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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적답사]

덕과면을 찾아서 (작성중)

글쓴이 : 양경님 날짜 : 2007-12-12 (수) 10:56 조회 : 3241
초겨울에 내린 비를 벗삼아 남원투데이 문화유적 답사팀은  3.1운동의 발상지인 동해골이 있는 덕과면을 찾았다.최성연 계장님의 도움으로 시간도 절약 되었고 헛수고도 하지않아 아주 효과적인 답사라고 할까? 먼저 덕과면의 연혁을 보면  덕과면(德果面)은 덕고방(德古坊)과 적과방(迪果坊) 등 2개 방이 있었던 지역으로, 1897년(고종 34)에 8도를 13개 도(道)로 개편하면서 방이 면(面)으로 바뀌었고, 덕고면이 덕과면의 중심이 되었다고 한다.
본래 남원군(南原郡) 덕고면(德古面) 지역으로 9개 리(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통페합때 덕고면의 신정(新亭), 월평(月坪), 고정(高亭), 수촌(藪村), 용주(龍珠), 금암(金岩), 내동(內洞), 갈산(葛山) 배산(盃山), 사곡(沙谷) 등 10개 리(里)와 적과면의 만적(晩迪), 도촌(島村), 작소(鵲巢), 비내(扉內), 양선(陽先), 신촌(新村), 오현(梧峴), 상율(上栗), 하율(下栗) 등 9개 리, 그리고 고절면(高節面) 다산리(茶山里) 일부, 지사면(只沙面 : 현재 임실군 지사면으로 과거에는 남원부 48방의 하나였다.) 현계리(玄溪里) 일부, 임실군 둔덕면(屯德面) 용정(龍井), 대촌(大村)의 각 일부, 장수군 외진전면(外眞田面)의 시목리(枾木里) 일부를 병합하여 덕고와 적과의 이름을 따서 덕과면이라 하고 만도, 신양, 사율, 고정, 덕촌, 금암, 용산 등 7개 리로 개편하고 면청사를 사율리에 두었다.
1954년 4월 20일 공비들의 습격으로 인하여 청사가 불에 없어지자 고정리에 있는 농협창고로 잠시 면 청사를 옮겼다가 1980년 12월 30일 청사를 세워 고정리 522번지로 이전하게 되었고 1983년 2월 15일 행정구역 개편에 의해 금암리(북금, 남금, 내동 등 3개 마을)가 임실군 오수면으로 떨어져 나갔다. 그 후 1995년 1월 1일 남원시 군 통합으로 군이 폐지되어 남원시 덕과면이 되었다. 
 
남원시에서 북서쪽으로 15㎞지점인 동경127도 24분, 북위 35도 41분에 위치하고 있어 남으로는 사매면과 북으로는 임실군 오수면과 동북으로는 지사면과 접하고 있으며 남원시의 관문이다. 국도 17호선(여수∼청주)이 남북으로 관통하고 있으며 군도 14호선(보절 황벌 ∼ 오수)이 오수와 이어주고 있어 교통이 편리하다.
 
총면적은 2,375 ha로써 남원시의 3.2%를 차지하고 있어 비교적 작은 면에 속한다. 전답별로 비율은 논이 641ha로 농경지의 27%, 밭은 212.6ha로 농경지의 9.0%이다. 임야는 1,202ha로써 총면적의 50.5%, 대지가 250ha로써 10.5%, 기타가 70.1ha로 3.0%이다.
1997년 현재 가구수는 총 578호(농가 492호, 비농가 86호)로 농업을 주로 하는 작은 면으로 인구는 총 1,749명으로 남자 889명, 여자 860명이다, 성씨 별로 보면 이씨 96가구, 김씨 84가구, 소씨 62가구, 기타 성씨 336가구로 씨족마을이 많으며 주민의 생활권은 부근에 오수가 있으므로 오수권, 보절권, 덕과권으로 나누어져 있다.
 
시의 동북방 중간지대에 위치하여 내륙성기후에 속하며 소백산맥이 면의 북방에 뻗쳐 있어 그 분수령인 해발 450m의 성산봉에 속하고 평균고도 200-300m에 위치하여 비교적 야산지대다. 산림은 총면적의 50.5%를 차지하고 있지만 대부분 구릉지대여서 개발에 용이하여워 과수 및 낙농업 단지가 늘어나 산지를 이용한 소득 증대에 기여하고 있다. 
 
미맥위주의 농업을 주로 하고 있어 100% 농림업이며 토산물로는 고정리와 용산리 등지에서 생산되는 맛좋고 질좋은 황금배가 남원시장의 70%를 점유하고 있다.
 
4.9㎞의 국도 17호선이 남북으로 통과하면서 남원-전주간 교통을 원활하게 하고 있으며, 면 중심부를 통과하는 5.5㎞의 중부순환도로가 고정, 덕촌, 용산리를 지나 임실군 오수면과 연결하고 있으며, 보절선인 시의 군도 14호선이 율천, 신양, 만도를 지나 보절과 연결하여 주고 있어 사방으로 원활한 소통이 되고 있다. 또한 총 578세대 가구중 전가구에 전화가 설치되어 있어 100% 이용하고 있다. 
 
 문화재는 호암서원(문화재자료 55호)과 이상길 영정(보물 제792호) 있으며
효열비는 소윤택효열비, 김이구효열비가 있다.
 
관내 보건위생시설은 3개(보건지소, 보건진료소)가 있으며 초등학교는 덕과초등학교가 있고  금융기관은 덕과농협, 덕과우체국이 있으며 사매지구대 덕과분가 있다.종교계는 기독교로 신양교회, 덕과중앙교회, 덕과교회, 시온성교회가 있고 불 교는 성도암, 약수암이있다.또 주요 산업체로는 춘향미,매원식품, 롯데목장 등이 있다.


 덕과생활체육관은
 위치 :덕과면 고정리 월평마을 
 면적 : 567㎡
 특징 : 실내 주민체육증진 공간으로 남여노소 모두 이용할 수 있는 게이트볼, 배드민턴, 농악연습 등으로 활용할 수 있는 최적의 운동 공간
 
  호암서원은
  문화재 자료 55호 
 전라북도 남원시 덕과면 만도리
 이 서원은 조선 정조 13년(1780)창건 되엇는데 고정 5년(1868) 대원군의 서원철폐때 훼손되기도 하였으나 현재 사당 1동과 행랑 1동이 각각 세워져 있다. 
 
 
 이상길영정
 보물 792호 
 전라북도 남원시 덕과면 사곡마을
 이 영정은 낮은 사모에 담홍색 단령을 입고 공수 자세를 취하고 의자에 않은 좌안 8분면의 전신상이다. 10평정도의 사당과 영정 1점이 있고 영정은 후손들의 뜻에 따라 현재 전주박물관에서 위탁 관리하고 있다.
 
 
 소윤택효행비
 전라북도 남원시 덕과면 만도리 
 정신착란으로 가출한 부모를 동분서주하다 찾아 모셔오니 여러 사람이 탄복하여 1924년 남원, 나주, 진주, 태인, 향교 등 4종관통문을 인정받아 문중에서 소윤택효행비를 건립하였다 한다.
 
 
 김이구 효열비
  전라북도 남원시 덕과면 용산리
 1803년 효행이 지극하여 향교의 후원으로 문중에서 효행비를 건립하게 되었다 한다
 
 

 덕과면실내체육관
  위치 : 덕과면 덕촌리 덕동마을
 면적 : 30평
 특징 : 피로회복실(찜질방),샤워실 및 건강관리 기구 12여종 비치하여 농업인의 피로회복과 체력증진을 위한 장으로 활용

 남원 3.1운동 기념탑
 위치 : 남원시 덕과면 사율리 동해골 
 면적 : 598.1m
 특징 : 86년전 일제의 강압적인 국권 창탈이후 국권회복을 위해 남원시 최초로 대한독립만세을 외침으로서 민족자존의 기치를 드높혔던 곳으로 재현행사를 통하여 선열들의 위엄을 기리고 조국애와 한민족의 긍지를 널리 홍보하고 자라는 세대들에게 나라사랑의 산교육장으로 역할
 
 
 성적봉
 위치 : 남원시 덕과면 덕촌리 덕동 
 면적 : 598.1m
 특징 : 주능선길이 암봉과 암릉 및 기묘한 바위로 어우러져 묘미가 있는 바윗길로 일명 설산행코스로 단연 돋보이는 산이며, 아기자기한 산행묘미가 있는 산이다

 

 
이 마을은 예전에 당산제를 지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지내지는 않는다고 한다. 원래 당산나무는 느티나무로 마을입구 오른쪽에 있으며 가로 124㎝, 세로 117㎝의 제단이 있고 나무둘레는 436㎝로 수령은 350여년 정도 된 나무로 제관을 선정할때는 상주는 출산이 있는 집안은 안되고 깨끗한 사람으로 선정 했다고 한다, 제물은 돼지머리나 일반제사와 같이 지내는데 비용은 쌀을 한되씩 거출하여 충당했다고 한다. 제일은 정월 대보름날에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특히 당산은 산신령을 모시는 곳이기에 당산은 금줄을 치고 제관은 집에도 금줄을 쳐서 황토를 뿌렸다고 한다. 대보름날 지내되 닭이 울 때까지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1995년 1월 1일 남원시 군 통합으로 군이 폐지되어 남원시 덕과면이 되었다. 
 
*조선 선조때 벽진(碧珍) 이씨(李氏)의 중 시조인 이상길(李尙吉)은 대사헌(大司憲)까지 지냈는데 이 분은 온화하고 강유를 겸비하여 그른 일에는 굴하지 않는 성품이었다. 인조 때 병자호란이 일어나 호병(胡兵)에게 항복을 하니 의분을 참다 못하여 강화섬에서 자결을 하였다. 대사헌의 후손이며 참판을 지낸 이지광(李志光)과 이지량(李志亮)형제가 1636년 남원(南原) 덕과면(德果面) 시곡촌(沙谷村)에 이사와 이곳 황무지를 개간 하였고 틈만 있으면 이 마을 사람들에게 무엇을 남겨 줄까 고심한후 나무를 심기로 결심하고 소나무를 심었다. 이렇게 소나무는 세월이 흘러 어언 300년을 지나 오늘까지 자라오니 풍경도 아름답거니와 이제는 마을의 보물이다. 처음 소나무를 심을때는 100그루정도 심었다하는데 세월이 흐른 지금은 70여그루가 심어져 있고 소나무 밑 입석이 있는 자리에 강감찬 장군이 지나가다가 이곳에서 쉬면서 뱀과 개미가 많아 호령을 하자 그 뒤 소나무 밑에는 개미가 없어졌다 한다. 오늘날 대사헌의 후손은 이 소나무처럼 무성하고 사곡 벽진이씨하면 사곡 송림을 연산케하고 지금도 처음보는 낯선 나그네들이 소문 따라 사곡리를 찾아드는 일이 흔하다 한다.
 
이 마을에는 마을앞 입구에 400여년된 느티나무가 있다. 당산나무는 높이 17m 둘레 770㎝ 정도이며 대개 7월 백중에 제사를 지낸다 한다. 시간은 오전 10시이고 제물은 돼지머리와 상실과 등이며 일반제사와 같이하고 목적은 마을의 안녕과 평화를 위해 제사를 지내며 제관은 깨끗한 사람으로 선정하되 간혹 대회장과 계원 중에서도 선정한다 그런데 당산제를 지내기전에 먼저 생굿을 하고 생굿은 농악이며 가뭄에도 물이 끊어지지 않고 홍수가 나도 오물이 나오지 않게 해달라는 기원을 하며 축문도 낭독하기도 한다. 비용은 마을 공동의 기금으로 또는 자산가에게 시사을 받는다고 한다 南原시 德果面 沙谷里 - 전북 남원시 덕과면 사곡리 - (벽진이씨 집성촌)

本來 南原의 德古面 沙谷里 地域으로 1914년 行政區域統廢合때
迪果面의 上栗里, 下栗里와 德古面의 沙谷里 一部가 倂合되어
沙谷과 上栗의 이름을 따서 沙栗里라 하고 沙栗里에 編入되었다.

1580년경 碧珍(벽진) 李氏 中始祖인 忠肅公(충숙공) 李尙吉이 明堂을 찾으러
全國을 두루 다니다가 이곳 沙谷 땅에 이르러 感歎하고
둘째아들 계를 이곳에 살도록 하여 오늘의 마을을 形成하게 되었다.

이 마을의 名稱은 1580년경 李尙吉이 처음 터 잡을 때 地勢를 풀이하되
"배가 짐을 가득 싣고 있는 形局" 이라 하여
마을 이름을 속칭 "삽실" 이라 부르게 되었는데
부근의 작은 마을 새터와 소나무정을 합하여 "沙谷"이라 부르게 되었다.

원래는 구 韓末까지 德古방이라 하였는데 후에 적과방과 倂合하여
德果面이 되고 그때 面事務所가 이 마을에 設置되어 1954년까지 있다가
이 해 共匪의 奇襲攻擊으로 面 廳舍가 불타 없어지면서부터 마을의 發展이 침체되고 面 廳舍는 1955년 月平리로 옮겨갔다.

마을 뒤 1,500여평의 넓은 동산에는 약 350년 이상 자란 소나무 숲이 우거져
여름철 老人들의 휴식처로 이용되기도 하여 우리고장 명물로 되어 있는데
이 松林은 이른바 參判林이라 전하는 名所이며 天然記念物 크낙새가 서식하고
松林앞에는 碧珍李氏(벽진이씨) 忠肅公 李尙吉의 影幀을 奉安한
忠肅公 부조묘인 祠堂이 세워져 있다.

또 높이 88cm, 두께 43cm규모의 입석이 있는데 이 자리에 이성계가 쉬면서
개미와 뱀이 많아 호령을 하자 그 뒤부터는 없어졌다고 한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마을의 安寧과 平和를 가져다주는 돌이라 믿고 있다.

(南原誌 에서)

ㅡ글쓴이 벽진이씨 35세손 이상원ㅡ

http://myhome.naver.com/sangwon2000/
[이상원의 홈입니다. 클릭하시고 방문하세요]

++ 자유게시판에 있던 이상원님의 글을 옮겨왔습니다 ++ 
종    목  보물  제792호 
 
명    칭 이상길초상(李尙吉肖像) 
 
분    류  유물 / 일반회화/ 인물화/ 초상화 
 
수량/면적  1폭(幅) 
 
지 정 일  1984.08.31 
 
소 재 지  전북 남원시  (국립전주박물관 보관) 
 
시    대 조선시대
 
소 유 자 이정봉
 
관 리 자 국립전주박물관
 
 
일반설명 | 전문설명
조선 중기 문신인 이상길(1556∼1637)을 그린 초상화이다. 선생은 선조 18년(1585) 문과에 급제한 뒤 평안감사, 공조판서 등을 역임하였다.

이 초상화는 가로 93㎝, 세로 185㎝의 크기이고 의자에 앉은 모습을 그렸다. 머리에는 낮은 사모를 쓰고 붉은색의 관복을 입었으며, 두 손은 소매 안으로 마주 잡아 보이지 않는다. 옷의 옆트임 안쪽으로 보이는 속옷과 양쪽 어깨의 기울기를 달리해 안정되어 보이는데, 이러한 자세는 조선 중기 초상화에 나타나는 특징이다. 그러나 얼굴에 있어 윤곽선의 농도를 다르게 하여 표현하는 방법은 조선 후기에 나타나는 수법으로 후대에 다시 그려진 것으로 보인다.

비록 모본으로 추정되기는 하지만 원본을 따라 충실하게 그렸고, 필체가 섬세하고 보관상태도 양호하여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이상길(李尙吉)(1556∼1637)은 조선의 문신(文臣)으로 자(字)는 사우(士祐), 호(號)는 동천(東川)이다. 벼슬은 공조판서(工曹判書)에 이르렀으며, 인조(仁祖), 14년(1636) 병자호란(丙子胡亂)이 일어나자 묘사(廟社)를 따라 강화(江華)에 들어갔다가 이듬해 청군(淸軍)이 강화에 육박하자 자결(自決)했다.

이 영정은 낮은 사모(紗帽)에 담홍색(淡紅色) 단령(團領)을 입고 공수자세(拱手姿勢)를 취하고 의자에 앉은 좌안7분면(左顔七分面)의 전신상(全身像)이다. 상용형식면에서 단령의 양쪽 트임새로 살짝 내비치는 과(과)와 첩리(帖裏), 양쪽 어깨의 경사진 각도를 달리함으로써 앉음새를 매우 안정되게 나타내어 조선 중기 초상화(肖像畵)의 전형적인 특색을 보여준다. 그러나 안면(顔面)의 세부(細部) 묘사에 있어서는 이미 골상학(骨相學)에서 말하는 삼양(三陽), 삼음(三陰), 누당(淚堂), 와잠(臥蠶)을 경계로하여 선염기(渲染氣)를 짙게 안배함으로써 안면의 고심세(高深勢)를 나타내려는 도식화된 의도가 강하게 나타나 있어, 이상길 재세시(在世時)의 묘법보다는 좀 더 후기의 초상화법을 보여준다. 따라서 이 영정은 원본을 충실히 그려낸 이모본(移模本)으로서, 안면처리에만 이모시(移模時)의 시대색(時代色)이 반영된 것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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