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고유의 종이 수부지!
지리산 천왕봉이 저만치 보이는 지리산속의 마을!
최고의 한지로서 임금께 진상하였던 남원한지가 남원시 산내면 하황마을에서 신평식(63)씨에 의해서 6대째
그 명맥을 전통방식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하황마을 입구에 들어서자 닥나무를 삶은 냄새가 구수하게 느껴진다.
마을 앞 하천 제방에는 동네할머니들이 닥나무 껍질을 벗기는 모습이 어릴적 마당에서 삼을 벗기던 풍경과 흡사한 평소 보기드문 장면이다. 닥나무를 가마에 넣고 수증기로 쪄서 꺼내어 한지의 주재료인 닥나무 껍질을 벗기고 있다.
요즘 한지는 화선지나 닥공예에 이용되는 정도지만, 특히 남원시 산내면 수분지는 순닥을 이용한 한지로서 각종 제례의식이나 장례용품, 또는 수의용으로 각광을 받고 있으며, 고급지나 고급요리 과정 등 다양하게 이용된다고 한다.
소박하고 거짓이 없는 닥나무와 그 향기는 민족의 영산 지리산 자락의 평화로운 풍경과 조화를 이룬다.
비록 우리나라 한지의 기록은 남아 있지 않지만 한지는 우리의 풍토에 맞게 만들어진 종이다. 우리 민족은 새로운 문물이 들어와도 그것을 우리정서에 맞게 발전시켜, 우리 것으로서 독특한 문화를 형성해 왔다. 현재 우리나라 종이는 한지와 양지로 나뉘며 한지는 수부지(手浮紙)와 기계한지로 구분된다고 하는데 산내면의 한지가 수부지(手浮紙))의 대표라고 할 수 있다.
필자는 수작업을 하고 계시는 어르신들께 한지의 제작과정을 설명 들으며 껍질 벗기는 작업에 동참해 보았다. 낯익은 닥나무는 어릴 적에 할아버지가 오빠들 팽이채를 만들어 주기 위해 소죽 끓이는 솥에 삶아 껍질을 벗기던 기억이 가물가물 했다. 또 닥나무 잎이 삼 잎처럼 넓적하게 생겨 담벼락을 지키고 있었던 모습도 기억났다. 껍질을 벗기는 방법은 버들피리를 만들기 위해 버드나무를 꺾어 돌리던 옛 추억을 더듬어 보는 시간이기도 했다.
우리나라의 제지 기원을 보면 한지는 중국의 후한시대(AD 105년) 채륜에 의해 발명되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그 후. 제지술이 우리나라에 전해 졌지만 언제 도입 되었는지는 문헌상으로는 알 수 없으나 학자들에 의해 빠르게는 3C경에서 4~5C, 늦게는 6C에서 7C 까지 보고 있으나 아직 까지도 온갖 추측이 난무 하다.
닥 섬유로 된 우리나라 종이를 중국에서는‘고려지’라는 통칭으로 사용되어 왔다고 한다. 고려지를 누에실로 만든 것이 아닌가 착각할 정도였다니 매끄러운 종이였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으며 한지는 국제적 명성을 갖추었다고 보아야 한다. 고려지는 아름다운 흰빛이 비단 같아 글씨를 쓰면 먹을 잘 받아 색깔이 선명하다고 알려져 왔으며 발묵(發墨)이 좋아 중국의 종이 하고는 비교가 안 된다는 우리종이에 관한 언급은 중국 문헌에도 허다하다고 한다.
한지 지킴이 신평식씨는 한지를 만드는 공정은 복잡하기도 하고 손길이 백번도 넘게 간다고 토로한다.
한지를 만드는 과정은 10월쯤부터 닥나무를 잘라서 삼고 쪄서 껍질을 벗긴후 차가운 물에서 얼린다음 흑피를 벗겨 하얀 섬유질만 말린다. (차가운 흐르는 물에 불리는 이유는 닥과 흑피의 분리가 잘되고 양질의 재료가 나온다고 한다.)
말린 섬유질을 다시 육재(천연잿물)와 삶아서 흐르는 물에 여러번 휑군다.(육재는 콩대, 고추대, 메밀대 등을 태워서 그 재로 낸 알카리성의 천연 잿물이다. 천연잿물을 사용하여야 섬유질을 파괴하지 않기 때문에 육재를 사용한다고 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섬유질만 남는 재료를 백닥이라 하는데, 이 백닥을 돌위에 놓고 방망이로 두들겨 잘게 부셔서 여기에 직접 재배한 닥풀(접착제)이라는 소재를 이용, 흘림뜨기를 하여 건조시키면 한지가 된다.
특히 농번기에는 불순물(해금)이 많아 농한기에 작업을 하는데 이때 나온 한지를 오사리라 한다고 한다.

이러한 전통방식으로 생산된 양질의 수분지가 경쟁력을 갖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쉽기만 하다. 우리 한지는 조선조말 이후 기계지와 중국지 또한 일본지에 눌려 거의 내리막길을 가고 있는 실정이었고 또한, 창호지나 장판지 등으로 명맥을 이어가는 정도였으며, 그 사용 용도도 줄어들고 말았다.
1945년 해방 후의 50년간은 한지공업의 붕괴과정이었다. 해방 후의 정치, 경제, 사회적 혼란과 6.25전쟁, 그리고 군사혁명이후의 선공업 후농업 정책 등으로 인하여 전통적인 농촌사회의 생산과 부업구조가 바뀌어 종이 일부를 제외하고는 농민들이 농한기에 부업으로 제조하기에 이르렀고 이마저도 모두 사라져 버렸다.
이러한 과정에서 우리 전통방식의 수부지 제작 과정이 사라져 버릴것은 시간문제인 듯 하다. 따라서 산내면사무소 김용근주사는 "세계화 시대에 한지가 경쟁력을 갖기 위해선 전통적인 우리의 강점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는 전통한지를 다시 발굴, 계승 발전시켜야 하는데 그 구심점이 천혜의 자연환경을 가지고 있는 지리산 자락의 남원시 산내면이 되어야 한다." 고 말했다.
조선 최고의 한지를 자랑하며, 임금에게 진상품이던 남원한지가 신평식 한지지킴이에 의해 그 맥을 이어가고 있는것이 다행스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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