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원시내에서 서남쪽 8㎞에 위치하며,청정 섬진강 상류 지역으로 벼농사를 주업으로 하고, 포도, 복숭아, 배, 메론, 딸기, 오이, 느타리버섯, 새송이버섯 등을 생산하고 있는 주생면은 열린 공간으로 내가 태어난 면이다.제일 먼저 관심을 가져야할 면인데도 .......
오늘은 주생면 지당리 65-5번지에 소재해 있는 지당리 석불입상을 찾았다. 불신과 광배 대좌를 모두 갖춘 완전한 행태에 석조여래 입상으로 조각 수법으로 보아 고려후기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머리는 소발로서 육계가 높이 솟았으며 얼굴의 세부는 마멸이 심하여 잘 알수 없으나 네모난 형태의 강장한 인상을 주고 있다. 신체는 조각수법이 부드럽지는 않지만 넓고 각이 진 어깨로 인하여 장대하고 탄력적인 느낌을 준다. 통견의 법의는 유려한 U자형의 주름을 이루면서 아래로 늘어져 있으며 양팔에도 평행 옷자락이 몇가닥 주름을 이루면서 흘러 내리고 있는데 조각선이 깊고 뚜렷하다. 두팔의 팔꿈치 이하 부분은 별석으로 끼우게 되어 있으나 현재 결실되어 구멍만 남아 있는데 두팔의 위치로 보아 여원인.시무외인을 맺고 있었던 듯하다. 광배는 원형두광으로 불신과 하나의 돌로 되어 있는데 머리 뒷부분에 간략한 연화문이 새겨져 있을 뿐 그 밖의 부분에는 아무런 조식도 없는 간단한 형태를 취하고 있다. 대좌는 사각형으로 역시 아무런 장식없이 간단한 형태이다.이렇게 웅장한석불이우리면에 있음에도 그동안 무관심속에서 살아온 자신이 부끄러웠다.
이어 남원시 주생면 낙동리 산 15-6 에 있는 석조여래 좌상을 찾았다. 이 불상은 불신과 광배가 한돌로 조성된 석조여래 입상으로 고려전기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불신을 고부조로 조각되었는데 마별이 심하여 윤곽만 드러나 있다. 머리는 소발로서 커다란 육계가 표현되었으며 얼굴의 세부는 마별되어 자세히 알 수 없지만 전체적으로 둥글고 원만한 형태를 보여준다. 불신은 장대한 편은 아니지만 어깨는 둥글면서도 탄력감을 느끼게 한다. 법의는 통견으로 무릎 아래로 굵은 U자형의 옷주름을 그리면서 흘러 내리고 있으며 옷자락 아래로 두발이 드러나 있다. 두손 중 오른손은 가슴 부근에 대고 왼손은 배 부근에 대어 무엇인가를 들고 있으나 분명치 않다. 광배는 주형의 거시광으로서 내부에 도광과 신광을 뚜렷한 선으로 조각하고 밖에는 화염문 안에는 화문,연화문등을 유려한 조각수법으로 양각하였다. 얼마 전에는 무릎아래까지 묻혀져 있었으나, 근래에 대좌가 노출되어 불신, 대좌를 모두 갖춘 완전한 형태를 이루고 있다. 구천사(龜川祠)는 주생면 제천리 688에 소재해 있으며 문화재자료58호로 박춘성·박흥남·박연수 등 3명의 밀양 박씨 충신을 모신 사당으로 삼충사(三忠祠)라고도 한다.
양촌 박춘성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선조 25년(1592)에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왕의 수호를 맡았으며, 군사적인 작전을 여러 차례 왕에게 건의하기도 하였다. 그 공으로 1604년에 호성원종공신 3등에 올랐으며 아울러 밀산군(密山君)에 봉해졌다.구암 박흥남은 조선 중기 의병으로 일찍이 무과에 급제하였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동생과 함께 금산의 이치·웅치 등의 싸움에서 많은 공을 세웠다. 진주 전투에서 분투하였으나 성이 함락되고 김천일·최경회 등과 함께 전사하였다.철종 7년(1856)에 세운 이 사당은 앞면 3칸·옆면 1칸 규모의 건축물로 꾸밈이 소박하다.구천사는 남원시 주생면에 위치하고 있는데, 밀양(密陽) 박씨 3충신을 봉안하였다 하여 일명 삼충사(三忠祠)라고 하기도 한다. 이 사우(祠宇)는 철종 7년(1856년)에 창건되었다.
이곳에서 임진왜란 때 크게 공훈을 세움으로써 사후에 참판벼슬에 증직(贈職)되고, 밀산군(密山君)에 봉함을 받은 박춘성(朴春成)과 그의 손자로써 임진왜란때 전공을 떨쳐 선무훈(宣武勳)에 녹훈(錄勳)된 구암(龜岩) 박흥남(朴興男)과 송암(宋岩) 박연수(朴延壽) 형제를 배향하고 있다. 건물은 정면 1칸의 목조기와집이다.
유천서원(문화재자료52호) 용장서원(문화재자료53호)구천사(문화재자료58호)
윤영채가옥(문화재자료117호)와 비 지정문화재인 비홍산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