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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강의]

몽김경로(夢金敬老)장군에 대하여

글쓴이 : 양경님 날짜 : 2022-02-06 (일) 02:07 조회 : 37

           

       몽김경로(夢金敬老)

  번역(제산 소병호선생) 

이 글은 사촌선생이 꿈에 김경로 장군을 만난 소감을 적은 글이다. 김경로 장군은 정유재란 때 남원성을 사수하다 순국한 충신이다. 사촌과 김장군은 죽마고우였다. 김장군은 죽은 꼭 10년째 되는 날인 1607년 음력 816일 밤에 사촌의 꿈에 나타나 자신의 억울한 처지를 하소연하였다. 사촌은 남원부사와 전라감사에게 탄원서를 제출하여 김경로 장군의 공훈을 장려케 하고 사당(지금의 충렬사)에 봉안케 함으로써 망각 속에 묻혀 버릴 뻔 했던 한 충신의 이름을 천추에 빛나게 해주었다. 김경로 장군의 약력을 아래와 같이 소개한다.

 

김경로 : ?~1597(선조30). 남원출신의 무신. 어려서 학문에 뜻을 두었으나 도중에 포기하고 무예를 닦아 무과에 급제하였다. 1587(선조20) 경성판관이 되어 두만강의 야인 소탕에 전공을 세웠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1592) 김해부사로 경상도 감찰사 김수(金晬)의 막하에서 군무에 힘썼다. 이듬해 황해도 방어사가 되어 해주의 방어를 밭았으며 1594년에 첨지중추부사로 도원수 권율(權慄)의 막하에서 전라도의 방어를 맡았다.

 

1597년 정유재란이 일어나자 조방장으로 전주에 있던 중 전라병사 이복남(李福男)과 함께 결사대를 조직, 남원성으로 들어가 방어사 오응정, 구례현감 이원춘 등과 함께 명나라 부총병 양원(楊元)을 도와 남원성을 사수하다가 장렬하게 전사했다. 남원의 충렬사에 봉안되어 있다.

꿈에 김경로를 보다

- 본 문 -

 만력 정미(1607. 선조 40) 816일 밤, 솜털 구름이 사방에 걷혀 달빛은 대낮 같이 밝고 금풍이 잠깐 일어 옥빛 이슬이 벽공에 비낀 밤이었다. 한 시골 늙은이(사촌 자신)가 서재에 홀로 앉아서 한문공(韓文公)이 지은 장중송(張中丞)의 전기를 펴놓고 읽다가 책을 덮고 길이 탄식하고 비분강개하여 스스로 이르기를

장순(張巡)과 허원(許遠)의 순수한 충성은 시종일관 어그러짐이 없이 한 몸이었도다. 수양성(睢陽城)에 양식이 떨어져 군사들은 새와 쥐까지 닥치는 대로 잡아먹어 없어지고 종이도 떨어졌을 때 장승은 애첩을 죽여 굶주린 군사들에게 먹였으니 위국충성은 실로 빈틈이 없었고 두 사람이 먼저 죽고 뒤에 죽고 하였으나 그 대의는 하나같이 열렬하였도다.

허원이 생포되어 낙양으로 끌려간 것을 두고 어찌 충절을 잃었다 하랴? 약을 마시고 자진하는 것은 아녀자의 정절이요, 구렁창에서 목을 매는 것은 일개 필부의 소절이라, 남아의 한번 죽음에는 마땅히 각각 그에 맞는 시기가 분명히 있어야 하므로 그 시기의 늦고 빠름에 구애되어서는 아니 되거늘 삶을 꾀하고 죽음을 두려워했다고 중구남방으로 깎아 내리는 것은 망언이요, 역사의 기록에도 올리지 않음은 잘못이다.

이를 임금께 표하는 군자가 없어 그 당시 수양에는 쌍묘(장순과 허원의 사당)가 세워지지 않았고 허원의 순수한 충성도 천추토록 원한에 묻혀버렸으니 이 어찌 통탄할 일이 아니랴?“

이 일을 생각하고 장탄식하며 몇 번이고 눈물을 삼키다가 이윽고 호랑나비가 먼저 인도하고 수마(睡魔)가 그 뒤를 따르니 나도 책상에 털석 거꾸러져 깜박 잠이 들었다. 꿈에 한 대장부를 보았다. 위의가 장대하고 풍신이 헌칠하다. 그는 나에게 읍하고 나서 말한다.

어젯밤에 한문공의 글을 읽고 역사의 오류에 눈물을 흘린 사람이 그대가 아니었던가? 더욱 심한 것은 그대가 어떻게 그것을(역사의 오류) 알게 되었는가?”

(귀에 익은 듯한)그 말소리를 듣고 그 얼굴을 찬찬히 뜯어보니 바로 죽은 장군 김경로 군이 아닌가? 경로가 하소연을 늘어놓는다.

 유명의 길이 나뉘어 있으니 사람과 귀신의 길도 다르다오. 홀로 한을 품고 황천에 묻혀 있으니 누구와 말을 나눌고? 백골이 자갈밭에 들어나도 거두어 줄이 없고 충의로운 혼백, 원통해도 갈데가 없어서 내 무지개 되어 북두성에 원기(寃氣)를 쏘고 북소리는 우레 되어 멀리 구름 속까지 사무치는데, 인정이 조석으로 변하고 시비가 거꾸로 바뀌니 충절을 정려함에 피차의 생각이 다르고 공훈을 책록함에 공사에 분명한 이도 입줄에 걸려 죽은 자와 산 자를 같이 보고 물고기 눈과 구슬을 혼동함은 고금이 하나런가?

정작 연돌을 굽히고 섶을 옮기게 한 이는 아무 대접도 못 받고 불난 뒤에 불 끄느라 머리칼이 타고 이마를 덴 사람은 상객으로 대접 받는 세상!

구원은 망망한데 죽은 자는 말없이 침침한 암흑 속에 묻혔으니 후세 사람이 어찌 알아서 기록하리오? 초목과 함께 썩는 것은 당연한 이치나 숨은 억울함을 펴지 못한지 이미 오래 되었거늘.

그런데 오늘 밤이 어떤 밤인고? 옛 친구를 만나니 곧 의()를 취하여 죽은 날이라, 이날을 당하여 다소나마 흉금을 털어 놓을 수도 있지 않겠는가?

흑룡이 해를 지키고(임진, 1592) 축융(祝融)이 때를 맡을 때(4) 섬 오랑캐(왜군)가 화살로 하늘을 쏘고 자리를 말 듯 승승장구하여 쳐들어오매 이백년간 태평을 누리던 백성들은 싸움을 모르다가 상마(桑麻) 수천리가 전장(戰場)으로 돌변, 변방의 요새가 제 구실을 못하고 사방(四方)이 와열되니 생령이 어육이 되어 유혈이 내를 이루지 않았던가?

무인지경 같은 파죽지세에 삼경(三京부산,서울,평양)이 유린되고 구묘(九廟:종묘)가 폐허가 되어 멀리 용만으로 넘어 가신 임금의 푸른 깃발은 식미(式微)보다 더 슬프고 통분함은 갈귀(曷歸)의 탄식보다 더 처절하였다오.

임금이 욕을 당하면 신하된 자 죽음으로써 그 직분을 다하는 것이어늘 이 때를 당하여 그 누구인들 근왕병으로 불려 달려가 힘쓰지 않았으리오만 십만 정병이 개미집처럼 무너지고 삼도(경상, 전라, 충청)의 장수들이 머리를 싸매고 쥐구멍을 찾았으니 하늘까지 넘치는 적군의 기세를 뉘라서 막으리오? 온 나라의 신민들, 통곡만 할 뿐 무슨 말을 할 수 있었겠는가?

이 사람(김경로 자신)은 원래가 대대로 무신의 피를 이은 가문의 후예로 일찍이 붓을 던져버리고 무과에 오른 뒤 벼슬길에 나아가 임금을 섬겨 두 고을의 수령을 모두 거쳤으니 영화는 처자식에게 미치고 허리엔 금을 띠고 머리엔 옥을 달아, 은총이 비길 데 없었으니 항상 다짐하기를, ‘몸이 가루되고 뼈가 재가 되도록 큰 은혜를 우러러 갚고 심장과 발꿈치가 닳도록 갈충보국하리라하였거니.

난리를 당하매 상심하여 한없이 기국(杞國)의 근심을 품은 채산하를 바라보며 헛되이 주의(周顗)의 눈물만 뿌릴 새, 북풍은 나무 끝에 불고 서쪽 해는 창문에 가득하고 안전(眼前)에 병과(兵戈)가 넘치는데 피비린내 나는 풍진 속에서도 무릎을 안고 앉으니 막사가 지척이라 얼마나 다행이었던가?

씩씩한 우리 원수(권율), 행주대첩을 아뢰고 굿굿한 명나라 장수(이여송), 압록강을 넘어오매 흉적의 우두머리가 혼비백산하여 남하(南下)한 뒤에 기구한 산천에 봉련(鳳輦)이 서울로 돌아올 제, 부로들은 통곡으로 맞고 산천도 동색(動色)하였으며 중흥을 기약하고 하늘이 다시 해를 보니 오리도 좋아서 뒤뚱뒤뚱! 참새도 기뻐서 팔짝 팔짝! 인금을 기다리다 두 눈이 물러지고 웃음과 눈물이 함께 나왔건만 해파리(왜군) 들이 바닷가에 웅거하여 아직도 으르릉거리고 있으니 언제 틈을 보아 돌출할 지 걱정이었다오.

생민들이 어깨쉼할 겨를조차 없이, 장졸이 미처 새 자리도 잡기전에 불닭(정유,1597)의 해에 왜노들이 다시 일어나니 솟은 창날은 구름을 쓸고 해와 별도 빛을 잃을 지경이라, 흉악한 무리 백만이 남원천지를 뒤흔들 때 외로운 성은 세가 약해 수양성에서 삼천명도 못되는 군세로 고립 무원되어 조석(朝夕)간에 궤멸될 위기에 몰린 당군(唐軍)의 처지와도 같았다오.

이 때 나는 처음 조방장에 임명되어 산졸을 수습하여 적들을 막으려고 전라병사 이복남(李福男)과 더불어 협심하여 앞일의 대비책을 모의하였소. 아시다시피 우리 용성 땅은 형세가 빼어나고 영호남을 아우르는 곳이라, 만약 이 성()을 잃게 되면 적을 막을 요해처가 없어져 임진년과 같은 참화는 거울 보듯 뻔한지라, 병마를 정비하여 이병사와 함께 위태한 성(남원성)으로 입성했느니. 내 몸이 위태롭다는 것을 모를 리야 있었겠는가? 나라가 위기에 빠지면 죽을 날이 따로 없는 법, 오직 민생만 생각했다오.

세 곳(?) 중 나라에 몸을 바칠 곳이 올 것이라고 믿어 오직 한번 죽기로 천지에 맹세하고 피어린 충성을 거듭 다짐하여. 바라건대 중국의 장수(양원)를 도와 난국을 타개하려 함에 어찌 하란진명(賀蘭進明)이 출병을 막고 구원하지 않는 것을 본뜨리오?

적병이 겹겹이 에워싸니 천이나 만정도가 아니라 양원은 야밤에 도주하고 적병이 성안으로 난입하니 굶주리고 탈진한 잔병들이 어떻게 성가퀴에 오르겠는가? 적수공권으로 대항 했을 뿐.

그 때는 그저 죽는 것만이 최상의 영광이요 그 밖은 돌아볼 겨를조차 없었다오. 높은 대신들은 적군을 꾸짖을 혀라도 남아 있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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