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몇년 전 부터 난 심신이 힘들 땐 자연을 찾기로 자연과 약속한 적이 있다.
4월9일 18대 총선 예비후보로 등록한 김재성에비후보의 공천탈락으로 며칠간 마음이 텅빈 것을 느꼈다.
패배의 쓰라림이라고 할것 까지는 없지만 김예비후보를 위해 최선을 다 했는데..........
어느 누구도 공허한 이 마음을 읽기가 힘들 것이다.
하지만 다시 힘을 얻고 칠전팔기의 새 마음 새 각오로 새로운 일을 새롭게 시작하게 될 몇분 지인들과 찾아간 곳이 구형왕능(傳 仇衡王陵)이다.
국가지정 사적 제214호(‘71. 2. 9)로 지정되어 경남 산청군 금서면 화계리 왕산 기슭에 자리잡고 있는 이 능은 가락국의 제10대 임금이자 마지막 임금인 구형왕의 무덤으로 전해오고 있다.
무덤의 형태는 경사진 지형을 이용하여 잡석으로 방형의 단을 이루면서 피라밋 모양으로 쌓아 올려 모두 7단을 마련한 돌무덤이며 상면에 타원형의 봉분이 마련되었으나 일반 봉토분과는 전혀 다르다고 지인께서 설명해 주시는데 워낙 배경지식이 없어 이해가 안갔고 또 심란했던 기분인지라 설명이 들어오질 않았다.그러나특이한 점은 전면 4단째에 작은 감실이 마련되어 있는데 그 용도는 알 수 없다. 높이는 7.15M 이며 무덤앞의 비석,석물은 모두 후대에 만들어 세운 것이라고 한다. 문화재 정화사업으로 축대, 교량 등을 정비 하였다고 하는데 역시 문화재의 정화사업도 영남과 호남은 현저한 차이가 있음을 느낄수 있었다.
이어 약 200여년 전에 마을 사람들이 산에 올라가서 기우제를 지내고 내려오는 길에 비를 만나 왕산사에 들러 비를 피하였다는 왕산사 엘 갔다.
왕산사에는 언제부터인지는 몰라도 법당 들보 위에 커다란 나무궤가 하나 얹혀 있었는데 누구도 그 내력을 아는 사람이 없었고 그냥 손댈수 없는 것으로만 전하여 지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비를 피하는 일행중에 민경언이라는 분이 평소에 담력이 센 분으로서 주지스님과 일행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궤를 내려서 열어 보자 그 속에는 구형왕과 왕비의 영정과 옷 그리고 활과 칼 같은 유물이 나왔고 또한 명승 탄영의 왕산사기등이 나와서 이를 고증하여 왕능을 다시 찾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하는데 일행이 찾은 왕산사는 석양이어서인지 아니면 우리의 마음이 심란해서인지 쓸쓸하게만 보였다.
나는 일행들이 기다리고 있는데도 계곡의 얼음 속에서 피어난 버들강아지와 이야기를 나누다 바위 틈에서 웃고 있는 이름모를 봄꽃들을 만나 카메라담았다.
"그래 이렇게 따뜻한 봄날,왕산 정상에는 잔설이 남아 있는데
얼음 속에서도 버들 강아지가 자태를 뽐내고 바위 틈에서 웃고 있는 봄꽂의 모습은 우리의 삶과 무엇이 다르랴".
오늘 모시던 김후보님께서는 점심을 드시면서 선거를 여성의 산고에 비유하셨다.
여성들이 임신과 출산의 고통을 겪는 순간은 절대로 아이를 갖지 않는다고 장담해 놓고 한순간이 지나면 다시 또 임신과 출산을 하듯이 정치인들이 똑같다며 유권자를 여자에 정치인을 남자로 비유하시기도 했다.
표를 부탁할때는 처녀에게 구혼 하듯이 간 쓸개까지 다 빼 줄 듯 하다가 선거 끝나면 결혼하고 난 남자의 모습으로 바뀌어 버린다며 현실을 강하게 비판하시면서 주위 사람들을 위로 하셨다.
비록 공천은 떨어지셨지만 그동안 삶의 모습을 지켜보며 더럽게 금뺏지를 다는 모습보다 깨끗하게 공천에서 탈락하시는 모습이 더 존경스러웠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세월은 가고 온다.
세월이 오고 가다보면 기쁜 날도 있을 것이다."쥐 구멍에도 볕들날이 있듯이".
한가지 일이 닫히면 또 한가지의 일이 열리는 것이 세상의 이치인데 ......
아무튼 의미를 부여하고 싶지는 않지만 구형왕릉에서 그동안의 생각을 정리 할수있는 한나절이어서 좋았다.
내일부터 묵은것 털털 털고 ...........
이 기회에 가락국에 대해 알아보자.
가락국은 우리나라 남쪽. (전)삼한시대에 신라와 백제 사이에 있던나라로,
고구려(高句麗) 대무신태열제(大武神太烈帝) 25년 삼월 보름에 북구지에서 구간이 대계(大契)를 연후 수로(首露)를 왕으로 모시니 나라를 대가락(大駕洛)이라 하였으며 또 가야국(伽倻國)이라고도 하였다. 그리고 수로형제 다섯은 각기 오가야(五伽耶)의 왕이 되니, 동으로는 황산강(黃山江), 서남으로는 창해, 서북으로는 지리산(地理山), 남쪽은 나라의 끝이 되었다.
(해설) 그 여섯 가라를 말하면 "신가라", "임라가라", "안라가라", "고링가라", "별뫼가라", "구지가라" 니 여섯 가라국이 처음에는 형제의 연맹국이었으나, 나중에 연대가 내려갈수록 촌수가 멀어져, 각각 독립국이 되어 각자의 행동을 취하게 되었다.
>> 1대 수로왕(首露王) 1년(7239-AD42) 성은 김(金)으로 9간에 의해 6형제와 함께 6가야의 왕으로 추대되었다. 2년 봄 정월에 임시대궐 남쪽 신답평으로 가 주위 1,500보 되는 외성에 궁궐전각과 일반관사와 무기고, 곡식창고들의 자리를 잡고, 그달 20일 부터 견고한 성터를 짓는데 그 기간을 농한기를 타서 성을 짓게 하였고 좋은 날을 받에 새로운 대궐로 들어갔으며 일체사무에 근면하였다. 7년(7245-AD48) 아유타국 공주 허황옥(許黃玉)이 오빠인 장유화상과 같이 불탑인 파사석탑 (婆娑石塔)과 불경 등을 가지고 들어오니 친히 그녀를 마중나가 성으로 데려오고, 결혼을 하였다. 37년(7275-AD78)년 신라의 길문(吉門)이 쳐들어 와 황산진(黃山津) 어구에서 싸웠으나 패하였다. 54년(7293-AD96) 9월 신라의 남쪽을 습격하여 가성주(加城主) 장세(長世)를 죽였으나, 신라임금이 친히 5천군사로 쳐들어 오니 물러났다. 60년(7299-AD102) 음즙벌국(音汁伐國)과 실직곡국(悉直谷國)이 국토 논쟁을 벌이니 임금이 바르게 판결하였다. 74년(7313-AD116)년 신라가 침범하니 황산하(黃山河)에서 이를 물리쳤다. 147년(7386-AD189) 3월 1일에 왕후가 죽으니 임금은 매양 구슬픈 공방살이 노래를 부르면서 언제나 비탄에 잠겼었다. 157년 왕후가 죽은 지 10년만에 임금이 죽으니 그 나이가 158세였다. 대궐 동북쪽 평지에 높이 한길, 주위가 3백보 되는 빈궁을 만들고 여기에 장사하니 수릉왕묘라 불렀다.
>>2대 거등왕 1년(7396-AD199) 3월 13일에 즉위하니, 아버지는 수로왕, 어머니는 허왕후이다. 왕비는 천부경 신보의 딸 모정이니 그는 태자 마품을 나았다. 12년(7407-AD210) 포상팔국(浦上八國)이 침략을 도모하여 왕자가 신라에 구원을 청하니 신라 내해이사금은 태자 우로(于老)와 이벌찬(伊伐찬) 이음(利音)에게 이를 치게 하니 팔국이 모두 항복하였다. 61년 임금이 태자 마품에게 왕위를 물려주었다.
>>3대 마품왕 1년(7456-AD259) 아버지 거등왕의 뒤를 이어 즉위하니 왕비는 종장감 조광의 손녀 호구이니 태자 거즐미를 낳았다. 39년 1월 29일에 임금이 승하하니 태자 거즐미가 왕위에 올랐다.
>>4대 거즐미왕 1년(7488-AD291) 일명은 금물(今勿)이니, 왕비는 아궁 아간의 손녀 아지(阿志)니 왕자 이품(伊品)을 낳았다. 56년 7월 8일에 임금이 승하하니 태자 이품이 왕위에 올랐다.
>>5대 이시품왕 1년(7543-AD346) 임금이 거즐미왕의 뒤를 이어 즉위 하니, 왕비는 사농경 극충의 딸 정신이니 왕자 좌지(坐知)를 낳았다. 24년(7566-AD369)에 백제가 병력을 나누어 침공하니 이기지 못하고 패하였다. 58년(7598-AD401) 고구려가 침범하여 들어오니 이를 막지 못하니 임나가라(任那加羅), 아라가야가 항복하였다. 62년 4월 10일 왕이 승하하니 태자 좌지가 왕위에 올랐다.
>>6대 좌지왕 1년(7604-AD407) 일명은 김질(金叱)이니 왕비는 도령 대아간의 딸 복수로서 왕자 취희를 낳았다. 15년 5월 12일 임금이 승하하니 태자 취희가 왕위에 올랐다.
>>7대 취희왕 1년(7618-AD421) 김즐왕이라고도 이르니 왕비는 진사 각간의 딸 인덕이니 왕자 질지를 낳았다. 31년 2월 3일에 임금이 승하하였다.
>>8대 질지왕 1년(7648-AD451) 김질왕이라고도 부르니 왕비는 김상 사간의 딸 방원이니 왕자 감지를 낳았다. 2년 시조왕과 허황옥왕후를 위하여 수로왕과 왕후가 결혼하였던 곳에 절을 세워 황후사라 부르고 전토 10결을 바쳐 여기 충당하게 하였다. 29년(7676-AD479) 바다건너 남제와 통교하였다.(해설) 31년(7678-AD481) 고구려가 신라를 침범하여 신라가 도움을 청하니 군사를 내어 이를 물리쳤다. 42년 10월 4일에 임금이 승하하니 태자 감지가 왕위에 올랐다.
>>9대 감지왕 1년(7689-AD492) 금감왕이라고도 이르니 왕비는 출충 각간의 딸 숙이니 왕자 구형을 낳았다. 30년 4월 7일에 임금이 승하하니 구형이 태자 구형이 왕위에 올랐다.
>>10대 구형왕 1년(7718-AD521) 감지왕의 뒤를 이어 즉위하니 왕비는 분즐 수이즐의 딸 계화이다. 2년 임금이 사신을 보내어 신라에 결혼동맹을 요청하니, 신라임금이 이찬 비조부(比助夫)의 딸을 임금에게 시집보냈다. 9년(7726-AD529) 신라가 동맹을 파기하면서 북경과 금관가야를 공격하였다. 12년(7729-AD532) 신라가 본국의 금관가야에 침범하니 금관국왕(金官國王) 김구해(金仇亥)가 항복하였다. 42년(7759-AD562) 신라 진흥제가 본국을 침범하니, 이를 능히 막지 못하여 패하니 신라에 항복하였다.
* 양경님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8-03-22 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