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성이 단두대에 오를 권리가 있다면 의정(議政) 단상에 오를 권리도 있다!”프랑스혁명의 와중에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진 여성 연극인 올랭프 드 구주. ‘여성인권선언’을 작성한 그는 “자신의 성별(性別)에 적합한 덕성을 잃어버린 사람”으로 비난받았다. 시민혁명과 공화정의 나라 프랑스에서 여성이 선거권을 얻게 된 것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기 직전인 1944년. 바스티유 감옥이 무너진 지 155년 만이다. 프랑스혁명의 인권선언은 단지 ‘남성권’의 선언이었고, ‘박애(博愛)’의 이념은 자매를 제외한 형제애였던가. 정치(政治)는 오랫동안 남성의 전유물이었다. 여성에겐 문턱이 높았다.
▷ 민주주의의 기원은 고대 그리스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여성참정권의 역사는 겨우 100년을 헤아린다. 스위스 여성들은 투표권을 행사하기 위해 1971년까지 기다렸다.여성의 한 표는 거저 쥐어지지 않았다. ‘피의 투쟁’을 거쳤다. 어쩌면 인종과 신분의 벽보다 더 험하고 거친 차별의 강을 건너야 했다.
▷미국에서 여성 참정권을 규정한 연방수정헌법 19조가 통과된 것은 1920년. 뉴욕주 세니커폴스에서 세계 최초의 여권(女權)집회가 열린 지 72년 만이다.
▷빅토리아 시대에 의회민주주의의 꽃을 피웠던 영국에서도 민주주의는 오랜 기간 ‘남성들의 잔치’였다. 1903년 여성사회정치연합(WSPU)을 결성한 영국 여성들의 참정권운동은 과격했다. 우체통에 불을 지르고 공공건물의 유리창을 깨부수는가 하면 보수 정치인을 습격했다. 그러던 중 제1차 세계대전이 터지자 여성들은 ‘전시노동’에 동원됐고 그 보상(?)으로 가까스로 참정권을 부여받았다.
▷일부 아랍국가에선 지금도 정치는 금녀(禁女)의 땅이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월경이 정치적 판단을 흐릴 수 있다”며 여성을 배척하고 있다 하니.영국의회 사상 최초의 여성의원인 애스터는 말했다. “최고의 남성이 승리하는 게 아니라 최선의 정책이 승리할 뿐이다!”그러나 ‘최선의 정책’이 ‘최고의 여성’일 땐 망설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