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집은 1700년대말에 지은 것으로 남북으로 긴 장방형으로 된 대지는 남으로 비탈져 있어서 사랑채는 2m나 되는 높은 축대위에 세워졌으며 문간채는 사랑채보다 한층 더 낮은 대지위에 섰다. 건물은 ㄷ 자형 안채와 전면에 세워진 일자형의 사랑채를 중심으로 안채 서측에 고방채(3칸), 서쪽광(정면 3칸 측면2칸)이 있으며 동측에 있던 3칸의 광채는 근년에 철거되었다. 사랑채 서측에는 중대문(4칸)이 이어 달렸고 사랑채와 문간채 사이의 동측에 행랑채(4칸)가, 그리고 이에 마주한 서측에도 마판채(3칸)가 있었으나 철거되었다. 문간채는 7칸이었으나 현재는 5칸만 남아 있다. 대부분 건물의 원형이 잘 보존되고 있으며 건물의 배치 등은 전북지역 상류층 가옥의 전형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평면 배치상 특이점은 안채 서측에 마루와 방을 두어 주부의 생활이 편리하도록 배려하고 대청 동측에 도장을 설치하고 건너방을 아래쪽에 두어서 채광이 잘 되도록 하였다. 또 사랑채에는 방을 일곱 개나 두어 대청보다는 실제 주거 공간의 확대를 꾀하고 있는 등 매우 치밀하고 깊은 배려 끝에 이 집을 지었음을 알 수 있다. 사랑채는 매우 호화롭게 지어졌는데 전면에 세워진 기둥이 모두 팔각기둥을 사용하고 있어 매우 희귀한 예이며 주초도 이러한 기둥에 걸맞도록 정성껏 다듬어진 것을 사용하였다. 아랫사람들이 거주하는 문간채 동쪽에 대청 한 칸을 둔 것은 다른 상류가옥에서는 볼 수 없는 예로서 하층민에 대한 특별한 배려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자료제공 : 남원문화원)
부가 정보+
이 가옥은 조선 말기 박동식이 처음 세웠는데 지금은 그의 7대손인 박인기씨가 살고 있다. 산을 등지고 앞이 훤하게 트인 곳에 자리하고 있으며, 여러 채의 건물이 산자락의 급한 경사면을 따라 앞뒤로 자리하고 있어 높이를 달리하고 있다. 대문을 들어서면 넓은 마당이 보이며, 그 뒤편의 바깥채와 중간문은 각기 높이 쌓은 축대 위에 세웠다. 안채에도 아래의 공간을 외양간으로 사용할 만큼 높은 받침부를 두었다. 건물들이 높이 솟아 있음에도 주변 경관과 어우러져 고풍스러운 멋과 그윽한 정취를 자아내어 뛰어난 조형미를 보여준다.
답사 정보 (1:50,000 남원)
▶ 심신수련(心身修練)을 통해 ‘~을 하기 위한 진정한 삶의 자유(自由)’를 누릴 수 있는 계기를 지속적으로 마련하고자 백두대간 만복대 부근 천복대↔영제봉↔앞밤재↔견두산에서 뻗어내린 산줄기의 끝자락 호두혈(虎頭穴)에 위치한 수지면소재지 내호곡 몽심재에 도착하고...
▷ 죽산 박씨 중시조 松庵 朴門壽(송암 박문수)의 愛詩에서
隔洞柳眠元亮夢(격동유면원량몽)
登山薇吐伯夷心(등산미토백이심)
“마을을 등지고 늘어서 있는 버드나무는 도연명(元亮)이 꿈꾸는 듯하고
산에 오르니 고사리는 백이숙제의 마음을 토하는 것 같다.“
이름을 딴 몽심재(夢心齋,중요민속자료 제149호)는 1700년대말 수지면 초리에서 이주한 박동식이 지은 집으로 현재는 7대손(=6세손)인 박인기(75세)가 살고 있다. 몽심재의 95세 안주인은 서울에 올라가 계시고...
▷ 몽심재는 노고단↔만복대↔견두산에서 좌청룡 줄기가 뻗어 내려와 앞에 낮은 安山이 있는데 안산이 가까우면 발복이 빠르다. 반면에 답답하기에 사랑채를 높여서 안산이 눈높이에 위치하도록 하였다. 옛날 몽심재는 순천, 구례, 함양 사람들이이 과거 길에 머물다가 김제 금구(인동 장씨 중) 서도 장씨 집에가 다시 머물다가 한양으로 갔다고 한다.
▷ 현재 虎谷(홈실, 호옴실)박씨는 원불교 교헌의 초석을 다진 분등 많은 인재 들이 많고...
▷ 몽심재는 山谷아래에 위치하며 전체적으로 ㅁ자형(터진 a 자형)이며 5칸접집(경상도는 주로 홑집)이며 쪽문이 많아 햇볕과 공기를 많이 받을 수 있다.
▷ 몽심재를 75년이나 지키던 할머니는 서울 아들네 집에 가 계시여서 아쉬웠지만 텃밭의 소채류가 할머니의 손길을 느끼게 해주고...
▶ 고려말 충신 두문동(杜門洞) 72인의 영수이며 고려 3老(이색, 박문수, 정몽주)인 죽산 박씨 중시조 松庵 朴門壽(송암 박문수)의 손자 박자량이 처가 동네인 수지면 초리에 정착하였다. 이후 300년 이상이 지난 후인 250여년전 박원유가 작은아버지를 모시고 호음실로 일가가 이사왔다. 이 때 어머니의 좋은 묘터와 몽심재 집터를 구해 집을 지어 살면서 천석꾼(6인가구 200가구 부양 가능)이 되어 이 지방의 대표적인 名文家가 되었는데...
▷ 솟을대문 삼강문(三綱門) 글씨는 박문수의 이군불사(二君不仕)의 충절(忠節)과 많은 후손들의 충효(忠孝)의 숨결을 느끼게 해주고....
▷ 조선 21대 영조때 신원(伸寃)이 되고 23대 순조때 개성에 사액서원이 설립된 후 이 곳에 부조묘(不?廟, 일명 不遷位廟)가 건립되어 매년 향사(享祀)를 지내고 있고..
▷ 현재는 매우 건강하고 양반 가문의 전통전인 접빈객(接賓客)과 봉제사(奉祭祀)의 미덕을 고히 간직하고 계신 박환진(20세손, 81세)님이 부조묘와 종가집를 잘 관리하고 계셔서 깊은 신뢰감이 들고...
▶ 종가집 부조묘와 담을 접하고 있는 박형기(21세손, 626-4288)님의 터진 ㅁ자 고택의 250년전에 지어진 안채와 70년전에 지어진 사랑채(丁丑年, 1938)는 지방유형문화재로 지정된 후 너무나도 잘 보존되어 있어 가슴뿌듯하고...
▷ 작고 아담한 텃밭에는 무우, 대파, 소파, 솔(정구지), 고구마, 감자, 생강, 가지, 상추, 호박, 당근, 고들빼기, 머우, 갓, 팥, 마늘, 옥수수, 양파와 토종닭들이 일행들에게 큰 감탄을 자아내게 하고...
▷ 인심 넉넉한 주인이 내어주는 사랑채(丁丑年, 1938년 건축)에서의 문회(文會)를 기약하면서...
▷ 78세 할머니의 텃밭에서의 즐거운 콩 수확을 부러워하면서...
▷ 수지 호음실 박씨 수입의 1/3은 집안을 위해, 1/3은 손님 접대를 위해, 1/3은 주변 농민들을 위해 사용했다는 사실을 가슴속 깊이 담고 도통동 시청 인근 솜리식당(626-1671)에서 뻐다귀 전골 맛과 여유로운 일행들의 마음을 벗삼아 이야기 꽃을 피우고...
☞ 주생면 상동리 윤영채 가옥(중종 6년, 1511년) 답사때 다시 만날 것을 기원합니다. [끝]
(참고자료 1) 쌀 단위 어떻게 다른지? 그리고 천석꾼과 만석꾼의 구분 시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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