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주항쟁 50주년을 기억하고 찾아간 김주열 열사의 묘소는 공사 중 추모각은 자물쇠로 꼭꼭
남원의 아들! 50년 전 김주열열사가 최루탄이 박힌 처참한 모습으로 마산 앞바다에 떠오른 것이 한 낚시꾼에 의해 발견 되던 날
오늘(2010.04.11.11시)이 50년 전 김주열열사가 이승만 정권의 부정선거에 항거하다 경찰이 쏜 최루탄에 맞아 생사를 모르고 있던 중 마산앞바다에서 눈에 최루탄이 박힌 채 죽은 지 27일 만에 시신이 떠올라 4.19의 도화선이 되던 날 이다.
청운지역아동센터 아이들과 그날을 기념하기 위해 남원시 금지면 옹정리에 있는 김주열열사의 묘소와 추모각을 찾았지만 추모각은 꼭꼭 문이 잠겨 져 있고 묘소는 성역화사업을 하는지 포크레인이 작업 중 인 것을 보고 후세를 사는 사람으로서 또 아이들에게 애국심을 키워주고 싶은 욕심에 찾아간 어른으로서 참 창피 했다.
또한 벚꽃 축제를 하고 있는 곳은 많은 사람들이 장사진을 이루었지만 민주항쟁 50주년을 기억하고 찾아간 김주열 열사의 모습은 초라하기 그지 없었다.






1943. 10. 7 전북 남원~1960. 3. 15 경남 마산.
이승만 정권의 붕괴와 1960년 4·19혁명의 직접적 도화선이 된 인물.
1960년 3월 15일 마산에서 이승만정권의 부정선거에 항의하는 시민·학생들로 이루어진 평화적 시위대가 이를 강제 해산시키려는 경찰에 맞서 격렬한 투석전을 벌인 '마산데모사건'이 발생했다. 경찰의 무차별 발포와 체포·구금으로 희생자가 속출하자, 격분한 시위대는 남성파출소·북마산파출소를 비롯한 경찰관서, 자유당 소속 국회의원 및 경찰서장 자택 등을 습격했다. 이 과정에서 80여 명의 사상자(7명 사망)가 발생했으며, 주모자로 구속된 26명은 공산주의자라는 누명을 쓰고 혹독한 고문을 받았다.
당시 17세였던 그는 이 시위에 참가한 후 행방 불명 되었는데, 4월 11일 그의 시체가 왼쪽 눈에 최루탄이 박힌 처참한 모습으로 마산 앞바다에 떠오른 것이 한 낚시꾼에 의해 발견되었다. 이에 마산의 모든 시민이 규탄·궐기하여 연 3일에 걸친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그의 시체를 검시할 때 참가한 한 외과의사는, "사인(死因)은 미제(美製) 최루탄(길이 17㎝, 폭 3㎝)이 안부(眼部)에 박힌 것"이라고 진술했다. 그의 시신은 1960년 4월 13일 밤 11시 마산을 출발하여 14일 아침 고향인 전북 남원군 금지면 옹정리에 도착하여 마을 선산에 묻혔다. 그는 죽기 하루 전인 3월 14일 마산상업고등학교에 합격했다. 성격은 차분했으며, 책임감이 강하고 영웅전을 즐겨 읽었다고 한다. 그의 죽음은 제2차 마산시위와 이승만 정권을 붕괴시킨 4·19혁명의 도화선이 되었다(브르태니커 백과 사전내용)
* 양경님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10-05-02 18: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