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원시 산내면 한지 지킴이이신 신평식님을 만난 시간은 4시쯤
민족의 영산 지리산의 풍경은 평화롭기만하다.한지의 소중함은 이야기 안해도 다안다.
비록 우리나라 한지의 기록은 남아있지 않지만 한지는 우리나라의 풍토에 맞게 만들어진 종이이다. 우리 민족은 새로운 문물이 들어와도 그것을 우리정서에 맞게 발전시켜서 우리 것으로서 독특한 문화를 형성해 왔다. 현재 우리나라 종이는 한지와 양지로 나뉘며 한지는 수부지(手浮紙)와 기계한지로 구분된다고 하 는데산내면의 한지가 수부지(手浮紙) 다.
한지의 구체적인 의미와 정의는 여러 가지 주장이 있지만 필자는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첫째, 양지의 반대 개념으로 서양의 것과 구별하기 위한 것이라는 주장하기도 하고 둘째,우리나라에서 만든 전통 종이는 서리가 내릴 때 원료를 거둬서 찬물에 좋은 종이를 만든다하여 찰한(寒 )을 써서 한지(寒紙)라고 하였다는 주장하기도 하다.특히 중국의 화지, 일본의 왜지에 대응하여 우리나라 수부지의 이름이라는 주장과 작고하신 온두현 선생이 대한민국의 한(韓)을 따서 지었다는 주장도 있다.
한지의 용어에 대한 구체적인 문헌 자료나 기록은 1950년 이전에는 어디에도 찾아 볼 수 없으나 어떻게 형성이 되었든 한지는 지금 모든 사람들에게 우리나라 고유 종이의 대표 언어이다.
. 한반도의 제지 기원을 보면 한지는 중국의 후한시대(AD 105년) 채륜에 의해 발명되었다고 알려져 왔다. 그 후. 제지술은 우리나라에 전해 졌지만 언제 도입 되었는지는 문헌상으로는 알 수 없으나 학자들에 의해 빠르게는 3C경에서 4~5C, 늦게는 6C에서 7C 까지 보고 있다. 아직까지도 온갖 추측이 난무 하다.
지금까지 최고(最古)로 거론되는 것은 1931년에 발굴된 낙랑군 남정리의 제 116호 고분인 채협총에서 귀중한 유물인 채협칠기가 나왔는데, 여기에서 희미하게 종이와 비슷한 자료를 찾을 수 있었는데 낙랑시대(BC108 - AD313)는 적어도 400년의 연도 폭이 존재한다고 한다.. AD313년 부근으로 연도를 추측해보아도 오래된 것이지만 중국에서 유입 된 것인지 국내에서 제작된 것인지는 알 길이 없다. 또한 상해과학기술사가 발행한 책에서는 적어도 백제의 왕인박사가 논어와 천자문을 일본에 전수한 AD 285년 이전에 이미 종이가 들어 왔을 것이라고 전하고 있다. 일본에 전수 할 만한 기술이면 상당한 수준에 올라왔을 것이라고 보고 있고 AD 200년에 제지술이 시작되었을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3C말부터 4C말까지 중국대륙에서 난리를 피해 우리나라로 온 이주민들이 많아 이들 중 종이기술을 알고 있는 자가 있다는 설이다. 위 사실들을 종합해 보면 2C에서 늦어도 4C까지는 우리나라에 제지술이 전래 되었을 것이라는 설이 가능하다.
닥섬유로 된 우리나라 종이를 중국에서는 ‘고려지’ 라는 통칭으로 사용되어왔다고 한다. 고려지를 누에실로 만든 것이 아닌가 착각할 정도였다니 매끄러운 종이였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음으로 한지는 국제적 명성을갖추었다는 증거일 것이다 . 우리나라 종이에 대한 신비적인 평가는 명의 원년(AD 1488)에 와서야 이 종이가 닥섬유로 뜬것임을 밝혀 내었다. 고려지는 아름다운 흰빛이 비단 같아 글씨를 쓰면 먹을 잘 받아 색깔이 선명하다고 알려져 왔으며 발묵(發墨)이 좋아 중국의 종이 하고는 비교가 안 된다는 우리종이에 관한 언급은 중국 문헌에 허다하다고 한다.
일본에서도 고려지를 수입하여 궁중을 중심한 상류사회에서 진귀하게 썼는데, 일본의 고대 여류소설 ‘겐지모노가따리’ 에는 고려지에 대한 언급이 3곳 나온다는데 “얇고 결이 고우면서 색깔은 화려하지 않으면서도 윤기가 도는 미묘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종이”로 여성들의 취향에 맞아 서사에 애용되었던 것이다. 명나라에서도 고려지의 특징을 “섬세하고 광체가 나고 매끄럽고(細白光滑)” 네글자로 요약하고 있다. 왜지(倭紙)도 유사하지만 고려지가 더 우수하다고 말하고 있어 우리것에 대한 자부심이 생기는 시간이었다.
특히 우리나라 한지는1945년 해방 후의 50년간은 한지공업의 붕괴과정이라고한다. 해방 후의 정치, 경제, 사회적 혼란과 6.25전쟁, 그리고 군사혁명이후의 선공업 후농업 정책 등으로 인하여 전통적인 농촌사회의 생산과 부업구조가 바뀌어 종이 일부를 제외하고는 농민들이 농한기에 부업으로 제조 하였다. 조선조말 이후 기계지와 중국지 또한 일본지에 눌려 거의 내리막길을 가고 있는 실정이다. 우리 종이는 창호지나 장판지 등으로 명맥을 이어가는 정도이다.
건축양식과 주거 환경의 변화는 그나마 남아있던 한지의 창호지와 장판지의 수요를 격감시켰으며 수요도 한정적이라 생산되는 종이도 품질이 썩 좋지 못하였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현대 한지산업으로 한지 제조업체의 대부분은 전라북도와 경상도에 집중 되어있다. 1936년의 경우 우리나라 한지의 총생산량은 90,111塊로 금액은 267만2,255원이였고 한다. 이 가운데 전라북도와 경상도가 75%이상을 차지하고 있었다.
1957년도 통계에 따르면 남한에 총 600여개의 한지 산업체가 있으며 주요 공장149개소의 생산량은 2,462톤, 금액은 15억 9,488만원 이였다. 한지산업은 계속적으로 하향세를 거듭하고 있었으며 1980년대 초 전주에는 약 40가구가 남아 한지를 만들었는데 주산품은 창호지와 초배지였고 연간 생산량은 500~700塊로 매출액은 1억 원 정도에 불과 했다.
10여년전 조사에 의하면 한지 공장의 생산 규모는 하루 1000장에서 4000장 정도이며 전북지역이 생산량이 가장 많았으며 대부분의 한지 공장은 영세규모의 공장이므로 공장수와 생산량은 비례한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종업원의 이동이 심하여 생산에 안정성이 없고 일정한 생산량 수준을 유지하기가 매우 어려운 실정에 있다. 노동조건이 3D산업에 속하여 젊은이들에게 인기가 없으며 인정이나 존경도 받지 못하는 비인기 직종에 속한다
한지공업의 주원료는 닥섬유이다. 그렇기 때문에 풍부한 닥섬유의 확보력이 공장의 성패를 좌우하게 되는데 공장 자체가 영세하기 때문에 대부분이 정기적인 지원을 적기에 받지 못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나라 한지공장은 이미 ‘100% 닥섬유’ 와는 거리가 먼 상태러고 한다. 그래서 정규 전통한지와는 거리가 먼 소위 짝퉁 제품이 한지라는 이름으로 생산 유통되고 있는 실정이다.
우리나라 한지산업의 앞으로 발전 방향과 현재 한지산업의 문제점으로는 시장의 빈곤성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의 생활 속에서 과연 한지와 연관되어 사용할 수 있는 곳이 얼마나 될지 생각해 본다면 아마도 손에 꼽을 정도 일 것이다. 우리에게는 우수한 문화유산은 있으나 유지할만한 시장이 없다. 일본의 경우 우리에게 배운 제지술을 수백 년 동안 독특한 방식으로 자기화 시키고 발전 시켜 현대 시장에 맞는 여러 시장을 확보 하고 있고 또한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다. 우리나라도 최근에 와서 한국공예문화진흥원에서 사업의 일환으로 북유럽에 한지展을 열어 우리나라 한지를 세계적으로 알리는 공헌을 하고 있으나 아직까지는 부족한 실정이다.
또한 정책의 문제로서 우리나라의 문화 육성 정책은 일시적, 일회성이 대부분이다. 문화유산이나 산업을 발전시키려면 그 밑바탕에 있는 의식 수준이나 문화의 기본적 틀을 다지고 나서 새로운 형태의 산업을 모색하는 것이 기본이다. 하지만 현재 우리나라와 남원의 문화 육성정책은 특정 부분에 대한 일시적인 지원으로 인하여 오히려 전통문화 발전에 폐해를 가져다주고 있다고 본다..
세계화 시대에 한지가 경쟁력을 갖기 위해선 전통적인 우리의 강점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는 전통한지를 다시 계승 특화시켜야 한다. 지원 또한 연구비 목적으로 하는 곳이 아닌 한지에 애착을 갖고 연구하는 사람 또는 비영리단체에 한지연구를 위탁하여 성과를 축적해가는 것이 산업화 전략보다 우선적으로 이루어야 한다.마지막으로 기본개념인식과 정립문제다.
전통한지의 세계화 과제에서 인식되어야 할 문제는 한지의 뿌리가 되는 전통한지 자체가 현재 거의 멸종 침몰상태에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전통한지산업 자체의 육성 재건과 정상화로써 그 기반 조성이 먼저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또 하나의 문제는 무엇이 한지의 정체이며 올바른 모습인가 하는 것이다. 산업의 기반인 국내 소비시장과 생산의 주체인 전통을 옳게 전수 받아 보전해 나가야 할 장인들 그리고 한지 원료인 닥나무를 재배할 수 있는 자연환경조건등이 모두 부족한 실정이다. 이 모든 것이 한지 산업의 현주소이며 심각하게 인식하여야 할 것이다.
따라서 한지 산업의 대책으로는 일단 먼저 피폐해진 전통한지를 시급히 발굴하여 복원과 연구에 힘써야 할 것이다. 21C에 살고 있는 우리로써 전통을 문제 삼는 다는 것은 거기에 고착되기 위해서가 아니고 그 핵심 기술을 흡수하여 현대에 맞게 재조명 재창조하기 위함이다. 다시 말해 전통을 잃지 않고 계승하여 발전시키는 일을 해나가야 하는데 기초 없이는 건물을 시공하는 것을 생각할 수 없듯이 우리의 전통한지가 바로 기초 역할을 맡아 다음 세대의 한지로 발전 해 나가야 하는데 그 중심선상에는 행정의 적극적인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고 본다.
지금까지의 한지산업에 대한 막연한 초보적 인식 수준을 가지고 한지란 무엇인가에 대한 명확한 개념정립과 이에 대한 종합적인 육성 대안에 대한 기준을 세워보았다. 오늘의 한지 산업의 쇠퇴는 단순히 기술 문제가 아닌 우리의 인식 수준의 문제인 것이다.
또한 한지 산업의 수준 향상과 국제 경쟁력 강화를 위하여 장기적인 순회기술지도로 근본적인 생산 현장의 의식 변화와 세부적인 작업표준화와 기술지도가 필요하다. 이것은 국제시장에 내놓을 만한 한지의 신제품 개발을 위해서 필요한 단계가 아닐까 한다. 현재 우리나라 한지 생산자들의 경제규모로 보아 기존 대형 국가연구기관이 한지 산업문제의 개선에 나서기에는 너무 한지산업이 영세하여 경제규모가 현저하게 차이가 난다. 그렇기 때문에 한지 산업 발전을 위해 뛰어들 학식과 경험을 가진 적임자의 육성이야말로 우선시해야할 과제가 아닌가 생각해보며
남원의 한지 산업의 전망이 필요함을 느껴본다. 앞서 언급한 문제점 3가지 모두를 고르게 발전시킨 좋은 예는 바로 일본의 화지 산업이다. 우수한 전통 화지를 생산하는 장인은 그 기술을 대를 이어 전수, 발전시켰으며, 국가에서는 지업시험장을 두어 새로운 기술과 특수지, 도구를 개발하고 검증하여 보급하고 산업의 기반을 닦는다. 이렇게 만들어진 화지를 일반 소비층이 소비하거나 해외에 수출하여 산업 기반을 만드는 것이다. 또한 일반인들의 화지에 대한 의식교육을 할 수 있는 화지 박물관이 일본 전역엔 많이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우수한 문화를 지녔지만 한지에 대해서는 후진성을 면치 못하고 있으며 특히 남원은 천혜의 좋은 환경을 갖고 있음에도 총제적 부실로 한지 산업을 발전시키지 못함이 시민의 한사람으로 부끄러울수밖에 없다.
일반적으로 한지는 싸게 대량으로 만들 수 있는 종이가 아니며 많은 사람이 사용 할 수 있는 종이도 아니다. 따라서 특별히 보존성이 요구되는 자료나 작품 혹은 예술성이 요구되는 공예품에 응용할 수 있고 자연 친화성을 요구하는 재료로 사용될 수 있는 환경이 도래되기를 빌면서 아쉽게도 시간을 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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