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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론 산이 되고 싶고
때론 물이 되고 싶고
때론 구름이 되어 아무에게 간섭받지 않고 어디론지 떠돌아 다니며 인생무상을 느끼고
싶다.
하염없이 비가 내린다.어찌보면 가을을 재촉한 비 인지도 모른다.희망을 생각하게 하는 봄비보다 쓸쓸한 가을을 생각하게 하는 가을비는
쇠외되어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그려주며 마음을 울적하게 만드는 오후다.
평소 아껴주시고 챙겨주신 김선생님과 남원투데이식구들은 나의
기분을 이해하신 듯 대자연을 찾아 나가자고하셨다.가고 싶은 곳은 비구니 스님들이 계시고 고려 말 삼은 중 한분이신 목은 이색선생이 동문선에
표현한 남원시 산동면 식련리에 있는 승련사다.
승련사는 홍혜국사가 주석한 뒤 1361년(공민왕10년)에 송광사 16국사 중 한분이신 각진
국사의 제자인 졸암선사가 사명을 "승련사"로 고치시고 37년에 걸쳐 대웅전.요사채.선실등 111칸의 대중창 불사를 이룩하고 59대 구곡 각운
선사께서 선풍을 크게 떨치신 도량으로 지금은 40여명의 선객 스님들이 불철주야 수행 정진하고 있는 전통사찰이자 선원이라고 주지스님께서 설명해
주셨다.

승련사를 가는 길목은 작은 방죽이 하나있고 도로가 좁기는 했지만 우리 일행은 차로 갈수 있음에 감사하며 빗속을
달렸다.
비가 왔지만 수정같이 맑은 계곡물은 오염되지 않는 남원의 대자연을 확인시켰다.특히 승련사가 있는 만행산은 남원시의
종조산(宗祖山)으로 천왕봉의 정기가 남원시에 가득 뻗어 내린산이며 남원시민의 식수원인 요천수의 근원이다.요즈음 만행산에 석산이 개발되어 스님께서
이를 해결하기 위해 고민이 많다고 걱정을 하고 있는 모습에 마음이 아프기도 했다.
승련사가 있는 마을은 원래 남원군(南原郡)
산동면 식련리(植蓮里) 지역으로 승련(勝蓮)이라 했는데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이곡리(梨谷里) 일부를 병합하여 식련리라 하였다고
한다.그러나 이 마을의 본래 이름은 승련이었다. 마을 동쪽에 창건 연대를 알 수 없는 금강사라는 암자를 고려말 1361년 졸암대사가 중창한
승련사는 일하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마을, 즉 사하촌으로 형성되었다. 마을 이름이 승련인 것은 마을이 사하촌인 관계로 마을 이름도 승련이라
하였다고 하는 설과 승련사의 연꽃을 가져다 심었다고 해서 승련이라 했다는 설, 그리고 연화봉의 이름을 가진 마을 뒷산의 이름에서 유래했다는 설
등 세 가지가 분분한데 동국여지승람이나 용성지(龍城誌)의 기록으로 미루어 보면 절과 관련하여 생긴 마을임은 분명하다. 그래서인지 마을 사람들은
부처의 나라라고 생각한다고 한다.이 마을에 사람이 들어와 살기 시작한 것은 앞서 언급한대로 창건연대를 알 수 없는 금강사를 고려말 중창한
승련사라는 절의 사하촌으로 형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 후 절이 망해 버린 뒤 1490년경 김해 김씨(金海金氏)가 터를 잡고 정착했다고 한다.
또한 이 마을 주변에는 고분(古墳)의 흔적이 남아 있으며, 삼한시대에 쌓았다는 성산산성은 전쟁 때 군량미를 저장하였고 동학농민 봉기 때
남원성을 점령한 김개남 농민군이 운봉을 점령하기 위해 이곳을 동학군의 집결지로 사용했다.식련 마을에서는 지금도 해마다 당산제를 모신다. 새마을
사업 이전까지는 모든 격식을 갖추어 지냈으나 그 이후로 많이 간소해 졌으며.마을 앞엔 할아버지 당산이 있고, 마을 안쪽에 할머니 당산이 위치하고
있는데 음력 정월 초사흘 날 새벽 3시 정도에 할아버지 당산에서 제사를 지낸 후, 다시 할머니 당산에서 제를 지낸다고 하는데 다른 마을과는 달리
새벽 일찍 제를 지내는 이유는 궂은 일을 한 사람들이 올까봐 그것을 피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제관은 특별한 절차없이 이장이 맡고 있는데, 일단
제관으로 선정이 되면 모든 언행을 조심해야 한다고 한다. 또, 직접 장을 봐야 하고 제물을 구입할 때, 가격을 깎으면 절대 안된다고 한다..
음식은 건어물과 과일을 꼭 올려 놓아야 하며, 생선은 절대 올려놓지 않았고 비용은 마을경비로 충당했다고 한다..
그 후 승련사는 조선중기
이후에 폐허가 되었다고한다.그러나 1990년경에 승련사의 옛 터에 작은 절을 짓고 이름도 옛 이름대로 승련사라 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이러한
승련사에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전설이 있다.

승련사 뒷편 산에는 쪼개진 바위가 있는데 이 바위에는 여러가지 전설이 있다고 한다.
스님의 말씀에 의하면 승련사가 망하게 된 이유를 " 마을 주민 황○○ 씨에 따르면 이 바위가 갈라지면서 금송아지, 황새, 빈대가 나왔는데 특히,
빈대가 나와서 절이 망했다"는 전설이 있고, 또 "바위가 갈라질 때 금송아지가 튀어 나가 절이 망했다는 전설도 있으며 또 다른 전설은 이 절의
주지스님의 증언으로 승련사가 창건된 후 절이 번창해지자 승려들이 불도에 정진하기보다는 호위호식하고 게을러져 바위가 갈라졌다는 설과 동네 사람들과
스님들의 사이가 좋지 않아 바위가 갈라졌다는 설이 있는데 바위가 갈라질 때 새 3마리가 튀어나와 한 마리는 부절리 창덕암으로 날아가고, 한
마리는 대상리 귀정사로, 또 한 마리는 요천의 청룡사로 날아갔다는 전설이 있다고 한다.새 세 마리는 승련사를 지켜주는 수호신으로 승련사 승려들이
게을러지고 자만에 빠져 계도해야 할 중생들과 재물다툼으로 불법의 본질과 멀어지는 행동을 경고하는 이적으로 이들의 행동을 보다 못한 부처님이 절을
떠나버려 승련사가 망했다는 주위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한편 이 바위에는 "육자다라니"라고 부르는 명문 즉, "부처님께 귀의하여
평안을 얻는다"는 뜻의 범어인"옴마니반데홈"이라는 문자와 불법을 상징하는 여러 가지 무늬가 조각되어 있어 이 승련사가 예사의 사찰이 아닌
고승선사가 수도하였던 도량이었음을 알려주고 있음을 알았다..
오늘은 승련사를 통하여 동행하신 김선생님으로부터 " 십우도 또는 심우도"에
대한 설명으로 큰 깨달음을 얻었고 "참선이 창보다도 더 큰 힘이 있음"을 깨우쳐 주신 하루였다.그동안 향토문화연구회에서 많은 사찰과 유적지를
다녀 보았지만 기행 정도였지 별다른 의미를 못느꼈는데 오늘는 몇번을 다녀온 것 보다 더 많은 것을 느꼈다 .그칠줄 모르는 폭우속에서 예년 같으면
귀가길이 걱정이 되는데 아무 두려움도 걱정도 없었다.
몇년전 상수도 보호지역에 대형양계장신축을 신축한다기에 반대운동을 하며 뵈었던 스님의
모습이 오늘따라 더욱더 정스러웠다.승련사를 다녀오면서 나는 몸과 마음과 생각을 비우기로 했다.그리고 깨끗한 것으로 하나하나 다시 채울 것을
다짐하면서 하늘을 보고 땅을 보고 대자연을 바라면서.......
* 양경님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7-09-10 21: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