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1년 남원문화대학 제5주
“충장공 양대박 장군의 삶과 문학의 세계”를 배우고 나서.....
그동안 10년을 넘게 남원문화대학에서 중추적으로 역할을 했다고 주위에서 칭찬을 많이 해 주신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남원문화대학에 무척 고마운 마음뿐이다. 입학해서 공부하여 결실이라고 한다면 조선시대 가장 많은 한시를 남긴 남원이 낳은 여성시인 김삼의당을 알아 “김삼의당의 삶과 부부화답시”에 대하여 석사논문을 쓴 것이고 두 번째 감사한 것은 만인 정신의 국가정신 승화와 만인의총을 국가 관리로 승격하고 구 남원역 부지에 만인의사 역사공원을 조성하여 일본에 있는 선조들의 귀 코 머리가 있는 무덤을 역사의 현장인 남원으로 봉환하는 문제가 숙제인 셈이다.


또한 남원문화대학에서 많은 전문가들의 강의를 통해 남원양씨에 대한 자부심을 갖게 된 것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나름대로 남원양씨의 역사적 인물을 조명해 보고 싶었지만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고 사무처에서 일을 하다 보니 양보할 수밖에......
그러나 이번학기는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조명하다보니 실존인물로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서 나라와 민족을 위해 목숨을 바친 양대박 장군에 대하여 조명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따라서 2011년 남원문화대학 제5주 강의는 “충장공 양대박 장군의 삶과 문학세계”로 강사는 양대박 장군의 후손 양희용 문학박사다. 강의 내용을 들어 보면 청계양대박 장군(1563~1592)은 남원시 주생면 상동리에서 태어나 일찍이 도학을 터득해 이름을 널리 알렸다.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10 여 년 전부터 미리 알고 청계동에 청계정사와 내외사, 보허정 등을 짓고 여러 제현과 교분을 두텁게 나누며 그곳에서 의병을 양성하였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모집하여 총, 칼, 투구 등을 제작하고, 노적봉을 만들어 횟가루 수백 포를 강에 풀어 곡성 지역에 대군이 주둔하고 있는 것처럼 위장전술을 펼친 지략가다.

또한 청계 장군은 제봉 고경명(1533~1592) 장군, 월파 유팽로(1564~1592) 장군 등과 담양 추성관에서 혈맹을 맺고 돌아와 임진년 6월25일 아들 형우와 함께 임실 운암전투에서 왜적 섬멸하는 전과를 올렸으나 그 전투에서 전사하고 말았다. 청계 장군은 사후 대제학과 병조판서, 충장공 시호를 받고, 현재 고향인 남원 주생면 상동에 '부자충의 문(父子忠義門)' 이라는 정려가 세워져 있으며 용장서원에서 매년 음력 3월 17일 그의 뜻을 기리고 있다.
필자는 일 년 중 몇 차례 학생들을 데리고 문화유산 답사를 간다. 갈 때마다 느낀 것은 다른 지자체는 없는 것도 스토리텔링하여 아주 웅장하고 거대하게 유적지를 조성해 놓은데 우리남원은 너무 미비하다 특히 부자(父子)가 나라와 민족을 위해 목숨을 바쳤는데도 너무 허술하게 관리되고 있으니 이 나라의 역사의식에 대하여 통탄하지 않을 수 없다. 오늘 남원문화대학은 남원양씨 종친회에서 많은 임원들과 종친들이 참여하여 양대박 장군의 삶과 문학세계를 배우고 수강생들과 함께 묘소에 가서 참배를 하고 그의 유적지인 양대박 부자충의 문(부동)-용장서원(상동)- 청계계곡(곡성) 영사정(금지)을 다녀와 본가 추어탕에서 남원양씨 종친회에서 추어탕을 대접해 주어서 맛있게 먹고 내일(29)은 운암전투현장을 가기 위해 구군청 앞에서 오전 9시에 만나기로 하고 헤어졌다.
* 양경님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11-06-05 18: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