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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적답사]

우리고장 주천면의 고인돌을 찾아서......

글쓴이 : 양경님 날짜 : 2007-12-10 (월) 22:09 조회 : 2277


우리고장 주천면의 고인돌을 찾아서......

우리고장은 선사이래로 많은 유적들이 남겨져 있다. 특히 고분과 고인돌은 전지역에 분포되어 있으며, 특히 남방식 고인돌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어 남쪽의 바다와 섬진강을 통해서 우리고장이 해양성문화가 정착된듯하다.
오늘 남원투데이 남원문화유사 답사팀은 일정을 서둘러 주천면의 선사시대 유적인 고인들을 찾아나섰다.

먼저 주천면 주천리 마을의 고인돌을 찾았다.
들판의 농로옆에 있는 고인돌은 그 규모나 모양이 매우 웅장하고 미관이 매끄러웠다.
윗부분의 서쪽부분엔 천공이 뚜렷한 상태로 석질이 우수함을 느꼈다.
이어 북쪽방향 200여m 지점에도
지하에 묘실이 만들어진 남방식 고인들이 있었다.
또한 은송리 내송(안솔치) 마을에서 동쪽으로 약 300여m 지점에도 고인돌이 2기가 있었다.
아직 발표되지는 않은 것 같지만, 그 형태나 덮게석위의 천공들로 보아 고인돌로 짐작이 된다.
우리고장은 선사시대의 유적이 많지만 아직 이를 활용하지 못하고 있어 아쉽다.
세계적으로 선사시대의 유적들이 많은 호응을 받고 있는데 반하여 관심을 갖지 못하는 우리고장의 문화유적이 방치된 듯 하여 아쉽기만 하다.
.

주천면 주천리에 있는 고인돌......

고인돌은 대부분 천공이 있다. 주천면 고인돌 역시 천공이 뚜렷하다.

천공을 확인하고 있는 답사팀.....

고인돌위에서 기념촬영....


여기에서도 천공이 확인되고 있다.



주천면 은송리의 고인돌로서 천공이 있으며, 확인되지 않는 문양이 있어 예사롭지
않게 보인다. 따라서 전문연구기관의 확인이 필요하다.


원형이 무너진 고인돌로서 덮개석이 남아 있으며, 지석은 파괴된듯하다.

* 관리자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7-12-12 20:18) * 양경님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8-03-16 21:14)

서울에서 2007-12-10 (월) 22:23
  양회장님!
지석묘의 크기가 대단하네요? 정말 모양새도 아름답고......
언제 길라잡이를 부탁하여도 될지 모르겠습니다. 부탁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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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 2007-12-11 (화) 11:57
  양선생님!
고인돌에 대하여 좀 자세히 알려주실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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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경님 2007-12-11 (화) 12:01
  고인돌은 크게 나눠 지상에 4면을 판석으로 막아 묘실을 설치한 뒤 그 위에 상석을 올린 형식과, 지하에 묘실을 만들어 그 위에 상석을 놓고 돌을 괴는 형식으로 구분된답니다 전자는 대체로 한반도 중부 이북 지방에 집중되어 있고, 후자는 중부 이남 지방에서 다수를 차지하기 때문에, 이들을 각각 북방식 고인돌과 남방식 고인돌이라고도 한답니다. 이밖에도 지하에 묘실을 만들었으나 남방식 고인돌과는 달리 돌을 괴지 않고 묘실 위에 상석을 바로 올린 고인돌도 있는데, 이를 개석식 혹은 변형 고인돌이라고 하는데 저도 요즈음 좀더 자세히 배우고 있는데  홈을 통해서 같이공부 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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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돌사랑 2007-12-11 (화) 13:18
  양선생님!
지난해 시간창고의 뚜껑을 연 화순고인돌 축제를 다녀 온 적이 있었습니다.
선사체험!
움집에 들어가 몸에 선사인의 옷을 두르고 시간 속 보물창고의 문을 열어 보았지요.
고인돌은 선사시대 그 중에서도 청동기시대를 대표하는 무덤이며, 거석기념물의 일종인데. 꼭 우리나라에만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 숫자를 보면 단연 우리나라가 최대이며, 그 중에서도 전라도가 절대적이라고 합니다.

특히 2000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화순 고인돌공원은 596기의 고인돌이 밀집한 데다, 공원에서 채석장까지 발견돼 학계의 주목을 받고 있었습니다.

고인돌 시대를 역사 속에 묻어 두는 것이 아닌 직접 체험하고 교육의 계기로 삼는 것이 고인돌축제의 특징이요.고인돌축제를 즐기다 보면 어느새 고대 왕국의 역사를 알게 되고, 인류문명의 발달사와 더불어 고인돌 왕국 화순이 어떤 곳인지 쉽게 알 수 있다고 해서 다녀 왔는데
아주 인상적이었습니다.
답사팀을 한번 모집해서 다녀오시면 연구하시는데 큰 도움이 되실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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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돌전문가 2007-12-11 (화) 13:45
  고인돌이란?한국의 청동기 시대의 부족장 무덤입니다. 고인돌 외에도 많지만 그중에서 제일 대표적인고인돌입니다.또 고인돌은 지석묘(支石墓)라고도 부른다. 북유럽·서유럽·지중해 연안·북아프리카·서남아시아 일대의 신석기시대 묘제로 분포하나, 한국의 고인돌과 직접적인 문화적 관계는 없는 듯하다. 중국 랴오닝성과 산둥반도 및 일본 규슈[九州]에도 분포하나, 한국과는 비교되지 않을 만큼 미미하다.

고인돌은 크게 나눠 지상에 4면을 판석으로 막아 묘실을 설치한 뒤 그 위에 상석을 올린 형식과, 지하에 묘실을 만들어 그 위에 상석을 놓고 돌을 괴는 형식으로 구분된다. 전자는 대체로 한반도 중부 이북 지방에 집중되어 있고, 후자는 중부 이남 지방에서 다수를 차지하기 때문에, 이들을 각각 북방식 고인돌과 남방식 고인돌이라고도 한다. 이밖에도 지하에 묘실을 만들었으나 남방식 고인돌과는 달리 돌을 괴지 않고 묘실 위에 상석을 바로 올린 고인돌도 있는데, 이를 개석식 혹은 변형 고인돌이라고 한다.

고인돌의 연구에서는 지하의 묘실 구조와 축조방법을 중시하는데, 연구자에 따라 약간의 견해차이가 있지만 대체로 이렇게 북방식·남방식·개석식 등의 3종으로 분류된다. 그러나 북한 학계는 고인돌에는 한 구역 안에 2~3기의 고인돌을 나란히 세우고 상석 높이까지 돌을 덮어 묘역을 구성한 형식의 고인돌과, 전형적인 북방식 고인돌의 두 유형이 있다고 주장한다. 이들을 각각 침촌리형과 오덕형 고인돌로 부르며 전자가 시기적으로 더 이르다고 본다.

고인돌 각 형식 간의 시간적 관계에 대해서는 크게 북방식이 앞선다는 설과 남방식이 앞선다는 설이 있으나, 시간적 관계 판단에 필요한 유물이 워낙 미미하기 때문에 확실하게 단언하기 힘들다. 고인돌이 만들어진 시점에 대해서도 아직 의견이 일치되지 않고 있다.

혹자는 방사성탄소 연대측정치를 근거로 신석기시대에 이미 고인돌이 사용되었다고 주장하기도 하고, 기원전 8~7세기 이전에 시작되었다거나, 아무리 이르게 보아도 기원전 5세기를 넘을 수 없다는 주장 등을 하여 이견이 분분하다. 그러나 고인돌이 마지막으로 사용된 시기에 대해서는 대체로 초기 철기시대의 대표적인 묘제인 움무덤[土壙墓]이 등장하기 이전인 기원전 2세기경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한편, 고인돌이 만들어진 문화적 연원에 대해서도 역시 의견의 일치를 보지 못하고 있는데, 지하에 설치된 돌널무덤[石棺墓]이 지상화되어 고인돌로 발전하였다는 자생설, 만주지방에 분포한 대석붕(大石棚)의 영향을 받아 발생하였다는 설, 남아시아의 거석문화(巨石文化)의 유입으로 발생하였다는 설 등이 있다.

고인돌은 제주도를 포함하여 전국에 분포하나, 황해도·전라도에 가장 밀집되어 있으며 한 곳에 수백 기의 고인돌이 군을 이루어 분포한 경우도 있다. 북방식 고인돌은 한강 이남 지역에서는 거의 발견되지 않는데, 전라북도 고창에서 발견된 북방식 고인돌이 최남단의 것이다. 남방식 고인돌은 전라도 지방에 밀집 분포하며, 경상도와 충청도 등 한강 이남 지역에서도 많이 보인다. 한편, 개석식(蓋石式) 고인돌은 전국적으로 분포한다.

일본 규슈[九州]지방에 분포하는 고인돌은 죠몽[繩文]시대 말기에서 야요이[邇生]시대 초기에 걸쳐 등장하는데, 그것들이 한국계 유물과 함께 발견되고 있어, 일본 야요이문화가 한국에서 건너간 사람들에 의해 형성되었음을 암시한다. 고인돌에서는 간돌검과 돌화살촉이 주요 부장품으로 발견되고 있으며, 민무늬토기와 붉은간그릇 등 토기류와 청동기가 부장된 경우도 있다.

그러나 많은 고인돌에서는 유물이 전혀 없거나 있어도 매우 미미해, 고인돌이 세골장(洗骨葬) 혹은 이차장(二次葬)용의 무덤일 가능성도 언급되고 있다. 또한 고인돌 축조에 필요한 거대한 돌의 운반에는 대규모의 인력이 필요로 하였을 것이라는 가정에서, 이것이 족장(族長) 등 지배계급들의 묘(墓)라는 주장도 있다.많은 도움이 됬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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