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움의 눈물인지.
기쁨의 눈물인지.
눈물이 콧물이 되어 내리는 비인지.
하염없이 비가 내린다.
어찌보면 이화중선의 한이 풀리는 날 이어서 기쁨에 복 받친 벅찬 눈물인지도 모른다.
또 축복의 단비인지도 모른다.
오늘 오후(2007.9.14) 광한루 완월정은 숙연한 분위기 속에 침묵이 흐르고 있다.처음부터 돌아가실때까지 똑 같은 목소리로 판소리를 했다는 이화중선의 목소리가 음반에서 흘러 나온다.
기쁨의 눈물인지.
눈물이 콧물이 되어 내리는 비인지.
하염없이 비가 내린다.
어찌보면 이화중선의 한이 풀리는 날 이어서 기쁨에 복 받친 벅찬 눈물인지도 모른다.
또 축복의 단비인지도 모른다.
오늘 오후(2007.9.14) 광한루 완월정은 숙연한 분위기 속에 침묵이 흐르고 있다.처음부터 돌아가실때까지 똑 같은 목소리로 판소리를 했다는 이화중선의 목소리가 음반에서 흘러 나온다.

평소에 듣던 판소리도 가야금 소리도 오늘따라 웬지 쓸쓸하게 들리기만했다.
나는 애도하는 마음으로 완월정 바닥에 앉았다."조선시대 대중 인기 최고의 여류명창 이화중선 재조명"이 지리산 판소리문화연구소.남원문화원, 남원여성발전연대가 초청하고 남원투데이와 남원사회봉사단체협의회가 후원하여 순수한 시민의 작은 정성을 모아 본 시간이다.
남원에서는 격식을 따지지않고 하는 이런 행사는 보기드문 행사인것 같다.순수한 시민에 의해서 정형화 된 요식적인 행사가 아닌 마음에서 우러나와 뜻을 같이하겠다는 사람들이 이곳에 자발적으로 찾아온것 이다.
선진국은 시민이 주선한 행사는 거의 이런 분위기속에서 행사를 진행 한다고 한다.시민의 자발성보다 더큰 힘이 어디 있겠는가?
나는 애도하는 마음으로 완월정 바닥에 앉았다."조선시대 대중 인기 최고의 여류명창 이화중선 재조명"이 지리산 판소리문화연구소.남원문화원, 남원여성발전연대가 초청하고 남원투데이와 남원사회봉사단체협의회가 후원하여 순수한 시민의 작은 정성을 모아 본 시간이다.
남원에서는 격식을 따지지않고 하는 이런 행사는 보기드문 행사인것 같다.순수한 시민에 의해서 정형화 된 요식적인 행사가 아닌 마음에서 우러나와 뜻을 같이하겠다는 사람들이 이곳에 자발적으로 찾아온것 이다.
선진국은 시민이 주선한 행사는 거의 이런 분위기속에서 행사를 진행 한다고 한다.시민의 자발성보다 더큰 힘이 어디 있겠는가?

문화 예술을 통해 하나된 사람들의 자리라고 보면 될 것이다.
축하의 화분이 없는것이 어색할까?
기관장들의 축하의 메세지가 없는 것이 어색할까?
또 한분한분 내빈소개하며 시간을 허비하지 않는것이 어색한일인가?
아니다. 이화중선명창의 참 뜻일지도 모른다.이런 순수한 모습들이.
이화중선은 화려한 것을 싫어 할것이다.
억지로 오는사람은 환영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마지막 가는 날까지 그녀는 약한자의 곁에 있었으니.
오늘 우리의 모습에 가슴 아파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시작은 미약하나 나중은 성대하리라"믿는다.
축하의 화분이 없는것이 어색할까?
기관장들의 축하의 메세지가 없는 것이 어색할까?
또 한분한분 내빈소개하며 시간을 허비하지 않는것이 어색한일인가?
아니다. 이화중선명창의 참 뜻일지도 모른다.이런 순수한 모습들이.
이화중선은 화려한 것을 싫어 할것이다.
억지로 오는사람은 환영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마지막 가는 날까지 그녀는 약한자의 곁에 있었으니.
오늘 우리의 모습에 가슴 아파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시작은 미약하나 나중은 성대하리라"믿는다.

고인이 된지 64여년 동안 찾아주고 불러주는 이는 얼마나 되었을까? 살아생전에는 불러주고 찾는이가 줄을 이었다는데..........
탄생 108주년(음력 9.16)을 눈앞에 두고 조선시대 최고 대중 인기 명창이었던 이화중선을 처음 조명하는날!
일제강점기 때 최다의 음반취입(160여장)과 최다의 음반 판매량을 기록한 인기명창 이화중선!
평생동안 공연 수입의 30%이상을 지역의 어려운 이웃돕기에 사용한 자선예술사업가 이화중선!
선천적인 장애(갈비뼈 한개가 없고 유방이 없는 불임환자)를 극복하고 대성한 여성 이화중선!
배설향 ㅡ이화중선 ㅡ박초월 ㅡ안숙선등 당대 최고의 남원출신여성 명창의 선대 여류명창 이화중선은 남원이 길러낸 최고의 인기 명창이었다고 한다.
탄생 108주년(음력 9.16)을 눈앞에 두고 조선시대 최고 대중 인기 명창이었던 이화중선을 처음 조명하는날!
일제강점기 때 최다의 음반취입(160여장)과 최다의 음반 판매량을 기록한 인기명창 이화중선!
평생동안 공연 수입의 30%이상을 지역의 어려운 이웃돕기에 사용한 자선예술사업가 이화중선!
선천적인 장애(갈비뼈 한개가 없고 유방이 없는 불임환자)를 극복하고 대성한 여성 이화중선!
배설향 ㅡ이화중선 ㅡ박초월 ㅡ안숙선등 당대 최고의 남원출신여성 명창의 선대 여류명창 이화중선은 남원이 길러낸 최고의 인기 명창이었다고 한다.

파란만장한 인생 역정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오직 판소리를 통하여 인생을 활짝 꽃피어 온 자랑스런 그녀의 삶은 나의 눈시울을 적시게 하는 날이었다.특히 재조명 행사 추진에 동참하면서 남원여성으로서 자존심도 상하고 부끄럽기도 했다.
인구의 절반이 넘는 남원여성들의 책무는 아닐까?
현대에 파묻혀 있는 과거 역사속의 여성들을 조명하는 일들이 활발하게 이루어질수있는 일이 선행되어야 할텐데 나는 능력이 없고......
이화중선은 1899.9.16전남 목포시 남교동 12번지(구 쌍교장터)에서 경주이씨인 아버지 이춘실과 어머니 김씨의 장녀로 출생했다고한다. 세살되던 해에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부산의 작은 할아버지댁에서 11살때까지 살다가 그 이후로는 남원시 천거동 100번지와 남원권번에서 성장하여 명창이 되었다고 한다.생활터전인 남원시 송동면 장국리,천거동 100번지(지금의 광한루 경내) 수지면 소재지,임실군 오수리등에 유적지가 남아있다고 한다. 어린시절 어머니를 여의고 이곳 저곳에 얹어 사는 그녀를 상상해보면 어느정도 짐작이 간다. 그러나 어려운 환경속에서도 열심히 공부하여 그의동생 이중선과 함께 유명한 꼬마 명창이 되어 어릴때부터 남원을 빛낸 인물이 아닌가! 그녀에게는 이화봉,이화성,의 동생도 있었으며 현재도 남원에 후손들이 살고 있다고 한다.
인구의 절반이 넘는 남원여성들의 책무는 아닐까?
현대에 파묻혀 있는 과거 역사속의 여성들을 조명하는 일들이 활발하게 이루어질수있는 일이 선행되어야 할텐데 나는 능력이 없고......
이화중선은 1899.9.16전남 목포시 남교동 12번지(구 쌍교장터)에서 경주이씨인 아버지 이춘실과 어머니 김씨의 장녀로 출생했다고한다. 세살되던 해에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부산의 작은 할아버지댁에서 11살때까지 살다가 그 이후로는 남원시 천거동 100번지와 남원권번에서 성장하여 명창이 되었다고 한다.생활터전인 남원시 송동면 장국리,천거동 100번지(지금의 광한루 경내) 수지면 소재지,임실군 오수리등에 유적지가 남아있다고 한다. 어린시절 어머니를 여의고 이곳 저곳에 얹어 사는 그녀를 상상해보면 어느정도 짐작이 간다. 그러나 어려운 환경속에서도 열심히 공부하여 그의동생 이중선과 함께 유명한 꼬마 명창이 되어 어릴때부터 남원을 빛낸 인물이 아닌가! 그녀에게는 이화봉,이화성,의 동생도 있었으며 현재도 남원에 후손들이 살고 있다고 한다.

이화중선은 최고의 이론을 겸비한 김세종 ㅡ장재백 ㅡ장득진 ㅡ 계보의 동편제 명창으로부터 공부했고 장득진 이재삼 김준팔등 남원인으로서 이화중선을 후원한 후원자들이다.필자는이화중선을 후원한 후원자들이 이화중선 이상 위대한 분들이라는 생각을 가져본다. 이분들이 후원하지 않았다면 지금의 이화중선이 있었을까?
의견이 분분하던 출생지와 생장지가 증명이 되었고 문헌이나 고증을 통해 당대의 최고 인기 명창이었음이 증명되었으니 이젠 어떤 조직을 통해서든 재조명사업이 이루어 져야한다고본다. 특히 그녀의 특기인 민요와 판소리등의 전체적인 소리가 남원의 예술적 토양위에서 성장 된 명창임이 분명해졌음을 볼때 우리 남원은 그녀를 통한 역대계보가 뚜렷한 여성명창들을 다양한 각도에서 재조명하여 유일하게 남아있는 동편제 판소리의 계보가 후세까지 이어져 세계적인 여성인물로 재조명해야한다고본다.
의견이 분분하던 출생지와 생장지가 증명이 되었고 문헌이나 고증을 통해 당대의 최고 인기 명창이었음이 증명되었으니 이젠 어떤 조직을 통해서든 재조명사업이 이루어 져야한다고본다. 특히 그녀의 특기인 민요와 판소리등의 전체적인 소리가 남원의 예술적 토양위에서 성장 된 명창임이 분명해졌음을 볼때 우리 남원은 그녀를 통한 역대계보가 뚜렷한 여성명창들을 다양한 각도에서 재조명하여 유일하게 남아있는 동편제 판소리의 계보가 후세까지 이어져 세계적인 여성인물로 재조명해야한다고본다.

가슴이 벅찬 오후였다.
"이화중선의 판소리 음반과 음악"에 대하여 발표해 주신 동국대 배연형교수님께서는 "이화중선의 인생론을 조명"한 김용근씨를 남원의 보물로 표현하시며 판소리계가 김용근씨의 연구자료를 통해 재정립 될 것으로 본다고 말씀하시면서 그의 열정과 노고에 대하여 극찬을 하셨다.
재조명 행사에 참석한 많은 분들도 김용근씨의 다년간 연구 끝에 얻은 이화중선을 오늘을 통해 알게 되었다며 기념사업회라도 만들어 지속적인 연구를 해야 하지않느냐는 의견이 있었으며 뜻깊은 자리를 새삼느꼈다고 한다.
"이화중선의 판소리 음반과 음악"에 대하여 발표해 주신 동국대 배연형교수님께서는 "이화중선의 인생론을 조명"한 김용근씨를 남원의 보물로 표현하시며 판소리계가 김용근씨의 연구자료를 통해 재정립 될 것으로 본다고 말씀하시면서 그의 열정과 노고에 대하여 극찬을 하셨다.
재조명 행사에 참석한 많은 분들도 김용근씨의 다년간 연구 끝에 얻은 이화중선을 오늘을 통해 알게 되었다며 기념사업회라도 만들어 지속적인 연구를 해야 하지않느냐는 의견이 있었으며 뜻깊은 자리를 새삼느꼈다고 한다.

남원이 품격높은 문화,예술,관광의 도시가 되려면 예술가들의 자취를 키워야한다 그리고 그 중심에 동편제 판소리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셨다.역사성과 정체성이 훼손되고 있는 남원의 국악문화는 국악인물사업을 등한시한 것이 분명하게 드러났다. "국악의 성현을 찾기란 한강에서 바늘찾기보다 더 힘들었다"며 그동안의 애로를 털어놓은 김용근씨는이화중선을 찾기위해 호적을 10만건을 뒤적였고 주말마다 수원을 47번을 찾아 다녔으며 오늘의 발표는 25년동안 연구한 내용중의 일부인듯했다.필자 또한 타지역의 열정이 부러웠다.

"소리의 출생은 남원이다"예술적 성공자며 국민지향적인 이화중선은 여성으로서 가슴 아픈 장애속에서 "꽃중의 꽃이다"라고 서슴치 않고 이야기하고싶다
일본의 가와타나 공장 사세보진수부 수뢰 병기제조창의 일제 강제동원 근로자들을 위한 위문공연 가면서 일본 나가사키현 동피저군 강상촌 적자비 앞바다에서 배가 뒤집혀 1944.1.1.오후 7시.사망하여 화장한 뒤 임실군 오수면 공동묘지에 안치되었다고하나 현재는 전주 남원간 도로가 만들어지면서 없어졌다고 하니 얼마나 한탄스러운 일인까?
작지만 큰 행사였다. 동편제 판소리가 처음 출생한 곳이 남원이었던만큼 그처음 마음이 남원시민에게 다시 살아나길 빌어본다.
일본의 가와타나 공장 사세보진수부 수뢰 병기제조창의 일제 강제동원 근로자들을 위한 위문공연 가면서 일본 나가사키현 동피저군 강상촌 적자비 앞바다에서 배가 뒤집혀 1944.1.1.오후 7시.사망하여 화장한 뒤 임실군 오수면 공동묘지에 안치되었다고하나 현재는 전주 남원간 도로가 만들어지면서 없어졌다고 하니 얼마나 한탄스러운 일인까?
작지만 큰 행사였다. 동편제 판소리가 처음 출생한 곳이 남원이었던만큼 그처음 마음이 남원시민에게 다시 살아나길 빌어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