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금 우체부께서 놓고간 우편물 중에 남원시에서 발행된 "사랑의 도시 건강한 남원"이라는 남원시 소식지를 놓고간다. 이곳 저곳을 들추면서 동학관련 글과 그 앞의 "밤이면 횃불들고 게-물고기 잡던 곳"이란 제하의 내용을 보면서 강희맹의 한시 한편이 소개 되어 있다. 그런데 그 내용이 무슨 내용인가를 이해하는데 난해하여 남원문화대학에서 강의한 이현식교수의 강의 내용을 내용을 소개해본다.
우리고장은 전북의 문집중에 70~80%을 차지하는 대표적인 가치들이 있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내용들도 오늘을 사는 우리들이 바르게 소개를 하지 못하면 그 가치를 떨어뜨림은 물론, 후손들에게 전해지지 못하게 된다. 이러한 점에 유의 하여 우리의 가치를 찾는데 노력해야 할 것이다. 一帶長川接古津 風搖鴨綠細生鱗 孤舟隐暎蓼花岸 畵裡分明著個人 | 한줄기 긴 시내가 오래된 나루에 닿아 있고 바람은 푸른 오리를 흔들어 고기 비늘같은 물결 이루었네 외로운 배가 여뀌꽃 언덕에 숨었다 비쳤다 하니 그림 속에 분명 사람이 있는것 같도다 | | (강희맹/조선초의 문장가) |
위 내용은 남원시 시정소식지에 소개된 강희맹의 시다. 번역된 내용을 보면서 무슨말인가 하는 의문을 단다. 특히 요즘은 한시에 대해서 이해를 할 국민들이 많지 않음을 보면 우리고장의 많은 고전들이 무용지물이 되고 만다. 좀더 쉽고 이해하기 쉽도록 번역을 한다면 그 맛은 또한 다를 것이며, 가치를 발휘 할 것이기 문이다.
같은 한시지만, 번역자가 다른 내용을 설명하고자 한다.
一帶長川接古津 風搖鴨綠細生鱗 孤舟隐暎蓼花岸 畵裡分明著箇人 | 한 줄기 긴 시냇가 오래된 나루터 바람결에 푸른 강물 비늘처럼 번뜩이네 여귀 꽃 강가에 배 한척만 언뜻언뜻 그림 속엔 분명히 누군가 있겠지 | | (강희맹/조선초의 문장가) |
강희맹(姜希孟, 1424년, 세종 6~1483년 성종 14)은 남원에 들러 남원의 절경을 두고 시 11수(「湖南形勝十一絶」)를 지었는데, 그 시들이 『용성지』 이곳저곳에 실려 있다. 승사교가 생기기 이전에 광한루 앞 요천에는 오래된 나루가 있었다. 그가 요천에 이르렀을 때 나루는 배와 여귀 꽃이 어우러진 한 폭의 산수화처럼 고즈넉했다. 강희맹은 그 풍광이 자아낸 시정을 이렇게 노래했다.
주석 古津(고진) 오래된 나루터. 광한루원에서 순천으로 내려가기 위해 지금은 승사교를 건너는데, 이 승사교를 세우기 전에 사람들이 이곳의 나루에서 배를 타고 요천을 건넜다. 일제 강점기에 이 나루로 배를 건너는 모습이 담긴 엽서가 남아 있다. 隐暎(은영) 언뜻언뜻. 가렸다가 드러났다 하는 모습을 형용한 말 鴨綠(압록) 푸른 강물. 또는 강물이 푸르다. 강물이 푸른 것을 오리 머리 빛깔과 같다고 비유한 말이다. 蓼花(요화) 여귀 꽃. 지금은 찾아볼 수 없지만 예전에는 요천 천변에 여귀 꽃이 지천으로 널려 있었다. 요천이라는 이름도 이 때문에 붙은 것이다. 이 시는 강희맹이 일상의 공간인 요천의 나루를 신선의 공간으로 바꾸어 놓고 그 흥취를 즐기며 지은 것이다. 시인이 보니, 요천이 멀리에서 내려와서 저 아래로 흘러간다. 요천의 이쪽과 저쪽에는 오래된 나루가 보인다. 오리 머리처럼 푸른 강물 위를 바람이 불어오니 잔물결이 살랑살랑 일어난다. 여귀가 꽃을 이고 강가에 가득한데 외로운 배 한 척이 꽃 그림자 사이로 보이는 듯 사라진 듯 한가하다. 요천의 모든 정물이 마치 그림 같은 풍광이다. 이 안 어디엔가 사람이 어딘가 있을 텐데 찾아도 보이지 않는다. 이 시의 맛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강희맹이 배와 나루를 말하면서 의도적으로 사람의 흔적을 지운 것을 주목해야 한다. 시인은 나루가 있고 배가 있으니 사람이 있을 것이 분명하다고 말한다. 한데 이 말이 참 묘하다. 가만히 따지고 보면 이 말은 겉으로 드러난 내용과는 달리 오히려 사람이 없다는 뜻에 가깝다. 배 한 척이 여귀 꽃 사이에서 보였다 숨었다 하는 것도 실은 이 나루를 건너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뜻이다. 옛 나루라는 말은 오래된 나루일 수도 있지만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나루라는 뉘앙스를 준다. 말로는 나루와 배는 보인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사람의 흔적을 지우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의도는 무엇일까? 요천에 사람의 흔적이 있으면 요천은 그저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이용하는 나루가 된다. 요천은 단지 생활에 바쁜 사람들이 정신없이 오가는 세속적 공간이다. 하지만 사람의 자취를 지우게 되면 요천은 세속적 공간에서 신선의 공간으로 바뀌게 된다. 이는 도연명(陶淵明)이 『도화원기(桃花源記)』에서 사용한 수법과 비슷하다. 도연명은 『도화원기(桃花源記)』에서 복사꽃이 떠내려 오는 것을 보면서, 어딘가 무릉도원이 있는 것이 분명한데 실제로는 무릉도원을 찾지 못했다고 적었다. 직접적인 증거는 지우고 간접적인 증거만 남김으로써 무릉도원을 신선의 공간으로 바꾼 수법이다. 이 시의 수법도 마찬가지다. 사람의 흔적을 지움으로써 요천나루를 나루이면서 나루가 아닌 것처럼 만들었다. 이로써 요천은 신선의 공간이 되고, 그 공간에 머물고 있는 자신도 신선이 된다. 강희맹이 의도한 것은 그것이다. 그는 요천을 신선의 공간으로 만들어 놓고 스스로 신선이 되어 요천의 풍광이 빚어내는 한가함을 즐긴 것이다. 이것은 자연 속에서 시인들이 흥취를 즐기는 수법 중의 하나다. 강희맹의 흥취는 수많은 시인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광한루를 신선의 공간으로 만들어 놓고 스스로 신선이 되어 그 흥취를 즐기며 시를 쓴 것과 짝을 이룬다. [참고: 이현식 교수의 남원문화대학 강의 중에서...} |