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이들과 사계정사와 복숭아꽃을 찾아
복숭아꽃 하면 중국 진(晉)나라 시인 도연명(陶淵明, 365~427)이 쓴 「도화원기(桃花園記)」에 한 어부가 고기를 잡다 길을 잃었는데, 물위로 복숭아꽃잎이 떠 내려와 그 복숭아꽃잎을 따라 올라가니 사방이 복숭아꽃으로 덮인 환상적인 마을(무릉도원:武陵桃源)을 만났다는 기록이 있다. 이는 복숭아꽃은 이상적인 세계에 피어 있는 꽃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 복숭아는 신선화(神仙花)로 먹으면 불로장생을 누릴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민화에서 복숭아꽃은 그 모습이 매우 화사하고 아름다워 미인에 비유되는데, 신라시대 설화인 ‘도화녀(桃花女)’의 설화에서 임금이 첫눈에 반할 정도의 미모를 지닌 여인을 ‘복숭아꽃 여인(桃花女)’이라 이름 붙인 것에서도 알 수 있다.
복숭아꽃과 쏘가리를 함께 그린 그림은 중국 당나라 시인 ‘장지화(張志和)’가 지은 ‘어부가(漁夫歌)’의 한 구절인 ‘도화유슈궐어비(桃花流水闕魚肥)’을 표현한 것으로 ‘서쪽 산에는 백로가 날고 복숭아꽃이 물 위로 흘러갈 때, 쏘가리는 살찐다.’라는 글귀를 그림으로 형상화 한 것이다.
사계정사를 갈 적마다 복숭아꽃 필 때 꼭 한번 가보고 싶었는데 요즈음 사방을 둘러보면 시야에 도화가 .....
도화(桃花)! 복숭아꽃! 하면 생각나는 것이 무릉도원!
선비들이 글을 읽으며 대 자연과 벗 삼아 살던 곳!
날씨도 화창해서 아이들과 들로 나가고 싶어 찾은 곳이 남원시 주생면 영천리에 있는 사계정사였다.
사계정사는 남양방씨의 선조 방응현(房應賢)이 세운 정자이다. 조선 중기의 정자로 정자 옆에 흐르는 냇물을 모래내라고 한다. 사계(沙溪: 모래내)는 이로부터 유래한 이름이다. 방응현은 벼슬에 뜻을 두지 않고 학문을 닦으면서 일생을 이곳에서 보냈다.
사계정사의 변천을 보면 2000년 11월 17일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166호로 지정되었다. 임진왜란 때 불에 타버린 이후 후손들이 여러 번 고쳐지었다. 방응현의 손자 방원진(房元震)이 1609년에 다시 지은 후 그 모습을 「사계정사도(沙溪精舍圖)」라는 그림으로 표현하였다.
사계정사의 형태를 보면 정면 3칸, 측면 2칸의 기와로 된 팔작지붕으로 되어 있으며, 화강암으로 2벌대 기단을 쌓은 후 역시 화강암으로 다소 높은주춧돌을 놓고 두리기둥을 세웠다. 호남 지방의 일반적인 정자 양식을 따라 가운데 한 칸만 방으로 처리하였을 뿐 사방에 마루를 깔고 평난간을 둘렀다. 방 4면에 모두 쌍여닫이 띠살문을 달았다. 건물 주위에는 돌과 시멘트로 담을 쌓아 둘렀다.
정자 안에는 방응현이 평소 가깝게 지냈던 이항(李恒), 노수신(盧守愼), 조식(曺植), 노진 등의 글이 여러 편 걸려 있다. 2001년 현재 남양방씨 사계공파 종중에서 소유 및 관리하고 있다. 최근에 세운 것으로 보여 지는 ‘사계방선생유허중수비’가 석비(石碑)로 건물 옆에 있다. 비교적 훼손이 없는 상태이다.
아이들과 둘러본 후 준비해간 간식을 먹고 아주 유쾌한 시간을 보내고 돌아온 시간은 거의 일 곱 시가 가까워졌다.
[참고문헌]
• 『남원지』(남원지편찬위원회, 1992)
• 오병무 외 역, 『용성지』(남원문화원, 1995)
• 이석홍, 『남원의 문화유산』(남원문화원, 2001)
• 홍승재, 『한국의 건축문화재』8-전북편-(기문당, 2005)-관련항목(방응현/유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