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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적답사]

남원투데이와 함께하는 "토요 역사 문화 향토기행(교룡산성과 선국사)"을 다녀와서

글쓴이 : 양경님 날짜 : 2007-09-29 (토) 21:40 조회 : 2591


가을을 재촉한 비가 개인 오후다.선국사를 오르는 돌 길은 삶의 고뇌를 품앗이 하듯 땀방울을 훔치게 했지만 길가의 작은 돌 사이로 흐르는 물 소리는 다정다감란 모습으로 정스럽게 반겨준다. 우리들과 같이 한 푸른 소나무,이름모를 온갖풀과꽃, 이끼 낀 돌들은 선국사의 소식을 미리전한 듯하다.
교룡산 중턱에 자리잡은 선국사는 일주문도 해탈교도 없다. 개울물에 씻긴 돌 같은 마음뿐!
선국사는 685년(신라 신문왕 5)에 창건했다고 하며, 창건 당시엔 절 근처에 용천(龍泉)이라는 샘이 있어서 용천사라 불렀다고 한다. 절 둘레에 교룡산성을 쌓으면서 국난 때마다 용천사 스님들이 수비대가 되곤 했으며 조선시대에는 교룡산성을 지키는 본부로도 사용되었다. 선국사는 "스님들이 나라를 위해 좋은 일을 많이 했다" 하여 선국사(善國寺)로 바뀌었다 , 교룡산성 안에 있는 절이라고 해서 ‘산성절’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축대를 쌓은 막돌도, 기둥 삼은 나무도 자연 그대로. 사람의 손을 덜 탄 덕분에 소탈하고 아름다운 모습 천연 그대로의 모습이 내 마음을 사로 잡았다.
여러가지꽃과 나무들이 어우러진 요사채 마당. 장독대 너머 칠성각이 보인다.
댓돌 위에 흰 고무신 한 켤레가 있어 들여다 보았더니 비구니 스님께서 방을 치우시느라 정신이 없으시다.안내를 받고 싶었지만 미안해서 ...... .흐르는 세월을 증명이라도 하듯 늙은 배롱나무 한 그루가 분홍 꽃을 떨군 채 우두커니 서 있다. 딸의 피부처럼 부드러운 모습에 나의 손이 떨어지지 않았지만 옆에 선 7층석탑 의 눈치에 손을 뗄 수밖에.
석달 열흘 환한 배롱나무 꽃세상은 이제 지나가 버릴 저물어 가는 9월.
배롱나무 가지 아래서 나는 지나온 길, 앞으로 가야 할 길을 놓친 지난날의 상념을 더듬어 보았다.그동안 우두커니 서서 망설였던 적도 있었고. 벼랑끝에 서 있는 심정으로 현실을 직시해햐 할 가슴아픈 상처도 있었다.또 내가 좋아하는 환한 모습으로 수 개월 나를 기다리며 염원하는 기도 소리를 들은 적도 있었다.더 이상 삶의 푸념은 없어져야 할 내 입장이다.

이어 단아한 대웅전(지방유형문화재 114호)을 찾았다. 현판 옆에 걸려 있는 용의 얼굴을 쳐다보니 " 중생들을 반야의 세계로 필히 인도하고 말겠다"는 굳은 의지를 다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
대웅전 안에는 전북민속자료 5호인 ‘선국사 대북’이 있다. 소나무 통목에 쇠가죽을 씌워 만든 이 북의 둘레는 269cm 지름 79cm 길이 102cm. 북의 크기로 보아 선국사는 300여 명 승려가 기거한 대규모 절이었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다.
북을 보니 평소 알고 지내는 지인 김용근씨가 생각난다.북에 대한 명인이시다.
옛부터 북의 명인들은 헐려 나가는 옛집의 기둥이나 대들보를 얻어와서 북구레(북의 몸통)를 만들고, 젊은 황소보다는 산전수전 다 겪고 죽은 늙은 황소 가죽만을 구해다 북구레에 씌웠다고 한다. 가죽을 칠 때는 깊은 소리를, 북채로 몸통을 칠 때는 야무진 소리를 얻기 위해서였을까? "소리가 깊지 않으면 듣는 사람의 깊은 곳에 닿지 못한다"는 생각에서 였을까?.
드나든 발길이 잦았다면 대웅전 오르는 계단 위에 코스모스 한 그루가 너무도 씩씩하고 당당하게 서 있을 수 있었을까? 그래서 스님은 인터넷 세상에 ‘인연의 향기’라는 법당을 열어 놓고 계시나 보다.
이어 초록 잔디로 단장된 뜰 앞 누각보제루에 걸터 앉아 땀을 식히다 보니. 다람쥐들이 숨바꼭질을 하고 넓고 확 트인 마루 위엔 시원한 바람만이 나의 어깨를 두드려 준다. "힘내라고"이런 맛이다. 산을 찾아 문화재를 찾아 다니는 재미가.선인들을 통하여 정신을 배우고 자연을 통하여 세상을 느끼고 일행을 통하여 인간애를 느낄수 있으니.
그동안 품고 있던 억울함을 고함이라도 질러 풀어 버리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참회하고 수양하는 마음으로 참았다.
선국사에서 국난에 처해있는 상황 속에서 선인들이 행했던 모습을 생각하니 참을 수 밖에.
보제루에서 바라본 풍경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아름다웠다.멀리 지리산 자락을 펼쳐 두고 그 아래 남원 시가지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니 사통팔달. 무엇을 해도 부족함이 없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정면 4칸 측면 2칸 규모의 팔작지붕 건물로 사찰 앞면의 오른쪽 끝부분에 옆으로 길게 자리하고 있다. 뒷면은 평지에서 올라가게 되어 있으며, 정면은 밑 부분의 돌기둥과 윗부분의 나무기둥으로 세워졌다.1960년 보제루의 마루 밑에서 ‘교룡산성승장인(蛟龍山城僧將印)’이라는 동인(銅印)이 발견되었는데, 이 인장은 산성 수비책임을 맡은 별장이 동학군에게 성을 빼앗기고 달아날 때 빠트린 것이라 한다
현재 보제루에는 가장 최근에 관음전 보수불사를 마치고 기록한 '관음전보수불사방명록(1992년)'을 비롯하여, 20세기 초에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 들러 읊은 시를 적은 현판 9개, '보제루중수기(1918년)', '선국사중수기(1917년)' 등의 현판이 걸려 있다. 수행을 하면 선방, 밥을 먹으면 식당, 누우면 침실. 나라가 위기에 처해 있을 때는 그대로 초소가 되기도 했다고 한다.
특히 선국사에 있는 ‘교룡산성 승장동인(蛟龍山城僧裝銅印·전북민속자료 제27호)은 선국사 승병의 지휘권을 증거하는 유물이었다고한다. 승려 처영에게 하사한 구리로 만든 도장이다. 처영은 조선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교룡산성의 승병장이 되어 성을 크게 수축하고 전란에 대비하였다. 이에 조정에서 산성별장(山城別將)임을 증명하는 의미로 이 도장을 새겨 하사하였다.도장은 산성내의 선국사 주지에게 대대로 전해내려 오다, 동학혁명군 김개남이 교룡산성을 본거지로 활동할 때 잃어 버렸던 것을 1960년 당시의 주지였던 보월 스님이 발견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1960년 보제루의 마루 밑에서 ‘교룡산성승장인(蛟龍山城僧將印)’이라는 동인(銅印)이 발견되었는데, 이 인장은 산성 수비책임을 맡은 별장이 동학군에게 성을 빼앗기고 달아날 때 빠트린 것이라 한다.
가로 6.3㎝, 세로 7.8㎝, 두께 1.5㎝의 크기로, ‘교룡산성승장인(蛟龍山城僧將印)’이라는 7글자를 세로로 2줄 새겨 놓았다. 직사각형의 원판에는 높이 6.5㎝의 손잡이가 달려있다.임진왜란이 일어난 다음해인 1593경에 만든 것으로, 원형 그대로 잘 보존되어 있으나, 동인을 보관해오던 본래의 함은 사라지고 없다.

각자위심(各者爲心) 벗어나 제 안의 한울님 모시라…동학의 근원지
선국사 뒤로 오르면 ‘은적암(隱寂庵)’터가 있으나 해가 저물어 다음 기회로 미루고내려 왔다.동학교주 최제우가 동경대전을 쓴 곳이다. 모두가 저만 위하는 각자위심(各者爲心)의 상태에 빠져 천명을 돌보지 않고 천리에 순종하지 않는 당시의 세태를 개탄하고, 모든 사람의 내면에 모셔져 있는 한울님의 맑고 깨끗한 성품을 회복하자는 것이 동학이었으니, 이 곳은 1894년 갑오년 동학농민혁명의 도화선이 된 곳이기도 하다. 천도교 2대 교주인 최시형이 잠시 몸을 피해 있기도 했으며, 동학농민혁명 당시엔 김개남 장군이 남원의 동학군을 전부 모아서 이곳을 거점으로 관군과 일대접전을 벌이기도 했던 곳이다.

선국사하면 교룡산성을 빼놓을수없다.교룡산성은 신라와 대적하여 백제때 처음 쌓았다는 백제 교룡산성은 해발 518m 높이 교룡산 중턱에 있다. 고려말 이성계 장군이 왜구와 싸웠고, 임진왜란 때 승장 처영이 늘려 지었다는 성의 둘레는 본디 3120m, 높이 4.5m. 그 중 300여m가 원형대로 남아 있다. 성벽은 자연석이 아니고 잘 손질된 돌로 쌓아져 있다.
성 안에는 우물이 99개나 있었고 밀덕봉과 복덕봉 등 산세가 매우 가파른 탓에 유사시 인근 주민이 대피하기 좋은 천혜의 요새지였다. 군창과 무기고를 두고 곡성 옥과 구례 창평 장수 운봉 등 인근 6개 군현에서 거둔 군량미를 전부 이곳 교룡산성 안에 저장하고 병력을 배치했다고 한다. 사대문 중 동쪽 홍예문만이 옛 모습대로 남아 있으며, 장수를 기원하는 윤4월 성밟기가 여전히 행해지고 있다.

15조각의 돌로 만든 무지개문(虹霓門 홍예문)아래를 지나면서 적과 싸우기 위해 성을 쌓았던 선인들의 마음을 담아 그 정신을 이어 받고자 문 앞에 서 보았다.


* 양경님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7-10-01 14:37) * 양경님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8-03-16 22:48)

남원사랑 2007-10-02 (화) 01:13
  누구의 지극한 염원이 돌탑으로 서서
천년 푸른하늘아래 저리도 홀로섰나...
무엇을 기다리는가?
보제루 난간에서 청산을 바라보는 여심에 깊은 가을의 그림자가
 드리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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