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전라북도자원봉사센터 현승하 주임님이 결혼했다고 비싼 쇠머리찰떡을 남원시자원봉사센터로 보내주셨습니다. 직원들과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나는 축의를 했는데 직원들은 어떻게 했는지 궁금합니다. 평소에 더불어 사는 세상을 위해 근무하는 모습이 참으로 예뻤습니다. 지금처럼 부지런히 행복하게 잘살기를 기원할 뿐입니다.
나는 이렇게 시집가는 사람들을 보면 나는 어떻게 딸을 시집보낼까가 걱정이 됩니다. 갑자기 명심보감에서 문중자왈(文中子曰) 혼취이론재(婚娶而論財)는 이로지도야(夷虜之道也)니라.” 는 문구가 생각납니다. “혼인을 하면서 재물을 논하는 것은 오랑캐의 도리다.” “재물로 혼인함은 야만인이다.”는 내용을 접했던 기억이 납니다.
조선 정조(正祖) 때 좌의정을 지낸 정홍순(鄭弘淳)은 공사 간에 근검절약하기로 이름이 난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쪼개져서 못 쓰게 된 동전이 있으면 장인(匠人)을 불러 때워 쓰는 데, 한 푼짜리를 때우는데 두 푼의 공임을 지불 하였다고 합니다. 평소 구두쇠로 유명한 그의 이러한 행동을 보고는 어떤 사람이 물었답니다. “절반이나 손해 보는 짓을 왜 하십니까?” 이 말에 정홍순은 빙그레 웃으며 이렇게 말했답니다. “나 개인적으로 본다면 한 푼 손해를 보는 셈이지만 국가적으로 본다면 마찬가지 아니겠는가?”
이런 정홍순이 딸을 시집보내게 되었는데 부인은 대감 집 체면에 걸맞은 혼수를 장만해 보내야 한다면서 명세서를 적어 남편에게 주었답니다. 너무 엄청난 숫자에 놀랐지만 정홍순은 시치미를 떼고 말하였답니다. “알았소. 내가 종로에 가서 부탁해 놓을 터이니, 당신은 아무 걱정 말고 잔치 준비나 하시오.”
그런데 부탁해 두었다는 혼수가 결혼식 전날에도 도착하지 않자 부인은 걱정이 되어 채근을 했답니다.
“아직 도착하지 않았단 말이오? 허어 이거 낭패로군. 아마 장사꾼들이 나에게 돈을 받기도 무어하고 해서 그런 모양이니, 우선 집에서 쓰던 걸로 대강 해 보내고, 시집간 다음에 해 보내기로 합시다.”
부인은 기가 막혔지만 어쩔 수 없이 아무것도 해 보낼 수가 없었답니다. 이런 아버지의 처사에 딸은 물론 사위까지 야속한 생각이 들어 처갓집과 발길을 끊고 살았답니다. 몇 해가 흘러 외손까지 보게 된 어느 날, 정홍순은 딸과 사위를 불러 후원으로 데리고 들어가서 “ 자, 이 집은 너희들 것이다. 네 혼인 때 혼수에 들 돈을 아껴지은 집이니 나에게 고마워 할 것이 없다.”딸과 사위는 그제 서야 아버지의 참 뜻을 알고 고맙다는 절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합니다.
참으로 감동스런 이야기입니다. 나라면 어떻게 했을 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