 생각을 버리지 않으시면 나라에 큰 재앙을 면하지 못할 것이옵니다.'
세 딸들은 그동안 그들이 겪었던 일을 자세히 보고하였다.
그 이후 마왕 파순은 싯다르타 태자의 정각에 대하여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또한 파드마란 말이 있다. 파드마의 파자를 따서 파근사라고 하였는지도 모른다. 파마드는 연꽃을 말한다. 파근사라 함은 불교에서 파순이나 파마드와 같이 물결파자를 쓰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파근사라고 고승들이 이름을 붙여준 것은 마왕파순이 석가를 유혹하듯이 산수유를 복용하고 양기를 주체하지 못하는 중들에게 깨우침을 주고자 파근사라는 명칭을 내린 듯하다.
이러한 기록이나 전래온 이야기를 볼 때 용궁의 산수유는 천년이 넘는 역사를 가지고 있다.
옛 부흥사의 스님들이 부흥사에서 본 용궁은 바위사이로 혹은 돌무덤사이로 산수유의 구불구불거리는 나무들이 바람결에 흔들리는 모습이 바다 속의 산호나 해초가 흐늘거리는 모습과 같아서 바다 속의 용궁과 같다고 했다.
그후 오늘에 이르기 까지 용궁마을이라 불리지만, 용궁마을의 산수유는 천년이 넘는 역 사속에 용궁마을을 만들었고, 그리고 이 산수유가 한약재로 이용되어 옛 장길을 따라 주천 진평전마을로 퍼졌고, 산 넘고 달궁이나 뱀사골부근과 가까이 고개 너머 동네인 전남 구례군 산동면 수기리(수락폭포마을)를 거쳐 주변과 산동으로 전해져 오늘날 산동마을에 확산되기에 이르렀다.
조선시대나 그 이후 일제시대 까지만 해도 구례산동이 남원권 이었고 구례산동의 산수유나 주변의 산수유가 전국적으로 알리어 졌으며, 특히 주천 용궁마을의 산수유는 그중에서도 최고급으로 취급되고, 꽃 몽우리가 타 지역보다 크고 꽃 색깔도 더욱 노란편이다. 그러한 관계들을 보면 산수유는 주천면 용궁마을과 장안리 부근의 산수유가 산 넘고 고개 너머인 수기리나 뱀사골, 진평전 등으로 번져갔다고 볼 수 있으며, 옛 부흥사의 스님들이 산수유를 차나 음료로 많은 양을 즐긴 나머지 겨 그에 따른 부작용이 오늘날 파근사 터란 말이 전해졌다고 볼 수 있다.
오늘에 와서 관광산업의 육성으로 산수유 꽃 축제를 하고 볼거리가 필요하자 산수유가 니꺼니 내꺼니 하지만, 구례 산동의 산수유 역사가 500년에 불과 하다면 천년의 역사를 가진 용궁의 산수유와 관련한 여러 정황이 더 명확하고 산수유원조에 가까워지는 건 아닌지.../남원투데이 편집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