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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소개]

장수와 논개 생가를 찾아서

글쓴이 : 양경님 날짜 : 2007-09-12 (수) 23:47 조회 : 2412
. 동쪽은 소백산맥의 주능선을 경계로 경상남도 함양군·거창군으로 이어져 경상남도·전라북도의 도계를 이루고, 서쪽은 진안군·임실군, 남쪽은 남원시, 북쪽은 무주군과 접한다.서쪽은 노령산맥의 동쪽 사면의 일부에, 동쪽은 소백산맥의 서쪽 사면에 걸쳐 있는 군은 무주·진안과 함께 전라북도 동부산악권에 속하여 장수·장계 등의 분지를 제외한 대부분이 산지이며 동쪽의 소백산맥 쪽이 특히 높다.

동북쪽의 계북면에 남덕유산(1,507m), 남동부의 번암면에 백운산(1,279m)이 있고, 그 사이의 육십령(734m)을 통하여 경상남도 거창군과 연결된다. 장수읍 서쪽의 팔공산(1,151m)은 섬진강과 금강의 분수계가 되며, 여기서 발원하는 천천히 북쪽으로 흘러서, 천천면을 거쳐 금강으로 유입한다.기반암은 군의 대부분이 화강암질편마암이지만 산서면·장수읍·장계면 등지에 편마상화강암과 대보화강암이 분포한다. 이들 화강암류가 심층풍화하여 산서면·장수읍·장계면 등지에서는 해발고도 400∼650m의 고원상 내륙분지가 넓게 발달해 있다. 토양은 위의 내륙분지에 화강암류가 심층풍화하여 생긴 적황색토가 덮여 있고, 천천면 주변에 좁은 충적평야가 전개된다. 기후는 연평균기온 12∼13℃, 1월 평균기온 -3.5℃, 8월 평균기온 23.3℃이다. 연평균강수량은 1300mm 내외로 남부내륙형 기후구에 속한다. 고원 형태의 내륙분지가 많아서 고랭지에 해당하며 겨울에 눈이 많이 내리고, 여름에는 서늘하지만 집중호우가 빈번하여 가끔 산사태가 발생한다.

  한밤의 진주성, 그 아름다운 불빛에 젖어 보고도 싶다.
필자는 논개의 생가지를 둘러보며 그동안 바라보던 논개의 정신을 재인식하는 계기가 되었다. 진주의 어느 신문기사를 읽으며 많은 사념에 잠겨보며 참고로 글을 올려보며 많은 사람들의 고견을 들어보고싶다 ."논개하니 진주성의 장쾌한 야경이 화려하게 펼쳐지는 풍경이 생각난다. 진주성의 성벽을 따라 켜진 은은한 불빛은 밤 늦도록 남강에 어른거리고, 그 강물을 바라보는 사람들은 빛이 그려내는 아름다운 풍경에 말을 잊는다고 한다.
열 아홉살의 논개는 적장을 끌어안고 몸을 던졌으리라. 이곳저곳을 돌아본 뒤에 안 것이지만, 논개는 사실 애국적 정열로 가득한 여장부가 아니라, 자신을 거두어준 지아비의 죽음을 따라간 가냘픈 순정의 여인네에 가까웠을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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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석루 바로 곁에는 논개의 영정이 모셔져 있는 사당인 의기사가 붙어있다. 여기서는 자칫 지나치기 쉬운 현판을 눈여겨봐야 한다. 의기사를 마주보고 오른쪽에 걸려있는 현판은 다산 정약용이 촉석루에 올랐다가 남긴 글이다고 한다. 논개가 목숨을 끊은 지 243년이 지난 뒤의 일이다. 공교롭게도 다산은 논개가 목숨을 던진 나이와 똑 같은 열 아홉살때 장인과 함께 촉석루에 들렀다가 이 글을 썼다. 다산은 논개의 사당 앞에서 “지금도 사당에 아름다운 영혼이 남아있는 듯, 삼경에 촛불 켜고 술을 올린다”고 적었다.
 논개의 역사 ,전북 장수의 생가를 찾았다.논개의 생애를 차근차근 따라가 보자면 그가 난 곳부터 찾아야 하는 것이 순서겠다. 전북 장수군 장계면 대곡리 주촌마을. 이곳에 논개가 태어났다는 생가지가 있다. 그가 태어난 곳이 수몰돼 새로 복원했다는 생가도 번듯하게 들어서있다. 생가지에는 기념관과 연못, 비각, 논개 동상들이 곳곳에 자리잡고 있다. 생가지 뒤편의 마을들은 모두 운치 있는 한옥들이어서 정취를 더해준다. 그러나 이곳이 진짜 논개의 생가일까.

논개는 사실 ‘야담’에 기록된 인물이었다. 지금으로 치자면 서울시 부시장쯤 되는 한성좌윤과 이조참판 등을 지냈던 유몽인. 그가 펴낸 ‘어우야담’에 논개의 이야기가 처음 나온다. 임진왜란 당시 삼남지방의 어사였던 그는 진주성 전투의 참상을 조사하러 진주를 방문했고, 논개의 이야기를 전해들어 이를 ‘어우야담’에 적었다. 그러나 책에는 논개가 몸을 던진 사실만 언급됐을 뿐, 출신지며 성장과정 등과 관련한 아무런 단서도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논개 생가가 있을 수 있을까.

그 해답은 논개 사후 207년이 지난 1800년 발간된 ‘호남절의록’에 담겨있다. 이 책에 논개의 출생지에 대한 단서가 처음으로 비친다. 이 책에는 “기생 논개는 장수 사람인데, 최경회가 좋아 했으며, 그를 따라 진주로 갔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논개 사후 200여년이 지난 뒤의 기록이라 정확성이 의심되긴 하지만, 이후 ‘호남삼강록’‘호남읍지’ 등을 통해 논개의 출생지는 차츰 구체화됐다. 전북 장수군 장계면 대곡리 주촌마을이 생가로 지목된 것은 향토사학자들이 전해오는 기록과 구전 등을 종합해서 내린 결론인 셈이다.
 
 382년만에 찾아낸 논개의 묘,그가  묻혀 있을까........
경남 함양군 서상면 방지마을. 그곳에 논개 묘가 있었다. 논개가 남강에 몸을 던진 지 382년이 지난 1975년에야 세상에 알려진 논개 묘는 애초에는 ‘전(傳) 논개 묘’였다. 말 그대로 ‘논개의 묘로 전해지는 곳’이란 뜻이다. 그러던 것이 최근 묘역이 단장되면서 ‘논개 묘’가 됐다. 논개의 묘는 높게 돋워진 구릉 위에 있었다. 77개의 돌계단을 오르면 논개의 묘가 펑퍼짐한 형태로 앞에 서있고, 뒤편에 봉긋하게 솟은 최경회의 묘가 있다. 고향 땅인 전북 장수도 아니고, 그가 죽은 경남 진주 땅도 아닌 이곳에 왜 논개의 묘가 있을까. 거기다가 왜 최경회의 묘가 함께 있는 것일까.

논개의 묘에 대한 기록은 전혀 없다고 한다. 인근 주민들 사이에서 전해지는 이야기가 있을 뿐이다. 진주성 전투에서 살아남은 의병들이 논개의 시신을 남강의 여울이 얕아지는 지수목에서 건져내 논개의 고향인 장수로 운구하다가, 육십령 아래 묻었다는 것이다.

논개와 함께 묻힌 최경회는 논개의 고향인 장수 현감을 지냈고, 경상우도병마절도사로 진주성 싸움에 나섰다가 성이 함락되면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던 인물. 그는 장수 현감 시절에 민며느리로 팔려갈 위기에 처했던 논개를 거둔 뒤, 이때의 인연으로 논개를 첩으로 받아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논개가 최경회의 첩이었다는 사실은 1748년 우참찬 권적이 임금에게 최경회에 대한 포상을 건의하는 ‘태상시장록(공적서)’에 논개를 최경회의‘천첩(賤妾)’으로 기록한 데서도 확인된다. 역시 수백년 뒤의 기록이라 전적으로 믿을 수는 없겠지만, 이를 근거로 논개는 기생이 아니었고 최경회의 부실(副室)이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이 기록이 맞다면, 논개의 죽음은 ‘기녀의 영웅적인 죽음’이 아니라, 진주성 싸움에서 지아비를 잃은 여인네의 슬픔과 원한으로 해독된다. 성이 함락되자 남강에 뛰어들어 목숨을 끊은 최경회의 뒤를 따라, 지아비의 원수인 왜군을 끌어안고 몸을 던졌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한들 그의 죽음의 의미야 퇴색될까.
 햇볕에 떠오르면 정사요, 달빛에 잠기면 야사가 되거늘…
논개의 여정을 짚어보자면 ‘햇볕에 떠오른’ 역사와 ‘달빛에 잠긴’ 야사와 함께 근대·현대 역사가 교차된다. 특히 진주성 일대며 전북 장수의 유적지 등에는 전직 대통령들의 흔적이 묻어있다.

진주성을 지키던 김시민 장군과 최경회, 김천일 등의 신위를 모신 진주성 성내의 창렬사에는 5·16 직후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의 이름을 새긴 표지가 있다. 당시 박정희 의장은 진주성 싸움에서 성을 지키다가 죽음을 맞은 이름 없는 장수들을 기리는 비석을 세우도록 했고, 이 표지는 이를 기념한 것이다. 이에 앞서 진주 촉석루에서는 이승만 초대 대통령이 한시를 남기기도 했다. 이 전 대통령은 ‘…/장사(壯士)와 가인(佳人)을 두고 길다, 짧다 누가 말하랴/…”라며 창렬사 앞에서 심경을 읊었다. 논개의 영정을 모신 전북 장수의 의암사에 걸린 현판 글씨는 함태영 전 부통령의 친필이다.

장수의 논개 생가지 연못가에 세워진 정자 ‘아미정’에는 전두환 전 대통령이 쓴 현판 글씨가 걸려 눈길을 끈다. 전 전 대통령이 지난 1983년과 1986년 두차례에 걸쳐 논개 사적지 조성을 위해 특별지시로 예산을 교부해줬다는 이유로 장수군은 생가지 조성작업을 하면서 1999년 이 글을 받아 걸었다. 아무래도 논개의 생가지와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고 한때 지역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철거 논의도 있었지만, 현판은 지금도 굳건히 걸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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