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아치전투지 표지석제막식과
제2회추모제 및 천도재에 다녀와서
선열들은 나라와 민족을 위해 이름없이 빛도없이 목숨을 초개와 같이 바쳤건만 눈이 아프다는 이유로 행사에 참석을 못하겠다는 핑계는 나 자신이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다른 부분도 아니고 자원봉사를 하겠다고 해놓고.....
남원동학농민 혁명기념사업회가 추최한"방아치전투지 표지석제막식과 제2회 추모제 및 천도재가 방아치 전투현장인 남원시 산동면 부절리 방아치 전투지 입구에서 많은 시민과 유족회 그리고 남원시의회의장님과 시민. 사회.문화단체회원들의 참여속에 성대히 거행 되었다.
오늘(2007.11.17.토.오후2시~6시)표지석제막식과 추모제는 동학농민혁명유족회의 추모에 이어 남원 원불교 교당의 주관으로 천도재를 지냈으며 추모공연으로는 남원 운봉중 교사인 복효근 시인의 "다시 밝혀드리는 동학의 횃불"의 시낭송과 남원시립국악단의 진혼창.진혼무.정은미 명창의 개남가. 고명숙 지리산 가수의 진혼가와 산동면 농악단의 진혼굿을 끝으로 많은 시민들의 심금을 울리는 행사였다.
방아치는 산동면 부절리에서 운봉읍 장교리로 넘어 가는 고개입구로 1894년 북으로 진잠,금산에서부터 남으로 광양,고흥반도까지를 총지휘했던 전라좌도 동학농민군의 중심지 남원에서 김개남장군이 정예부대를 이끌고 청주성을 향하여 북진한 후 남원대접주 김홍기를 비롯한 농민군 1만 여명이 영남으로 진출하기 위한 교두보를 만들기 위하여 운봉지역을 확보 하여야 했다.
남원 농민군은 음력 11월 14일 새벽부터 운봉을 향하여 방아치 계곡으로 공격을 시작하였다.
그러나 운봉민보군과 관군은 영남지방의 막강한 병력과 병기군수물자를 지원 받아 방아산성(합미산성,장교리산성)의 성돌을 이용한 역공으로 결국 농민군은 3,000여명의 희생자를 내고 물러나지 않을 수 없었다.패전한 농민군은 남원성으로 물러났으나 전사한 동료들의 시신조차 수습할 수 없었고 관군은 그 전과를 올리기 위하여 희생당한 농민군의 머리를 잘라 냈다. 지금 방아계곡은 당시 희생 된 선열들의 주검이 진토 되어 묻혀 있거나 자연으로 돌아가 계실 것이다.
따라서 한병옥 남원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장은 "동학농민혁명의 정신은 결국 독립정신이며 민주정신이고 만인 평등정신이다. 외세의 짓밟힘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것이 척양왜정정신으로 보국안민정신이라면 제폭국민과 광제창생 정신은 민주정신이며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인내천정신이다“ 라고 강조 하면서 ”일백 십 여 년이 훨씬 지난 오늘에도 동학농민혁명정신은 이 땅에 뿌리 내리지 못하고 있으며 미국은 아직도 우리의 주권을 농락하고 관권과 금권은 아직도 사람 위에 군림하고 있으면서 빈익빈,부익부의 극대화 된 사회 양극화 현상으로 사람이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음이 안타깝다"며 이 땅에서 하루빨리 동학농민혁명정신을 계승 발전시켜 세계의 평화를 위한 통일된 조국을 건설해 보자고 인사말을 통해 피력했다.
선열들의 감격의 표현인지 날씨가 예년에 비해 무척 쌀쌀했지만 참여한 시민들은 피고름이 넘치는 이 땅의 상처를 깊숙히 치유하듯이 분위기는 엄숙했다.
온갖 음해와 중상 모략속에 갈기갈기 찢겨진 우리의 인간관계 !
불의와 야합하고도 한 치의 양심도 없는 인간사!
썩은 냄새가 난데도 향기라고 우기며
개인의 영달을 위해 합리화 시키는 비인간들의 모습들은 선열들의 위대한 몸부림 속에 이 시간 이후로 설 땅이 없기를....
* 양경님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8-03-16 2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