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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행사]

2008년 남원문화대학 제3주 "남원의 역사"에대한 홍승기전서강대교수님의 강의를....

글쓴이 : 양경님 날짜 : 2008-09-22 (월) 05:42 조회 : 2751




오늘(2008.9.20.토 오후2시. 사봉) “남원의 역사”란 주제 속에 2008년 남원문화대학 제3주의 강의와 답사가 있는 날이었다. 지난 20007년도 경주권문화답사후 한국사에서 고려사를 전공하신( 전)서강대 교수 이신 홍승기 교수님의 남원의 역사에 대한 강의를 관심 있게 들었던 기억이 난다.
그때 강의 내용을 더듬어 보면 내가 나 인 것을 증명해야 하는 정체성. 즉 남원이 남원인 것을 증명해야 하는 정체성이다. 우리는 누구나 한 시대에 주체성을 잃었다가 부분적인 주권을 찾기도 한다. 영국의 역사학자 홉스바움은 모든 전통은 재창조 되는 것이라고 하였다.”며 과거의 문화와 역사도 모두가 현대인에 의해서 재인식/ 재평가/ 재구성 되고 있는 현실에서 남원의 역사와 문화도 재인식/ 재평가 /재구성 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며 독자적인 생각으로 일정한 사실에 의한 정확하고도 체계적인 설명으로 용어나 개념에 대하여 자세한 설명을 하시며 남원의 역사를 사진 찍듯이 그대로 밝혀내는 것이 과거의 역사였다면 현재는 관점에 따라 유기체론적 시각으로 보아야 함을 강조 하셨던 홍교수님의 강의에 감명을 받았었기에 이번 강의도 무척 기다려졌다.

오늘강의는 지배계급이 자신의 이익을 제도적으로 확보하기 위하여 국가를 만들었다면 국가가 만들어진 때부터 시작하여 오늘에 이르기까지를 넓게 조망하면서 남원의 역사를 개관하여 보는 중요한 시간이었다. 특히 남원인의 주체적인 입장에서 그들의 정체성을 역사적으로 이해하는데 논의의 초점이었다. 남원은 오늘날 전북의 지방행정 구역에 있는 한 지방 도시이다. 조선시대에도 또 고려시대에도 남원은 지방의 한 행정단위였다. 남원의 역사가 지방사의 입장에서 설명되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지방은 중앙을 전제로 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남원의 지방사는 중앙과의 밀접한 연관 속에서 설명되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지방인이 언제나 중앙인과 관련을 맺으며 살아왔다고 할 수는 없다. 그들의 하루하루의 삶에서 더 중요한 것은 같은 지역에 사는 지역민들이었다. 그들의 정체성은 주로 같은 지역민들과의 관계 속에서 찾아지고 확인되었다. 홍교수님께서는 남원인의 정체성에 더 관심을 가지고 남원의 역사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지방사보다는 지역사의 관점에 더 큰 관심을 보이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강조하셨다.

따라서 남원은 남원 역사에 대한 발상의 대전환 필요한 때다. 정체성 없는 정신세계의 공황속의 소경시대를 다시 맞을 수는 없다. 오늘 강의에서처럼 지방사 중심의 역사를 지역사 중심으로 재해석해야한다. 그리고 남원이 정치적 자율성과 문화적 독자성을 확보해야한다. 특히 남원은 현재, 경제문제가 절실하다. 남원이 잘사는 길은 지도자와 시민들은 발상의 대전환을 통하여 실질적이고 실용적이며, 합리적인 행동으로 남원의 독특한 문화를 개발하여 경제와 연결해야한다.

남원은 기원 전 8세기경 지금부터 대략 3천 년 전 청동기를 사용하는 부족이 남원에 등장 하였다고 한다. 그 이름은 고룡국으로 지금의 대강면 어딘가에 있었을 것으로 생각되며 유적 유물을 통한 근거로 지석묘를 통해 짐작할 수 있다고 한다. 특히 이백면 초동리 야산의 고분군과 야영 소재지의 뒷산에 포열하여 있는 수 십 기의 고분군과 궤를 같이하고 있는 고분들을 통해 고룡국이 연맹왕국 단계에 와서 대강에서 지금의 남원시 쪽으로 국읍을 옮기고 고룡국이 마한이었지만 이웃 운봉의 아막국의 변한 내지 가야문화의 영향도 받아 들였음을 알 수 있었다. 특히 5-6세기까지는 고룡의 독립성 즉 남원의 정체성이 유지되었음을 볼 수 있었다.


특히 이번강의는 남원의 역사를 8단계로 구분하여 설명해주시는데 이해도 빨랐다. 또 한 신라시대의 소경은 내용을 알고 보니 남원인으로서 수치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신라소경은 정복자의 입장에서는, 피정복지의 토착적/주변적/백제적 잔재를 깔끔히 청산하고 신라/경주로 거듭나는 것, 그에 대한 다짐, 그에 대한 충성, 그에 대한 자긍심, 그 상징일 뿐이었다. 훗날 제국주의 열강의 식민지배도 비슷한 방식에 입각하고 있었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남원인들의 정신세계는 공황의 상태였을 것이다.

신라가 소경을 두면서 더 크게 감안한 것은 남원 문화의 파괴였다. 신라가 결코 인정할 수 없는 것은 그들의 문화였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남원의 문화란 주변의 문화요 한계의 문화였을 뿐이다. 그 문화의 한계성/주변성은 철저하게 부정되어야 하였다. 그에 대신하여 같은 지역에 핵심의 문화, 경주의 문화, 신라의 문화가 두어져야 하였다. 이것이 남원에 소경이 설치된 궁극적인 이유였다.
남원인의 종래 정체성을 지탱하여 줄 모든 문화적 근거는 근절되었다. 백제적인 것, 마한적인 것, 고룡적인 것, 모두는 철저히 배격되었다. 그러한 문화의 중추적 담당자들, 이 곳의 지배자들은 다른 소경으로 강제로 사민되었다. 다른 피정복지의 지배자들이 여기로 옮겨져 왔다. 이것은 소경 관련 기록에서 뚜렷하다. 우륵이나 강수의 선조처럼 가야의 피정복지 출신이 중원소경으로 사민된 경우가 그러한 예이다. 이 때 남원에도 백제나 고구려나 가야 등 피정복지의 지배자들이 상당수 강제로 사민되어 왔을 것으로 보아서 무방하다. 그들은 과거의 고룡/백제 문화를 파괴하는 데 누구보다도 적임자였다. 그것을 대신하여 새로운 문화를 선도하여 가는 데 있어서도 그들은 적임자였다. 그 새로운 문화란 물론 경주의 문화, 신라의 문화, 핵심의 문화를 말하는 것이다.
신라는 여기에 만족하지 않았다. 신라는 피정복지문화의 파괴와 정복지문화의 이식을 지휘/감독할 경주의 진골귀족들을 아울러 여기에 파견하였다. 단순한 파견이 아니고 일단의 신라귀족을 아예 남원에 이사시켜 여기서 뿌리를 박고 살게 하였다. 이사 온 진골귀족들 위에 신라는 신라귀족을 남원소경의 책임자로 임명하였다. 남원에서 토착문화/주변문화을 파괴하고 그 자리에 신라문화/핵심문화을 이식시키기 위하여 신라는 그 담당자들을 누층적/중첩적으로 배치된 셈이다. 소경제도는 이러한 정복자의 피정복민지배의 일환으로 운영되었다. 물론 소경이라는 허울 좋은 이름이 피정복지 사람들에게 다소나마 위안이 되었을 법 하기는 하다.
그러나 소경이라는 말도, 정복자의 입장에서는, 피정복지의 토착적/주변적/백제적 잔재를 깔끔히 청산하고 신라/경주로 거듭나는 것, 그에 대한 다짐, 그에 대한 충성, 그에 대한 자긍심, 그 상징일 뿐이었다. 훗날 제국주의 열강의 식민지배도 비슷한 방식에 입각하고 있었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남원인들의 정신세계는 공황의 상태였을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사고와 행동에서 더 많은 자유를 쫒게 되었고 지배의 욕망이 더 충족되기를 바라고 사회적 위상도 경제적 지위도 더 나아지기를 열망한다. 이런 남원 사람들의 열망에 숨통을 터 준 것이 고려였다. 고려가 되어 남원에는 소경이 사라지고 부가 설치되면서 몇 가지 중요한 변화가 찾아 왔는데 첫째가 운봉이 남원의 예하 고을로 들어 왔으며 둘째 남원이 많은 속군/현을 거느리게 되었다. 그리고 남원은 신라 때 와는 다르게 서울로도 진출하여 정치적 야망을 펼 수 있었다는 것이다. 특히 교육제도와 과거제도를 고리로 해서 끊임없이 지방과 중앙이 서로 지속적으로 순환/교류하는 단초를 열어 놓았던 것은 남원의 자부심이었다.
<작성중>

* 양경님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8-10-17 23:47)

서울지인 2008-09-24 (수) 16:28
  양회장님! 지금도 역시 열심히 사십니다.
남원가면 안내는 확실히 해주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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