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너의 산이 아닌
우리들의 지리산일 때......
우리 남원은 춘향이를 너무 사랑했기에 지리산을 제대로 보고 가꾸지 못한 것은 아닌지.......
2007년 8월 24일(금) 남원문화원의 5번째 열린답사가 함양~산청~하동~구례의 지리산권 문화유산탐방으로 기염을 토하는 무더위 속에서 일정이 시작되었다.
문화유산답사를 가는 것이 나의 삶에서 사치는 아닐까.........
막바지 더위를 삭히게 하는 문화유산답사라고 생각하면서도 이 무더운 폭염속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의.식.주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피땀을 흘리는 모습이 나의 발길을 붙잡고 머뭇거리게 하였다. 하지만 타지역의 문화유산 답사를 통하여 남원지역문화가 발전되고 많은 사람들에게 문화를 느끼고 향유할 수 있는 삶을 선물하고 싶은 생각으로 기행보다는"문화유산의 콘텐츠"에 관심을 갖고 좀 더 가벼운 마음으로 버스에 몸을 싣었다.
준비가 철저한 남원문화원 박국장님께서 예전처럼 완벽한 자료와 아침 식사로 김밥 한줄을 주시고 산내면에서 부터 소나무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시는데 많은 것을 배웠다.소나무를 보면 그 산의 역사를 안다고 한다.즉 소나무가 많은 산은 역사가 짧다는 이야기이다.20만명의 목숨을 앗아간 지리산도 많은 비극으로 6.25때 포탄을 맞아 나무들이 다 죽어 소나무가 많다고 한다. 소나무는 100년의 역사속에 때가되면 없어지고 특히 300년이 지나면 자취를 감춘다고 하니 오늘따라 지리산의 소나무가 더 소중해 보였다.솔방울이 많이 달려 있는 소나무는 수명이 다 되어간다는 증거라고한다.예정시간대로 오전 9시에 함양군 마천면 서암정사에도착하였다.
항상 느끼지만 문화가족들의 답사는 기행보다 한가지라도 더 보고, 배우고 ,느껴서 타지역이 가지고 있는 장점을 남원지역사회와 연계하여 "콘텐츠화 "하려는 욕심 때문에 무척 시간에 쪼들리는 모습을 느낄수 있었다.이번 답사도 역시 차안에서의 토론이 정보를수집하고 공유하는데 도움이 되었다.지난 2001년 지리산댐건설을 백지화시켰는데 또 다시 이름만 바꿔서 남강 상류댐을 유치한다고한다.
댐이 건설 될 도로를 타고 가는데 그 아름다운 풍경이 수몰되어 역사의 뒤안길이 된다고 생각하니 서글퍼 졌다.남원 동학농민기념사업회 회장이신 한병옥회장님께서 댐이 건설 될 현지를 직접 가르쳐 주시면서 정부는 "전북은 피해가 없다"고 하지만 댐이 들어서면 운봉,산내,아영,인월등 4개지역이 상수도 보호구역으로 묶여 아무일도 할 수 없으며 안개지역이 되어 낙과현상으로 과수농사가 안되며 근본적으로 지리산의 자연을 망가뜨린다고 히시며 그동안의 경과와 댐이 유치되었을때 남원지역에 미치는 영향에 대하여 자세히 설명해 주셨고 남원투데이 대표이신 하진상님께서는 " kBS남원방송국이 폐쇄되고, 88도로가 제기능을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또 남강 상류댐건설을 통하여 지역사회가 피폐해 질대로 피폐해지게 생겼다며 강하게 정부를 비판하자 답사객들은 이를 수긍을 했다.
벽송사를 가기전 서암정사를 찾아가는 칠선계곡의 장관에 감탄사가 연발!
유리알 같은 맑은 물!
병풍같이 둘러쌓인 웅장한 산봉우리!
설악산의 천분동과 한라산 한국의 3대계곡 중 제일 높이 평가받고 있는 지리산의칠선계곡은 비록 함양땅에 있지만 지리산 지역주민으로서의 자부심을 갖게 하였다.벽송사는 신라 말이나 고려 초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된고한다. 예로부터 수행처로 널리 알려진 곳인데, 화재를 당하여 자세한 연역을 알기 어렵고 조선 중종 1520년에 벽송 지엄대사가 중창하였다고 한다. 보물 제 474호로 지정된 벽송사 3층 석탑이 있고. 우리나라 3대 계곡 중의 하나인 지리산 칠선계곡으로 가는 초입의 산 중턱에 자리하고 있으며, 특히 6.25 전란을 전후하여 처참한 비극의 역사를 간직한 곳이기도 하다.
벽계정심에 법맥을 이어 조선 태고종의 5대 정통이 되었고 부용영관, 원오, 일선 등 60여명에게 선을 가르쳤던 곳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경내에는 민속자료 제2호인 “벽송사 목장승”을 비롯한 3점의 도 유형 문화재가 있다. 또한 인근의 벽송사 암자인 서암에는 벽송사의 전 주지 원응 스님께서 이곳으로 옮겨와 1989년부터 시작하여 10여년에 걸쳐 화엄경 금자사경을 완성하고 주위의 자연석 암반 위에 대방광문 (大方廣門:부처님의 세계로 들어가는 문),극락전(極樂殿: 아미타여래가 주불이 되어 무수한 불보살이 조각된 부처님의 이상 세계 모습),광명운대(光明雲臺: 구름 일듯이 무수한 불보살이 상주하는 곳) 사자굴(스님들의 수행장소)등을 조각하고 만들어 그 화려함과 정교함, 웅장함이 장관을 이루었다고한다.

특히 서암정사는 서암을 만들고자 원을 세우고 원력을 모은 분은 원웅(元熊)스님이지만 그 일을 받들어 10여년 동안 동굴에 부처님과 불보살 그리고 그 권속들을 조각한 사람은 홍덕희라는 분이라고 한다. 원웅스님이 밑그림을 그리면 석공 홍덕희님이 정으로 한뜸한뜸 자수를 하듯 조각을 하였다고 한다.한 때 다른 석공들이 일을 하기도 하였지만 불심이 없거나 미약한 관계로 제대로 불사가 진행되지 않아 모두 그만두었다고 한다.나이 33세인 홍덕희님은 91년에 서암에 들어와 10여년 동안 햇볕 한 번 제대로 보지 못하며 굴법당 조각에 전념하다 44세가 되어서야 제대로 햇빛을 볼 수 있었다고 한다. 현재 홍덕희님은 서암정사보다 조금 더 남쪽인 사천근방에서 또 다른 조각으로 불심을 다듬고 있다고 한다. 서암정사는 주지인 원응스님께서 1960년 초 벽송사로 오시면서 원력을 세워 현재 40여 년째 진행되고 있는 원력 불사의 결정체라 한다.
6.25때 지리산에서 무고히 죽어간 수많은 원혼들을 위로하고 그들의 이고득락을 기원하며 아직도 대치하고 있는 남북한의 화합과 통일을 기원하고자 불사를 시작하였지만 좀체 수그러들지 않는 민심을으로 피폐해 동서 지역감정의 발로가 되는 모든 이기심과 분열을 없애고 부처님의 품안처럼 평안하고 자비심으로 살자는 마음에서 발원을 했다고 한다.

나는 그동안 기독교 문화에 가까운 생활을 해왔기에 타종교 문화에 대해서는 이질감을 많이 느끼면서 살아왔던 지난날이 후회스러웠다.사찰문화나 유교문화를 접하면 모르는 것이 너무 많으니 답답함은 이루 말할수 없다. 편파적이었던 나의 종교관,이제라도 바꾸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서남정사 답사 후 박국장님의 짧은 불교문화에 대한 맨트는 불교 문화를 이해 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기독교 200년, 불교는 2550년 유교는 2500년의 역사속에서 우리나라 기독교는 100년,불교는 1500년으로 우리나라는 전통적인 불교 유산이 제일 많다고 한다.2500점의 문화재 중 60%가 불교 문화며 67%가 탑이라고 한다.
이어 맑디 맑은 산과 물을 닮아 사람도 맑은 곳 산청( 山淸)!
큰 산 큰 사람이 있는 산청!
하늘이 울어도 천왕봉은 울지 않는다는 천왕봉이 있는 산청!
산청은 백성을 사랑하는 가야의 마지막왕,구형왕이 왕산 아래에 돌무덤으로 묻혀 있고 고려시대 문익점은 최초로 목화를 심어 따뜻한 겨울을 나게 했으며 조선시대에는 실천을 중요시 여겼던 남명 조식선생의 기르침이 있는 곳이다.
그리고 의성(醫聖)허 준 선생의 스승인 신의(神醫) 류의태 선생의 약수터가 있을 뿐만 아니라 원효대사와 의상대사가 살았던 율곡사와 정취암에는 두 분의 법력을 겨루었던 이야기가 전해오고 온 국민의 심금을 울렸던 성철 큰스님의 생가 터에는 스님의 유물을 모아 기념관을 건립하고 세상 밖의 절 이라는 겁외사를 창건한 곳이다. 이처럼 아름답고 유서깊은 지리산과 동의보감의 고장 산청의 지리산한방약초축제는 전통한방휴양관광지 조성과 더불어 산청의 새 희망이 되고 있으며 특히 거울같이 맑은 경호강의 비경따라 스릴 넘치는 래프팅은 산청의 자랑이라고한다.하지만 나의 관심사는 남명 조식선생이다.

산청의 첫 코스는 오직 경의(敬義)를 실천하신 남명 선생의 학덕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덕천서원이다
지행즉력(知行卽力)!
이제는 "아는 것이 힘이 아니라 알고 있는 것을 행해야 하는 뜻"이라고 본다
"실천없는 학문은 죽은 학문이다"
.학문이 깊어 나라에서 여려차례 벼슬을 내렸지만 모두 사양하고 고향 합천에서 61세 때 산청군 덕산면에 자리를 잡아 72세로 눈을 감을 때까지 오로지 학문을 연구하고 제자를 가르치는 일에만 열중한 남영 조식선생의 뜻을 기리는 덕천서원 敬義堂에서 난생처음으로 선비문화를 체험하면서 검은 권포도 입어보고 남영 선생을 추모하는 의식에도 참석하면서 역시" 필의 힘이 칼의 힘보다 더 크다"는것을 느꼈다.
우리사회는 문물문화와 인문문화가 조화롭게 발달해야 하는데 오늘날 물질적인 욕구와 육체적인 쾌락만을 추구하여 정신세계가 나날이 황폐해지는 이시대에 남명 선생의 삶은 내일을 위한 정신적 자양분으로 남았으면 좋겠다.또 나는 시대적으로 여성도 이런 배례문화에 참여해야 함을 그 곳 문화원장님께 말씀드려 봤더니.유교에서도 여성을 기독교처럼 제례문화에 참석시킬 계획이라고 말씀하시는데 여성활동가인 나에게는 희소식이었다.
나라가 어려울 때 지식인들이 물러나지 않았던 삶!
나라가 힘들때 여성들이 물러나지 않아야 하는 삶도 우리 여성들은 몸소 익혀야 한다.
인구의 절반이 넘는 여성들의 에너지를 나라에서도 관심을 갖고 잘 활용해야 한다고 본다..경상도는 문중 중심의 선비문화라고 한다. 또 전라도는 의병장이 많았던 개별적이고 실천적인 선비문화라고 하지만 한국의 대표적인 실천문화의 산실이 이곳이 아닌가 싶다.
이어 탄신 500주년에 설립 추진되어 남명 선생의 유물들을 한눈으로 볼 수 있는 기념관을 갔다.세상 근심 걱정 하나없이 깔끔하게 차려 입은 모시옷 차림의 후손의 신명사도(神明舍圖)설명은 사욕에 얽매여 사는 현대인들을 위한 따끔한 질책이 아닌가 싶었다.
이어서 맛있는 점심식사를 하고 지리산 빨치산 토벌 전시관에 들렀다.
현대사의 아픔이 고스란히 간직되어 있는 이곳의 유적이 거의 남원 것 이라고 한다. 생각하고 싶지않는 곳을 다시보게 되는 어르신들은 과거의 참상을 보고 숙연해지셨다.빨치산의 실체와 당시 사회상을 다시한번 재확인 하면서 남원 뱀사골의 전적 기념관이 탐방 안내소로 바뀐것에 대한 부분이 유감스러워졌다.특히 20여년 동안 남원을 연구하고 계신 동경대학'혼다 히로시"교수는 빨치산에 대한 의문이 많으신지 제일 관심이 많으신것 같았다.
이어 동부권 관광 일주로를 타고 청학동 삼성궁으로 갔다."뿌리없는 나무가 있을수 없고 근원없는 강물이 있을수 없듯이 인류의 역사가 있음에 그 계례의 조상이 있는것은 하늘이 정한 아름다운 진리가 아닐 수 없다"고 한 우리의 옛 조상들은 수두라는 성역을 세워 하늘에 제지내고 배달민족 고유의 정통경전인 천부경 (天符經.) 삼일신고(三一神誥).참전계경(參佺戒經)의 삼화경과 삼륜(三倫) 오계(五戒)팔조(八條) 구서(九誓)의 덕목을 가르쳤다고 한다.

또한 수두에는 경당을 설치하여 국자랑(國子郞) 들에게 충.효.신,용.인.(忠.孝.信.勇.仁)등 오상(五常)의 도를 가르치고 독서(讀書)습사(習射) 치마(馳馬)예절(禮節)가악(歌樂)권박(券博)등 육예(六藝)를 연마 시켰다고 한다. 옛 수두를 복원한 삼성궁은 배달민족 정통도맥인 선도의 맥을 지키며 신선도를 수행하는 민족 고유의 도량으로써 오늘날 잃어버린 우리의 위대한 얼과 뿌리를 천지화랑(天指花郞)의 정신을 바탕으로 弘益人間과 理化世界를 실현한 민족 대화합의 장이라고 한다.
요즈음 한국 사회는 다종교 사회로 외래 종교 및 사상이 득세하니 민족의 주체성은 상실되었고 정신은 부평초처럼 떠 다니고 있다고 주장하는 뜻에서 우리 사회에서도 민족 고유의 정통문화를 되찾고 민족정기를 되찾으려는 움직임이 활발히 전개되기를 바랄뿐이다
민족의 영산 지리산의 여러모습 속에서 배달 민족의 성전으로 한배임,한배웅,한배검 및 역대 나라를 세운 태조,각 성씨의 시조 현인과 무장을 모신 신성한 성역의 모습은 또 다시 弘益人間과 理化世界의 건국이념을 생각케 했다.
이어 오늘의 마지막코스인 좌청룡 우백호의 기운이 뚜렷한 문수사에 들렀다.인적이 드문 문수사는 물이 맑고 숲이 좋은데도 인적이 드물어 전혀 오염이 되지 않았다.
동물원에서만 보던 곰이 재주를 부리는 시간!
모두들 긴장감이 맴돌았다. 그.크고 사나운 곰이 우리들 앞에서 재주를 부린다고 생각하니........
방생하기 위해 데리고 온 곰이 정부의 방침에 따라 방생을 할수 없게 되어 유일한 스님의 친구라고 한다.난생 처음으로 본 곰의" 야생쇼"에 모두들 환호성을 지르지 않을수 없었다. 참외와 건빵으로 유인하여 부리는 곰순이의 재주,
허리펴! 앞으로 가! 누워! 앉아! 돌아앉아! 받아! 올라가!.........120~130킬로그램의 곰순이는 하루에 10여회 정도 재주를 부린다고 한다. 곰은 재주를 부리다가도 사람들이 몸을 움직이면 긴장을 하며 스님의 말을 듣지 않는 것이 멍청한 사람보다 낫다. 사람들에게 위협을 느낀다고 고봉스님이 말씀하시면서 위험하니 움직이지 말라고 당부하셨다.
"사찰에서 무슨 곰쇼냐"고 군소리를 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어쨌든 볼거리를 제공할수있다는 데 의미를 가졌다.이곳 문수골은 빨치산 김지희 부대가 제일 먼저 구례를 치고 대패한 후 화엄사로 도망갔다고 한다.
지리산은 남원만의것이 아니다.지리산권의 선량들이 파트너십을 가져야한다고 전 문화원장님의 뒷마무리가 계셨다.또 정부는 80년대에 경주 보문단지와 제주 중문단지 남원 양림단지를 관광진흥법에 의해 설치했다고한다.그런데 경주 보문단지나 제주 중문단지는 몰라도 남원 양림단지는 실패작이라는 여론이 많다.그런데 또 인공폭포를 만든다고 하는데 모두들 시민의 여론을 수렴하고 전문가들의 자문을 받아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의견이 팽배했으며 특히 뒷 좌석의 여성들은 "가장 남원다운 것을 보러오게 만들어야지 오나 가나 다 있는 인공폭포는 왜 만드냐"고 군담을 늘어 놓았다.
지리산 답사코스는 40여가지의 코스가 있다고 한다. 오늘 코스가 가장 일반적인 코스라고 관계자께서 말씀하셨다.오늘은 문화유산 답사코스지만 지리산을 알기위한 방법은 다양하다고 한다.이젠 지리산 주변 주민들은 민족의 영산인 지리산을 가꾸고 보호하는데 최선을 다 할때인 듯 싶다.
나,너의 산이 아닌 우리들의 지리산일때 세계적인 훌률한 산으로 자리매김 한다고 보며 정치,사회 문화 교육,경제 복지,언론등의 다양한 채널에서 지리산 주민들의 결집된 힘이 표출되기를 바라며 지리산권 의 자치단체장과 의장들의 선진적인 청책을 기대하지 않을 수 없다
참으로 유익한 시간이었다. 지리산을 통한 경쟁력을 주장했던 어르신들의 의견에 동참하고 싶은 답사였다.오는 9월 8일 (1박2일)답사는 정선.영월의 가족 답사라고 하니 참석하지 못한 아쉬이 남는다. 추석이 다가오니 벌초 계획 때문에 남편과 자녀들이 갈수 없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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